금림 강미자 대표
[블로그뉴스=옥지원 기자] 옷은 ‘의식주(衣食住)’에 첫 번째다.
한복은 우리 민족의 가장 기본이 되는 옷이다. 어쩌면 우리는 기본을 잊고 산다.
37년간 자나깨나 우리 옷만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지금도 한복 만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강미자 대표다.
삯바느질부터 시작해서 신라복식연구로 인정받을 때까지 한복 외길인생, 변하지 않은 건 딱 하나 그의 열정이다.
궁중복에서 신라옷까지 끝없는 그의 한복사랑을 만났다.
37년 천직으로 지어온 한복의 길
한복은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옷이다.
그런 한복이 양복에 밀려 일상생활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심지어 설날 색동저고리마저 보기 힘들다. 이제는 결혼식에나 어르신 환갑잔치 때나 입는 옷이 되었다.
경주 금림의 강미자 대표는 사라져가는 한복의 멋을 지키며 37년 외길을 걸어왔다.
“우리 조상들은 한식, 한옥보다 한복을 으뜸으로 쳤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인 의식주 중에 먹고 자는 것보다 입는 것을 첫 번째로 생각했어요.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옷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죠. 그만큼 옷을 중요하게 여겼고, 옷 만드는 일에 정성을 들였어요.”
그가 어떤 마음으로 한복을 만들어 왔는지 이 한마디로 알 수 있다.
바느질 한 땀 한 땀에 가족의 건강과 복을 빌었던 우리 어머니들처럼 정성스레 묵묵히 37년을 걸어왔다.
그가 한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갓 스무 살이 되던 해다. 꿈 많던 시절, 좋아하는 바느질을 해야겠다 결심하고, 양재학원에 등록했다.
꼬박 3년 동안 한복의 기본을 익혔다. 손재주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정성껏 만들다보니 그의 옷은 남달랐다. 그러다보니 일거리가 끊이지 않았고, 남들보다 2~3배 일을 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 번도 바늘을 놓는 날이 없었다.
밤낮없이 삯바느질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한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깊어졌다.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독학으로 복식공부를 했다. 그러나 혼자만의 공부에는 한계가 있었다.
점차 전통 한복 탐구에 갈증을 느꼈고, 결국 한복명장이신 류정순 교수님이 가르치는 경성대 평생교육원에 늦깎이 학생이 되었다.
2003년 금림주단을 오픈하고 강미자 한복을 만들기 시작했던 그날보다 경성대를 입학하던 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신라옷의 멋을 재현하다
남원에서 태어나 경주로 시집온 그는 30년 이상을 경주에서 살았다.
경주 토박이들도 경주 사람이라 인정할 만큼 경주를 사랑한다. 몇 해 전부터는 신라시대 복식을 재현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몰두해 왔다.
‘실크로드경주 2015’ 무대에 올랐던 처용무복을 직접 제작했다.
처용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신라 헌강왕 때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역신을 몰아냈다는 처용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궁중 무용이다.
오방을 상징하는 흰색, 파란색, 검은색, 붉은색, 노란색의 오색 의상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극찬이 쏟아졌다. 뿐만 아니라 태종무열왕과 왕비의 행차행렬복을 재현했고, 신라복식연구회를 창립했다.
경주 용강동에서 출토된 여인토영과 단석산 마애불상군의 공양상을 바탕으로 통일신라 귀부인복과 문관복식의 통일신라단령을 재현해 큰 주목을 받았다.
신라복식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신라인들의 옷을 꾸준히 연구해 3번의 전시회도 가졌다.
“신라의 옷은 남아 있는 자료가 없어서 재현에 어려움이 많아요. 용강동 고분에서 나온 토영을 보면 저고리는 치마 안에 넣어 입었고, 소매통이 넓은 겉옷을 입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저고리 길이가 길게 내려와 허리를 묶어 입는 것이나, 직선으로 떨어지는 깃 모양 등 신라만이 가진 멋을 찾아내려 애썼습니다.”
그는 신라옷의 전통과 멋을 계속 연구해 경주를 대표하는 의상을 만들고 싶다며, 경주의 축제의상이나 문화해설사들 옷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조선시대 복식에 대한 연구도 꾸준하다. 2014년에는 경주작가 릴레이전에서 조선시대복식전을 열었다.
사대부가의 여인들이 입었던 옷과 궁중의상을 선보였는데,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배색으로 기품을 자아내어 국내외 관광객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제대로 된 한복 문화의 발전을 위해
K-POP 열풍이 불면서 K-style이 함께 조명받기 시작했다.
한복의 아름다운 곡선미와 우수성에 세계가 매료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문화재청이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창덕궁, 조선왕릉, 종묘에 한복 입은 사람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덩달아 한복대여점이 생겨나고 한복을 찾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중국에서 싸게 만들어 국적불명의 옷을 한복이라고 대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복의 저변확대는 좋으나, 변형된 한복으로 마구잡이 식은 안 된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다.
“한복은 우리의 얼이 담긴 옷이예요. 우리 몸에 가장 잘 맞고, 우리 문화의 품위가 담겨 있어요. 세월이 갈수록 한복이 더욱 좋아져서, 한복 만드는 걸 선택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한복 만들면서 힘든 때는 없냐고 묻자, 한평생 바느질을 하면서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번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처음 바느질을 선택하던 스무살로 돌아가라 해도 다시 한복 만드는 일을 선택할 것이란다.
바느질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그에게 한복 짓는 일은 천직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더 공부하고 연구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한복을 입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금림 강미자]
2003년 경북공예대전. 입선
2009년 경성대 평생교육원 한복지도자 과정 수료
2009~2013년 전승복식 과정 수료
2009~2013년 경성대 수료전 참여
2013~2018년 한국복식문화원 전시 참여
2014년 경주작가 릴레이전
2015년 경주처용복 제작
2016년 경주 신라 고취대 의상 제작 참여
2015~2018년 신라복식연구회 전시
2018년 경북기념품공모전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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