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11. 천대받던 무삼에 생명을 불어넣다
[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11. 천대받던 무삼에 생명을 불어넣다
  • 나현연 기자
  • 승인 2019.03.13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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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연재 김연호
염색 횟수에 따라 분홍의 농도가 달라진다. 사진=김숙현 작가
염색 횟수에 따라 분홍의 농도가 달라진다. 사진=김숙현 작가

[블로그뉴스=나현연 기자] 입김을 살짝 부니 네모난 모빌이 빙글 춤춘다. 색색의 모빌은 공기처럼 가볍다.

곱게 물들인 천을 조각보 잇듯 입체적으로 바느질해 나뭇가지에 걸어 만든 모빌이다.

하얀 벽에 드리운 모빌 그림자까지 더해져 한층 풍성하다. 사각 주머니는 속이 텅 비었는데도 찌그러지지 않으니 순전히 바느질 솜씨 덕이다.

모빌은 가벼워야하니 명주를 썼지만 김연호 대표가 즐겨 사용하는 천은 무삼이다.

고운 안동포를 만들고 남은 거친 삼으로 짠 무삼은 질기고 투박하지만 오랫동안 변치 않는 매력이 있다.

 

두연재 김연호 대표. 사진=김숙현 작가
두연재 김연호 대표. 사진=김숙현 작가

독학으로 시작한 염색이 어느새 20년째 
호젓한 시골에 둥지를 튼 두연재는 카페 같은 분위기의 공방이다. 

나란히 지은 한옥 세 채 가운데 한 채는 갤러리, 다음은 작업실, 마지막은 살림집이다. 

밖에서 보면 전 통적인 기와집인데 내부는 필요에 딱 맞춤한 현대식이다. 

 

공기처럼 가벼운 모빌. 사진=김숙현 작가
공기처럼 가벼운 모빌. 사진=김숙현 작가

갤러리에 공간감을 더하는 모빌을 걸어두고 벽은 추상화를 보는 듯한 염색 작품, 남녀아이 철릭, 손톱크기 조각 천을 이어 바람개비를 표현한 액자 등으로 장식했다. 

작품 하나하나 완성도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색의 깊이가 남다르다. 요란하거나 튀지 않으면서도 볼수록 빠져드는 색감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1990년대 초쯤이었던 것 같아요. 우연한 기회에 신계남 선생님을 만났어요. 셔링 스커트에 약간 짧은 상의, 염색한 천에 작은 국화가 그려진 옷을 입고 은발을 하고 계셨는데 단아한 모습에 반하고 말았죠.” 

신계남 선생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한 번 입어 볼까’라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다. 

공무원 남편과 병석에 누운 시어머니를 모시며 알뜰하게 살던 시절, 염색을 배 워 자신의 옷도 만들어 입고 잘하면 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사군자를 배우고, 딸아이와 커플 옷도 해 입고, 손뜨개질 디자인 강사도 다닐 때였다. 

 

무삼에 쪽 복합염색한 남성 재킷. 사진=김숙현 작가
무삼에 쪽 복합염색한 남성 재킷. 사진=김숙현 작가

처음엔 독학으로 염색을 배워 옷을 만들었다. 손재주가 있어서인지 알음알음으로 주문이 들어오고, 김연호 대표의 옷을 좋아하는 마니아도 생기기 시작했다. 

배움에 갈증을 느낄 때쯤 신문에서 서울시 중요무형문화재 박선영 선생 기사를 보았다. 

성균관대학교에 출강한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등록해 이론과 실기를 병행한 전통복식과 궁중복식 수업을 들었다. 

재미로 부업 삼아 시작했던 것이 어느새 20년이 훌쩍 흘렀다. 

 

거친 무삼이 작품으로 변신한다. 사진=김숙현 작가
거친 무삼이 작품으로 변신한다. 사진=김숙현 작가

머슴 옷 만들던 무삼에 매료되다
안동포는 생냉이와 무삼으로 나눈다. 삼을 삼을 때 곱고 가는 것만 골라 생냉이를 만들고 거칠고 굵은 것으로 무삼베를 짠다. 

생냉이로는 양반 옷을 짓고, 일하는 머슴 옷은 무삼으로 했다. 

“옛 선조들은 잘 자란 대마로는 생냉이를 짜고, 웃자라거나 못자란 대마는 껍질째 굵게 쪼개어 무삼을 만들었다고 해요. 생냉이는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품으로 올릴 만큼 귀한 베였지만 무삼은 하층민들의 옷이나 이불을 만드는데 썼대요. 굵고 거칠지만 실용성과 기능성은 우수했던 거죠. 무삼은 선조들의 지혜와 땀이 담긴 옷감이에요.” 

안동포마을에서 사라져가던 무삼을 구해 염색하고 바느질을 더해 공예대전에 출품 하면서 무삼과 인연이 시작됐다. 

무삼의 맥을 잇고자 사람들에게 무삼베 짜기와 작품 만들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2017년에는 그동안 만든 무삼 작품들과 교육생 작품을 모아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색색으로 물든 무삼과 명주 두루마리. 사진=김숙현 작가
색색으로 물든 무삼과 명주 두루마리. 사진=김숙현 작가

자연의 색을 천에 옮기는 즐거움
천연염색은 자연의 색을 그대로 담아내는 데 매력이 있다. 

사방에 널린 자연에서 염색 재료를 채집하고, 색소를 추출해 낸 다음 곱디고운 자연의 색을 하얀 천에 옮겨 담았을 때의 희열 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라고. 

천연염색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육체적으로 고되기도 하고 위험한 순간도 많다. 

한번은 펄펄 끓인 염색물에 면장갑만 낀 채 손을 털썩 넣었다가 데인 적이 있다. 고무장갑을 꼈다고 착각했던 것. 

이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니 손이 고울 수가 없다. 물들고, 데이고, 찔리고… 거칠어진 손으로 만들어낸 빛깔이라서 그런지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색은 유난히 눈부시다.  

 

손톱 크기와 조각 천을 이은 바람개비 조각보. 사진=김숙현 작가
손톱 크기와 조각 천을 이은 바람개비 조각보. 사진=김숙현 작가

고운 안동포를 만들고 남은 거친 삼으로 짠 무삼은 질기고 투박하지만 오랫동안 변치 않는 매력이 있다.

“지난여름 네댓 살 난 손자 두 녀석이 몇 달 와있었어요. 둘이 놀다 심심했던지 장난감으로 할미를 때리고 달아나는 장난을 치더라고요. 마침 소목 염색과 쪽 염색을 하던 중이었는데 달아나다 부딪혀 염색물에 풍덩 빠져버렸어요. 순식간에 한 놈은 파랗게 한 놈은 빨갛게 물들데요. 그 몰골에 나는 웃고 저희들은 울던 게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네요.” 

 

염색은 바람과 햇살, 온도가 더해 완성된다. 사진=김숙현 작가
염색은 바람과 햇살, 온도가 더해 완성된다. 사진=김숙현 작가

염색 재료는 주변의 자연에서 또 농산물 부산물에서 주로 얻는다. 김연호 대표가 좋아하는 초록빛 철릭은 발효한 쪽을 기본으로 황련, 황벽, 양파 껍질 등을 사용해 복합 염색했다. 

갤러리에 전시된 붉은 철릭은 소목을 반복 염색한 것. 여러 번 염색하는 동 안 섬유 올 속까지 색이 들어 깊은 흑장미 색으로 표현됐다. 

 

두연재 공방 내부 모습. 사진=김숙현 작가
두연재 공방 내부 모습. 사진=김숙현 작가

“염색은 내 손으로 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물, 햇볕, 바람, 대기의 온도 등이 더해져야만 완성되는 하나의 선물 같아요. 앞으로 좀 더 내공을 쌓아서 지금껏 경험하고 느꼈던 것을 책으로 써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아직은 두연재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이들이 더 많지만 명품을 만들어간다는 신념으로 늘 작업에 임한다는 김연호 대표. 

천 손질부터 색상 하나 하나, 바느질 한 땀 한 땀 정교함을 잃지 않으려 최선을 다한다. 그의 꿈이 한 권의 책으로 꽃 필 날을 기다려본다.

한옥 세 채가 나란히 자리한 두연재. 사진=김숙현 작가
한옥 세 채가 나란히 자리한 두연재. 사진=김숙현 작가

[두연재 김연호]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장려 공로상 등 9회 입상 
2008년 문화예술부분 신지식인상 수상 
2009년 경북여성상 수상, 워싱턴DC 코러스하우스 작품기증 감사장,
Smithsonian Institution 자연사박물관 감사장   
2017년 전통옷감 무삼 발전 기여 감사장

[개인전]
2002년 우리 옷과 담과의 만남전(안동시민회관) 
2004년 자연과의 만남전(서울 인사동 학고재) 
2007년 자연염색, 규방공예와 만나다전(대구KBS 전시실) 

[초대전]
2006년 모빌과의 만남전(서울 인사동 갤러리 아트사이드) 
2007년 봄, 바람과 만나다전(동아미술관)  조각보, 빗살문과 만나다전(서울 무형문화재전수회관 전시실) 
2013~2018년 안동무삼 직조기능양성과 상품개발교육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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