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13. 무채색의 '먹무늬염'으로 화려하게 피어나다
[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13. 무채색의 '먹무늬염'으로 화려하게 피어나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9.03.27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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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정 천연염색연구소 신계남 교수
사진=민혜경 작가
먹무늬염으로 만든 스카프 작품. 사진=민혜경 작가

[블로그뉴스=이세아 기자] 오랜 세월을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 보면 사람이 일이 되고 일이 그 사람처럼 느껴진다. 천연염색가 신계남 교수와의 만남이 그랬다. 상정 천연염색연구소 마당의 먹그림 앞에 선 단아한 자태가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졌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전시실과 작업실에서 지난 40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치열한 예술 세계를 만났다. 초겨울 오후, 그의 손끝에서 무채색의 ‘먹무늬염’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사진=민혜경 작가
상정 천연염색연구소 마당에 선 신계남 교수. 사진=민혜경 작가

서예, 문인화, 염색, 섬유 디자인까지 먹의 세계에 빠지다
‘먹 염색’으로 유명한 천연염색가 신계남 교수는 서예부터 문인화, 민화, 염색, 텍스타일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연구와 창작의 열정을 통해 ‘먹 염색’을 완성해온 사람이다.

염색을 시작하기 전에 서예와 문인화를 배운 것은 그에게 필연이었다. 1980년대 초반 집안에 우환이 들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시작한 취미 생활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캄캄한 고뇌의 늪에서 먹의 검은 색이 그를 구원한 것이다.

 

사진=민혜경 작가
신계남 교수의 작업에 대한 기록이 모여 있는 서가. 사진=민혜경 작가

“서예와 문인화를 배우면서 우울했던 일상에 활기가 돌았어요. 그 후 종이에 그리던 사군자를 티셔츠나 한복에 그리면서 먹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고요. 사군자를 치는 즐거움에 바탕천을 다양하게 시도하면서 마침내 염색을 연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검은 먹이 검은 늪에 빠진 나를 구해 준 셈이죠.”

염색과 사군자가 만나 그만의 특별한 작품이 탄생하면서 주변의 권유로 1992년부터 그다음 해까지 연달아 개인전을 열었다. 천 위에 그린 사군자가 아름답고 실용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통도사 성파스님의 문하에서 천연염색 공부를 시작으로 천연염색의 명인인 김지희, 정관채 선생의 강의를 듣는 등 염색과 관련한 행사마다 빠지지 않고 참가하며 끊임없이 천연염색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진=민혜경 작가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넥타이 작품. 사진=민혜경 작가

단아하고 세련된 ‘먹무늬염’으로 염색의 미학을 시도하다
1990년대 말 한국 무형문화재보호재단에서 운영하는 전통공예 건축학교에서 민화를 배운 뒤 민화를 응용한 작품을 시도했다. 민화와 사군자를 응용해 그린 2002년 나비 문양의 ‘백접도 숄’, 난초문양의 ‘넥타이’, 2003년 나비 문양의 ‘양산’ 작품 등은 디자인 등록도 마쳤다.

2000년엔 ‘감무늬염’이라는 새로운 염색법을 개발했다. ‘감무늬염’은 단조로울 수 있는 천연염색에 신선한 발견이었다. 그의 염색 인생에 큰 전환점이었던 이 일을 계기로 2009년 ‘신계남의 천연염색’이라는 책도 발간했다. 민화와 사군자 문양 등을 활용한 17가지 염색 기법과 감무늬염의 재료 채취부터 무늬 내는 방법을 자세하게 담았다. 천연염색 제품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의 검증 자료도 수록했다.

출판기념회와 함께 열린 전시회에는 ‘8풍 병풍용 백접도’, ‘난초 대나무 문양의 넥타이’ 등 천연염색을 활용한 한복과 생활 소품 등 100여 점의 작품들이 전시됐다.

 

사진=민혜경 작가
2009년 발간된 ‘신계남의 천연염색’. 사진=민혜경 작가

그가 먹 염색을 본격적으로 한 건 2000년대 말부터다. 천연염색을 오래 하면서 쪽과 감, 홍화 등 화려한 색상의 염색보다 먹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서예와 사군자를 통해 먹의 아름다움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생동감 있는 천연염색과 비교하면 먹 염색은 차분하고 담백하다. 그 안에서 먹의 다양한 질감과 무늬를 찾아내는 건 신 교수의 몫이었다. “먹은 세계 어디를 가도 트렌드와 상관없이 사랑받는 색입니다. 단순한듯하면서 세련미가 넘치는 게 먹색이거든요. 검은색 하나뿐인 것 같지만, 연한 색부터 짙은 색까지 수많은 색을 품고 있는 것도 매력입니다.”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먹무늬염은 무채색이지만, 다양한 기법을 통해 화려하고 신비롭게 변신을 거듭했다.

 

사진=민혜경 작가
먹무늬염의 모든 기법으로 만든 조각보 벽걸이. 사진=민혜경 작가

수묵화처럼 담백하고 겸허하게 열정의 시간을 돌아보다
신계남 교수는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동양대 패션경영학과 초빙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쳤다.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무척 기뻤지만, 한편으로 강의에 대한 부담도 컸어요.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지식 안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어요. 덕분에 강의는 물론이고 저의 작업에도 큰 발전을 일궈내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안동에도 천연염색과 규방 공예, 민화를 함께 널리 알리고 보급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사진=민혜경 작가
홍화와 감을 이용한 무늬염. 사진=민혜경 작가

그는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안동뿐만 아니라 서울, 미국, 캐나다, 프랑스, 호주, 일본 등 국내외에서 개인 초대전과 단체전에 참가해 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1997년부터 2015년까지 ‘안동탈춤페스티벌 패션쇼’에 참가했다.

2009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경북문화전’과 2010년 호주 브리즈번에서 개최했던 ‘경북 천년의 혼’ 등의 행사도 기억에 남는 전시다.

예부터 먹 염색을 하는 이는 있었어도, ‘먹무늬염’을 시도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10년 가까이 가장 애정을 갖고 작업해온 먹 염색이지만, 개인전을 서두르지 않는 건 이유가 있다.

 

사진=민혜경 작가
먹염색 후에 매화치고 시를 적은 스카프. 사진=민혜경 작가

“먹 염색은 다른 염색에 비해 염색 공정이 까다로워 체력적으로 아주 힘들어요. 일흔을 넘기면서 염색 작업을 예전만큼 할 수 없으니 그동안 모아놓은 작품들에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2009년 서울에서 열렸던 천연염색 작품전 후에 개인전은 더 없었지만, 앞으로 어떤 계획이 생길지 알 수 없지요. 후일에 좋은 기회가 마련된다면, 개인전을 갖고 후학들을 위해 고이 지켜온 먹 염색 작품을 기증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전시실 창문에도 그의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사진=민혜경 작가
전시실 창문에도 그의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사진=민혜경 작가

 

[상정 천연염색연구소 신계남]
1997~2001년 제22회 전승공예대전 천연염색 부문 문체부 장관상 수상 외 입선 3회
1997~2001년 안동시장 표창 2회
1998년 천연염색 섬유 미술전(서울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
2001년 여성부 신지식인상
2003년 한국 캐나다 수교 40주면 기념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교 초청전(캐나다 밴쿠버)
2005년 추석맞이 한민족 대축제(미국 뉴욕)
2005년 자랑스런 도민상
2009년 천연염색 작품전 및 출판기념회(서울 종로구 관훈동) 외 4회
2009년 경북문화전(미국 워싱턴)
2013년 자랑스러운 안동시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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