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16. 자연은 거짓말이 없다
[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16. 자연은 거짓말이 없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9.04.17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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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서화원 나창교 대표
사진=김숙현 작가
쪽과 먹으로 복합염색한 두루마리. 사진=김숙현 작가

작지만 거인 같은 사람이 있다. 일생동안 일궈온 일이 크고, 가르친 사람이 많고, 끝없는 열정을 가진 이들이 그러하다. 안동서화원에서 만난 나창교 대표는 작은 거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해 왔지만 여전히 재미있기만 하다는 천연염색과 물 흐르듯이 유려한 서예와 문인화 실력을 지녔다. 팔순을 앞두고도 성큼성큼 힘찬 걸음으로 자신의 일을 묵묵히 기쁜 마음으로 해나가는 나 대표의 인생을 만났다.

 

사진=김숙현 작가
안동서화원 나창교 대표. 사진=김숙현 작가

◆ 결석 한 번 없이 앞장서서 배우던 시절

어쩌면 운명은 우연을 가장해 찾아오는 지도 모른다. 나창교 선생이 천연염색을 만날 때가 그랬다. 1992년부터 시작한 사군자와 서예가 10년을 넘겼을 즈음이었다. 늘 종이에만 그리던 문인화를 문득 천 위에 옮기면 어떨까?, 그 천으로 옷이며 커튼을 만들고 실력이 되면 한복 치마폭에 사군자를 그려 넣어 입으면 참 멋있겠다 생각했다.

마침 우연히 펼친 신문에서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실시하는 천연염색 과정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됐다. 그렇게 운명처럼 천연염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주부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2년 과정의 야간수업이었는데 나창교 대표는 안동에서 대구까지 긴 등굣길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했다.

 

사진=김숙현 작가
열심히 꼬아주면 신기한 무늬가 나온다. 사진=김숙현 작가

당시 수업을 듣는 이가 일반 주부도 있었지만 대구 소재 방직공장의 사장이나 임직원 남자들이 많았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체구가 제일 작고 아담한 나창교 대표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실습에 임했다.

큰 스테인리스강 용기에 빠질 듯이 몸을 구부려 열심히, 또 즐겁게 작업을 했다고. 염색은 손의 감각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이론만으로는 절대 알 수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한약재로 유명한 대구 약전골목에서 한방 재료를 잔뜩 사다가 걸러서 염료를 만들어 연습을 하기도 했다.

 

사진=김숙현 작가
지난 시간 염색한 학생 작품을 검사하는 나창교 대표. 사진=김숙현 작가

처음 접하는 천연염색의 세계는 실로 놀랍고 아름다웠다. 매염제에 따라 다른 색채가 표현되는 모습에 감탄하고, 황홀한 기분을 맛보기도 했다.

“자연은 거짓말이 없어요. 숨길 수도 없고요. 있는 그대로, 자신의 색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사진=김숙현 작가
양파 껍질은 은은한 색감이 매력이다. 사진=김숙현 작가

◆ 요술을 부린 듯 신비로운 천연염색

나창교 대표는 교육을 주로 하고 있다. 평생을 해서 이제는 옷 입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서예·사군자 교육도 하고, 운명처럼 만난 천연염색 강좌도 다닌다.

천연염색 강좌는 유치원 아이들부터 나이 지긋한 중장년층까지 교육 대상도 다양하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일주일 동안 아이들 염색 체험하는 걸 도운적도 있고, 안동의 면 단위로 순회 교육을 다닌 적도 있다.

일상적으로 교육하는 건 안동여성회관과 성균관유도회경북본부 등이다. 문인화반, 염색반으로 나눠 교육하기 때문에 이곳들만 가도 일주일이 바쁘다.

 

사진=김숙현 작가
여름용으로 제작한 스카프. 사진=김숙현 작가

서예, 사군자, 천연염색 세 가지 중 어떤 걸 배울까 고민하는 이들이 물어오면 먼저 천연염색으로 시작하라고 조언해준다. 염색은 1년 정도만 배우면 스스로 연습해서 옷을 해 입을 정도가 되지만 서예·사군자는 몇 년씩 해도 실력을 키우기 쉽지 않기 때문.

다문화 프로그램으로 이주여성들에게 가르칠 기회가 있었는데 교육생들이 천연염색을 무척 좋아했다. 요술을 부리듯 환상적인 색깔이 완성되는 걸 보고 탄성을 자아내곤 한다. 색상이 선명하게 잘 나와서, 무늬가 독특하게 나와서 행복해하는 교육생을 볼 때마다 강사로서 긍지를 느낀다고.

천연염색은 변화무쌍하다. 정해진 양과 온도, 시간을 지키면 일정한 색을 낼 수 있지만 조금씩 변화를 주면 그만큼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치자로 노란 개나리를 물들이고, 소목으로 진달래를 표현하고, 먹물로 연꽃을 나타내면서 그때마다 재미가 있다.

 

사진=김숙현 작가
명주 손수건에 그린 사군자. 사진=김숙현 작가

◆ 작업할 때나 일상에서 늘 긍정적인 마음

“건강의 비결은 웃음이죠. 열심히 즐겁게 살고, 많이 웃어서 그런지 늘 긍정적인 마음이 들어요. 친구들은 누구한테 뺨을 맞아도 웃고 있을 거라고들 해요.”
나창교 대표는 동그란 얼굴에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덕분에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늘 활기 있어 보인다. 주변에 좋은 기운을 전달하는 해피 바이러스형 인간이다.

 

사진=김숙현 작가
조각보를 이용한 가방 디자인. 사진=김숙현 작가

염색의 매력은 ‘자연과 더불어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꽃물이 한껏 예쁘게 올랐다면 그 꽃물을 그대로 천에 옮겨 놓는다. 자연이 허락한 만큼 채취해서 그 안에 든 색감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게 열심히 주무르고, 빨고, 널며 작업을 이어간다.

생쪽이 한창 싱싱할 때 초록 잎사귀를 따서 얼음을 넣고 갈아서 모시나 명주에 물들인 연한 옥색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구름인듯 하늘인듯 부드럽고, 가볍고, 은은하고, 깊이가 있는 그런 색감이다. 이렇듯 작업하기 전에 상상했던 색상이 천 위에 온전히 피어났을 때의 짜릿한 행복은 세상을 가진 듯하다.

 

사진=김숙현 작가
화려한 색감에 기분까지 좋아지는 쾌자. 사진=김숙현 작가

나 대표가 중요한 자리가 있을 때마다 꺼내 입는 것은 손수 지은 옥색 치마저고리다. 이런 옷은 손질부터가 남다르다.

먼저 손의 온기와 힘으로 구김을 펴주는 손 다림질로 씨줄과 날줄이 올올이 제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옷을 긴 홍두깨에 말아서 자연스럽게 주름을 펴야 옷태가 산다. 전기다리미로 꾹꾹 누르면 표면에 반들거리는 자국이 생겨 인위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에 손으로 탁탁 두드리는 게 좋다.

잘 손질한 옥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서면 구름을 걸친 듯 몸이 가볍다.

 

사진=김숙현 작가
수납장은 최고의 보물상자다. 사진=김숙현 작가

오전·오후 2시간씩 이어지는 교육 일정을 끝난 뒤에야 서화원으로 돌아온다. 쪽과 먹물로 혼합염색한 두루마리를 비롯해 색색의 옷감이 차곡차곡 담긴 서랍장, 거침없는 필체로 써내려간 서예 작품들, 한 붓으로 휙휙 그려낸 사군자 그림들이 서화원 안에 가득하다.

나 대표의 보물창고이자 쉼터이고, 배우러 찾는 이들에겐 교육장이고 아지트다. 건강하기 때문에 한동안은 교육에 더 매진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는 나창교 대표에게 오늘보다 더 힘찬 내일을 빌어본다.

 

사진=김숙현 작가
천연염색과 사군자 서예을 가르치는 안동서화원. 사진=김숙현 작가

 

[안동서화원 나창교]
한국여성문화생활회 안동지부장
경북성균관유도회 여성국장
안동·영주여성회관 문인화 강사
경북서예문인화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강릉 신사임당서예대전 운영위원
포항 영일만서예대전 초대작가
국제유교문화서예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2003~2004년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 천연염색 과정 수료
2015~2018년 성균관유도회경북본부 부설 여성대학 서예사군자·천연염색 강사
2018년 경북여성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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