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23. 바느질의 미학, 3㎝ 바늘 끝에서 피어나다
[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23. 바느질의 미학, 3㎝ 바늘 끝에서 피어나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9.06.05 2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순희 규방공예 대표 조순희
사진=민혜경 작가
전통 자수 골무와 경상도 골무, 색동 두루주머니. 사진=민혜경 작가

한 번쯤 바느질을 해본 사람은 안다. 하얀 천위로 3㎝ 바늘을 한 땀 한 땀 놓다 보면, 일상에 지친 마음의 무게도 한숨 가벼워진다는 것을. 안동의 ‘조순희 규방공예’ 공방은 조선시대 옛 여인들이 오순도순 모여 바느질하던 규방처럼 차분하고 편안했다.

천연염색, 침선(바느질), 매듭, 자수가 모여 한국의 전통미가 물씬 피어나는 규방 공예 갤러리 같은 그곳에서 바느질의 미학에 빠진 조순희 대표를 만났다.

 

사진=민혜경 작가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입선작인 모시조각홑보를 들고 있는 조순희 대표. 사진=민혜경 작가

◆양반집 규수들의 여성 커뮤니티, 규방 공예를 재현하다

‘규방’은 조선 시대 유교 사회에서 남성들이 머물던 사랑채와 구분된 양반집 규수들의 생활공간이었다. 여자들만의 생활공간인 규방은 ‘방’에서 이루어졌던 ‘여성 커뮤니티’다. 규방에 모인 여인들은 놀이와 소일거리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천연염색으로 물들인 원단을 이용해 한복과 이불을 만들고 남은 천 조각들은 보자기, 주머니, 바늘집 등의 소품을 만들었다.

 

사진=민혜경 작가
전통 자수 바늘겨레 노리개. 사진=민혜경 작가

최근 들어 규방 공예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전국적으로 문화센터 및 박물관 강좌를 통해 차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조순희 대표가 규방 공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98년 안동여성회관에서 천연염색 과정 수강을 듣고 나서였다.

천연염색의 매력에 빠져 열심히 활동하다가 2003년에 농촌지도소 규방 공예 과정을 수강할 기회가 왔다. 오십이라는 늦은 나이에 시작한 규방 공예는 서툰 바느질과 노안의 불편함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사진=민혜경 작가
12. 조순희 대표가 20대에 놓은 십자수. 사진=민혜경 작가

“염색을 배우고 나면 자수와 민화, 매듭 등 규방 공예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어요. 하나씩 작품을 완성해 나가다 보면 성취감이 대단하거든요. 하얀 천을 제가 원하는 색으로 곱게 물들이고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저만의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정말 즐거워요. 천연 재료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색감은 저의 메말랐던 감성까지 살아나게 해줍니다. 바느질을 열심히 하다 보니 이제는 규방 공예뿐만 아니라 전통 공예까지 관심을 갖게 됐어요. 요즘은 전통 자수에 푹 빠졌는데, 점점 배울 게 많아져서 고민입니다.”

 

사진=민혜경 작가
민화와 자수, 천연염색 조각 등 으로 만든 안동포팔토. 사진=민혜경 작가

◆따로 또 같이, 옛것을 지키고 재현하며 교육하다

조순희 대표는 염색을 배운 뒤 혼자 작업하다가 천연염색과 규방 공예를 하는 안동 지역 모임에 합류했다. 비슷한 취향과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만나 회원전을 준비하고 교류하면서 개인적으로 발전의 기회를 갖게 됐다. 그 모임이 ㈔안동자연색문화원이다. 안동자연색문화원은 2001년 상정 천연염색연구회로 출발해 2013년 사단법인 안동자연색문화원으로 성장한 비영리법인이다.

 

사진=민혜경 작가
전통 자수를 놓고 있는 조순희 대표. 사진=민혜경 작가

“우리 문화원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자연염색을 어떻게 하면 옳게 전승할 것인가, 고민하고 연구하는 곳이에요. 사라져 가는 옛것을 지키고 올바르게 재현하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곳이지요. 우리 문화원에서는 자연염색 옷감과 공예품을 제작할 전문 인력도 양성하고 있습니다.”

교육 과정은 자연염색, 섬유 민화, 규방 공예, 전통 매듭, 전통 자수, 야생화 자수, 전통 누비, 자연염색 옷 만들기 등 여덟 개 반으로 운영 중이다. 조순희 대표는 현재 자연색문화원의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민혜경 작가
아름다운 전통 자수. 사진=민혜경 작가

◆손끝에서 탄생하는 규방 공예의 매력에 빠지다

규방 공예에는 남녀 한복과 배냇저고리 등 옷과 배자, 버선, 타래버선, 토씨 등 아름다운 소품이 수두룩하다. 바느질 소품으로 바늘방석, 가위집, 인두집, 인두판, 자집, 수저보, 골무, 다과보, 다기보, 두루주머니, 귀주머니, 약낭, 향낭, 강릉주머니, 별낭, 바늘쌈지노리개, 베갯모 등은 정교한 바느질 솜씨가 아니면 만들기 힘든 작품들이다.

 

사진=민혜경 작가
린넨에 야생화 자수를 놓은 식탁매트. 사진=민혜경 작가

규방 공예의 남다른 매력은 시대를 초월하는 유연한 예술성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규방 공예는 옛 기법 그대로 진중하고 아름다우며 현대적인 규방 공예는 세련된 디자인의 조화가 멋지다. 천과 실의 활용에 따라 달라지는 규방 공예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사진=민혜경 작가
조순희 대표가 45년간 사용한 크로바 코바늘세트. 사진=민혜경 작가

조순희 대표에게는 보물처럼 아끼는 ‘크로바 코바늘 세트’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아 산 것이다. 1973년도에 산 것이니 45년째 사용하는 보물이다. 월급 9만 원일 때 1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샀다는 걸 보면, 19살 그녀에게 바느질이 단순한 흥밋거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진=민혜경 작가
직접 수놓은 손 공자수. 사진=민혜경 작가

직장에서 퇴근하면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밤마다 피곤함도 잊고 매듭을 배우러 다니고 혼자 십자수도 익혔다. 40년 전 혼수품으로 만들었던 십자수 이불깃과 베갯잇은 지금 봐도 어찌나 곱고 예쁜지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어찌 보면 그의 바느질은 이미 친정어머니의 뛰어난 유전자를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예쁜 옷들은 다 어머니의 손에서 탄생한 핸드메이드 작품이었다.

 

사진=민혜경 작가
직접 천연염색으로 물들인 천들. 사진=민혜경 작가

“천연염색과 규방 공예는 이제 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즐기며 하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염색도 바느질도 저에겐 취미이자 놀이입니다. 영주 평생학습센터에는 11년째 제 수업을 들으러 오는 회원이 있어요. 함께 앉아 바느질을 하다 보면 제가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들과 함께라면 앞으로 오래오래 염색과 규방 공예를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안동 자연색문화체험관과 영주 평생학습센터, 상주여성복지회관에서 전통자수뿐 아니라 천연염색, 규방 공예, 전통 매듭 등 다양한 분야를 강의하고 있다.

 

사진=민혜경 작가
조순희 규방공예 외관. 사진=민혜경 작가

 

[조순희 규방공예 조순희 대표]

2006년 경상북도 공예품대전 은상 
2008년 안동 천연염색 전통한복 패션쇼 참가
2008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입선
2009년 제4회 한스타일 박람회 전시 및 판매 
2009년 경상북도 관광기념품공모전 입선 
2010년 안동 여성복지회관 규방 공예 강의 
2012년 동아미술대전 민화부문 입선 
2014년 한국공예협동조합연합회 표창장
2015년 이미석 우리옷과 규방공예회원전(경인미술관)
2016년 공예조합회회원전 ‘천년의 숨결’(프랑스 노트르담대성당)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