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28. 버리지 않고 다르게, 명주로 이어가다
[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28. 버리지 않고 다르게, 명주로 이어가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9.07.10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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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비단직물 허호 대표
사진=김애진 작가
명주 연구와 함께 명주에 천염염색을 하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사진=김애진 작가

인류사와 비슷한 역사를 지닌 명주로 유명한 고장, 상주 함창에 더 많은 방법으로 대를 이어 명주와 동고동락하는 허호 대표 내외가 산다.

허호 대표는 활기찬 웃음으로 밖을 행보하고 민숙희 대표는 따스한 미소로 안을 돌본다. 명주 짜기 5대와 4대가 함께 한 명주의 길, 그 뒤를 이어갈 내외의 아들까지 함창 허씨비단직물의 역사가 쌓인다.

 

사진=김애진 작가
방문객들에게 전통방법을 알리는 것이 요즘 가장 신나는 일이다. 사진=김애진 작가

◆명주의 길을 다시 찾다

지금의 경상도에서 경은 경주, 상은 상주를 뜻한다. 예부터 지역의 중심으로 많은 물자가 오갔던 고장이었다. 때문에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불렸다.

삼백은 세 가지 흰 것, 쌀, 누에고치, 곶감을 이른다. 그중 상주 함창은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명주가 특히 유명했다. 전국 유일의 명주 시장이 열리기도 했다.

그 시절, 허호 대표는 호기심 많은 꼬마아이였다. 장난감 하나 없던 시절이었으니 어머니 옆에서 명주 짜는 것을 거드는 것이 그대로 놀이였다.

 

사진=김애진 작가
누에에서 나온 실뭉치를 자새를 이용해 뽑아낸다. 사진=김애진 작가

“요게 누에예요. 끓는 물에 누에를 담그면 실 뭉치가 나오고 이 실을 자새를 이용해 실을 켜고 왕챙으로 타래실을 마는 거죠. 이 누에 보이죠? 실을 다 뽑아내면 이게 바로 우리가 먹는 번데기에요. 저 어릴 때 어머니 옆에서 이걸 간식으로 주워 먹고는 했죠. 이 물레를 돌리는 것도 놀이였어요. 동생하고 만날 먼저 하겠다고 실랑이를 했어요.”

허씨비단직물 본관 1층에는 명주 관련 전통 도구들을 전시한다. 공장과 전시관을 모두 무료로 공개해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전통방식으로 명주 짜는 방법을 선보이고 체험의 장을 마련한다.

 

사진=김애진 작가
전시장에 마련한 명주실 뽑는 전통도구 시연. 사진=김애진 작가

벽면에는 오래된 도구들을 전시하고 그 앞 중앙에 명주실을 뽑아내는 자새, 왕챙, 조사기, 물레 등을 놓고 전통 명주 짜기를 시연한다. 수없이 많은 이에게 반복해 설명해 주면 다소 지칠 법도 한데, 우렁찬 목소리와 거침없는 동작으로 환하게 웃으며 설명을 이어간다. 

“몇 십 년 전만에도 이게 다 고물이었어요. 집과 마당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죠. 그때 저 역시 명주에 아주 이골이 난 상태였거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을 때, 명주를 버린 게 아니라 명주를 바라보는 제 생각을 버렸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땐 명주가 아니라 돈을 쫒았더라고요. 돈을 버리니 고물도 보물이 됐어요.”

 

사진=김애진 작가
생각과 방법을 뒤집어가며 꾸준히 개발되고 있는 명주 종류가 100가지가 넘는다. 사진=김애진 작가

◆생각을 뒤집으면 신제품이다

한창 젊은 시절 대를 이어 명주를 짜고 밤낮없이 일을 했다. 좋은 물건은 손님이 먼저 알아본다고 허호 내외의 명주는 입소문을 타고 인기가 높아졌다. 쏟아지는 주문량을 맞춘다고 수 날을 명주만 짜기도 했다. 명주 짜는 일에 처음으로 회의가 든 것이 이맘때다.

일도 고되거니와 주변 친구들의 도시 진출 같은 일들에 마음이 뺏기기도 했다. 거기에 수의 옷감에 대한 일에도 회의가 들었다. 당시에는 명주옷 중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것이 수의였다. 명주가 고가에 해당하니 살아생전 입지 못해도 가시는 날엔 명주옷 한 벌 해드리는 것이 효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 마음처럼 곱게 장만하는 수의의 의미도 크지만, 허 대표는 일상복의 옷감도 만들고 싶었다.

 

사진=김애진 작가
쌍둥이 고치로 뽑은 실로 짠 옥사. 사진=김애진 작가

고민의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대표의 눈에 쌍둥이고치가 들어왔다. 쌍둥이고치에는 누에 두 마리가 고치 속에 들어가 있어 실 굵기도 불균등하고 마디가 생겨 불량으로 치부됐었다.

옥사, 옥견, 옥사명주라고 불리며 저렴한 명주로 판매되곤 했었다. 그런 옥사를 허 대표는 뒤집어 생각해봤다. 대표의 눈에 옥사의 불균등한 무늬는 인위적인으로 꾸민 것보다 자연스럽게 아름다웠다.

 

사진=김애진 작가
대표는 기계에 필요하다 생각하면 직접 추가 제작해 사용한다. 사진=김애진 작가

대표의 생각은 적중했고, 베틀의 수를 늘려 작업할 만큼 주문은 쇄도했다. 시간이 지나 지인에게 옥사명주를 독점하지 말고 풀자고 했을 때, 지인은 걱정했다. 하지만 허 대표는 지인을 위로하며 이야기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신제품은 무궁무진합니다. 생각만 뒤집으면 그게 신제품이 되니까요.”

허씨비단직물 공장 2층 창고에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100여종의 명주 옷감이 자리한다. 그 종류의 수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확대될 것이다.

 

사진=김애진 작가
모두가 포기한 명주에 감물들이기를 수 년간 연구한 끝에 성공했다. 사진=김애진 작가

◆연을 이어 대를 잇다

같은 고장에서 나고 자라며 부부의 연을 맺을 당시, 허호 대표는 민숙희 여사에게 약속했었다.

“둘 다 명주 짜는 집에서 자랐잖아요. 그러니 알죠. 얼마나 고된 일인지요. 결혼할 때 제가 약속을 했었어요. 우리 돈을 모으면 명주 말고 다른 일을 하자고요.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명주를 버리지도 못했지만, 지금 우리는 다른 일을 하고 있지요. 그게 마음을 고쳐먹으니 가능한 일이었어요.”

 

사진=김애진 작가
대를 잇고 이어 명주의 삶을 이어간다. 사진=김애진 작가

2002년 무렵, 돈은 그만 쫒아 다니자는 생각이 들어 지금의 터로 이사를 했다. 좀 더 체계적으로 즐겨볼 작정을 한 셈이었다.

국내는 물론 외국 손님들까지 명주의 고장 함창의 허씨비단직물 공장을 보러 온다. 명주 만드는 것은 큰 욕심 없이 하던 데로 운영하면서 전통 명주 짜기를 대내외에 알리는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사진=김애진 작가
방문한 이들에게 전통 물레질을 소개하고 체험 방법을 설명하는 허호 대표. 사진=김애진 작가

염색체험 시 재료비만 받고 모두 무료로 운영한다. 물량 맞추느라 빡빡했던 지진한 일상은 방문 손님맞이 하느라 시간 없는 행복한 일상으로 변했다. 사람들에게 우리 명주를 소개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큰 기쁨이고, 그 안에서 얻는 또 다른 여러 가지의 아이디어가 덤처럼 주어졌다.

 

사진=김애진 작가
방문객에게 직접 키우는 뽕나무에서 채취한 뽕잎차를 전한다. 사진=김애진 작가

“어느 날 아들이 대를 잇겠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전에는 부모의 고된 일상을 보며 자기는 절대 안 할 거라 말하곤 했거든요. 아들이 직장에서 일본에 출장을 갔다 왔는데, 일본 어느 방직 공장에서 한국 상주에 허씨비단직물을 얘기하더랍니다.”

대가 이어진다. 눈물겹게 감사한 일이다. 100년 후에도 5대, 6대, 7대로 이어진 명주 이야기를 상주 함창에서 들을 수 있길 기대한다. 누구라도 허씨비단직물 앞을 지날 때 잠시 머물면 좋을 테다. 직접 키운 향긋한 뽕잎차 한 잔이 몸과 마음에 따스한 온기를 전할 테니까.

 

사진=김애진 작가
더 나은 문화예술 공간을 많은 이들과 나누길 희망하는 허호 대표와 민숙희 대표. 사진=김애진 작가

 

[허씨비단직물 대표 허호]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지역명사 선정
2018년 경상북도 문화상 수상
2018년 국립민속박물관 공예, 식문화 융복합전시회 외 다수
2017년 안동대학교 산학협력단 기업현장 교수
2017년 미국 LA, 일본 오사카 등 해외 전시회 외 다수
2015년 함창 마을미술프로젝트 위원장
2013년 경상북도 섬유가공 최고장인
2014년 포항제철고등학교 등 학교 특강강사
특허 9건, 실용신안 3건 등록 및 출원
천연염색 작품 공모전 등 14회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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