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10. 천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쪽빛 사랑에 빠지다 
[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10. 천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쪽빛 사랑에 빠지다 
  • 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3.06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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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명인512호공방 최옥자 명장 
최옥자 명장이 천연염색으로 물들인 푸른 쪽빛의 안동포. 사진=민혜경 작가
최옥자 명장이 천연염색으로 물들인 푸른 쪽빛의 안동포. 사진=민혜경 작가

[블로그뉴스=김경미 기자] 쪽은 자연에서 얻은 천연염료다. 쪽빛은 자연과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햇빛과 공기와 물에 사람의 정성과 시간이 쌓여 청출어람의 쪽빛으로 태어난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쪽빛과 사랑에 빠져 천연염색의 길로 걸어온 장인이 있다. 

천년이 지나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진한 빛으로 피어나는 쪽빛처럼, 전통 천연염색의 대한민국 명장으로 우뚝 선 최옥자 명장이다. 

푸른 빛의 쪽빛이 청초하게 잘 어울리는 최옥자 명장. 사진=민혜경 작가
푸른 빛의 쪽빛이 청초하게 잘 어울리는 최옥자 명장. 사진=민혜경 작가

세상 모든 빛깔을 푸른 쪽빛과 붉은 홍화로 만들다
푸른 안동댐 아래 월영교의 그림 같은 풍경 안에 최옥자 명장의 전통염색연구소가 있다. 

낮은 담장 너머로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장독들이 보이고 마당에는 염색 천을 널어 말리는 빨랫줄이 하늘거린다. 

쪽빛의 푸른 천들이 너울너울 바람에 흔들리며 햇볕에 말라가는 장관은 생각만 해도 감동이다. 

2011년 국내 최초 천연염색으로 선정된 대한민국 명장 제512호 최옥자 명장을 월영교가 보이는 너른 마당에서 만났다. 

전통천연염색연구소 실내에 걸린 고려사경 감지. 사진=민혜경 작가
전통천연염색연구소 실내에 걸린 고려사경 감지. 사진=민혜경 작가

“세상의 모든 색깔은 푸른빛의 쪽과 붉은빛의 홍화로 만들 수 있어요. 염색이 공업화되기 전부터 우리 조상은 쪽과 홍화만으로 온갖 색을 다 빚어냈어요. 공기와 온도, 햇빛과 시간, 직물의 종류에 따라 수백 가지의 색이 나옵니다.” 

천연염색을 말하면서 그의 눈빛은 깊고 푸르게 흔들렸다. 쪽빛의 완성을 위해 보낸 4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으리라. 

최 명장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표현을 자주 썼다. 지금은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표현으로 쓰이지만, ‘푸른빛은 쪽에서 취했으나 그보다 더욱더 깊고 푸르다’는 풀이로 중국 진나라 시대부터 있던 말이다. 

전통 방식으로 쪽 염색을 하면 세월이 갈수록 더 곱고 귀한 색이 된다는 그의 설명처럼 오롯이 쪽빛을 위해 살았던 그의 치열한 삶이 진하게 느껴졌다. 

최 명장이 쪽빛을 재현하려 했을 땐 쪽에 대한 문헌도 없고 스승도 없었다. 

쪽 염색한 안동포를 널고 있는 최옥자 명장. 사진=민혜경 작가
쪽 염색한 안동포를 널고 있는 최옥자 명장. 사진=민혜경 작가

홀로 4300㎡(1300평) 야산에 쪽 씨앗을 뿌리고 삼복더위에 채취한 쪽잎으로 천에 염색하기를 반복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쪽빛을 얻었다. 

그의 작업실에 놓인 천연 잿물과 빛바랜 쪽 항아리에서 40여 년간 지켜온 열정이 느껴진다. 그는 천연염색뿐 아니라 쪽 염색을 이용해 천년을 견딘다는 신비의 종이 감지(紺紙)를 재현했다. 

쪽은 색 자체에 방충과 방부의 기능이 있어 한지 염색에도 최고의 염료다. 

숙성된 쪽 항아리에서 쪽 염색을 한다. 사진=민혜경 작가
숙성된 쪽 항아리에서 쪽 염색을 한다. 사진=민혜경 작가

1856년 화학 염료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다
19세기 중반 화학 염료가 나온 이후 천연염색은 맥이 끊겼다.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화학 염료가 나온 뒤, 쪽을 키우고 그 잎에서 염료를 뽑아내고 몇 달에서 몇 년씩 발효 숙성을 하고 산화와 환원의 과정을 거치는 쪽 염색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천연염색은 작업 공정 하나하나에 섬세한 정성이 필요하다. 

잿물에 삶아 빨고 말린 천을 물에 넣어 깨끗이 헹궈야 한다. 순백의 천일수록 쪽빛이 잘 스며들기 때문이다. 쪽 염료도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든다. 

잿물에 넣은 쪽이 발효 과정을 거치며 파란색으로 변하게 된다. 매일 30분씩 3개월간 저어주면서 거품을 걷어내는 정성을 들이면 비로소 쪽물이 완성된다. 

쪽 염색을 입힌 삼베 씨실. 사진=민혜경 작가
쪽 염색을 입힌 삼베 씨실. 사진=민혜경 작가

“쪽 염색은 ‘쪽 발이 섰다’고 할 때 염색을 할 수 있어요. 염료 온도와 모든 조건이 맞았을 때 노란 색소가 선다고 하는데, 그때 염색을 하는 거죠. 사람이 염색하고 싶을 때 하는 게 아니라 색소가 설 때 염색을 하는 겁니다.” 

그에게 쪽은 단순한 염료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믿음이다. 그의 말대로 쪽의 제작 과정은 신비롭다. 쪽물에 천을 담그면 처음엔 노란색으로 물든다. 

쪽물 밖으로 천을 꺼내면 순간 초록색으로 변하고 다시 물에 헹구고 나면 마침내 쪽빛이 된다. 천연염색은 발효, 숙성, 산화의 과정을 거쳐 아름답고 풍성한 색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쪽 염색 횟수에 따라 색상을 달리 한 안동포 모빌. 사진=민혜경 작가
쪽 염색 횟수에 따라 색상을 달리 한 안동포 모빌. 사진=민혜경 작가

2011년 우리나라 최초의 염색 명장으로 선정되다 
최옥자 명장은 자신이 체득한 쪽 염색기술을 책으로도 남겼다. 

2004년부터 <쪽빛의 진실>, <해오름의 빛>, <감지의 진실>, <초록빛의 신비>, <천상의 색 보라> 등 5권의 책과 중·일·영어 번역본인 <전통으로 탄생되는 천연색>을 출간했다. 

경상북도에서 운영하는 바이오연구원에 2003년부터 6년간 집중적으로 연구해 해마다 한 권씩 천연염색의 신비를 풀어낸 것이다. 

최 명장의 열정으로 태어난 다섯 권의 책에는 염색 과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공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2004년 발간된 책 '쪽빛의 진실'. 사진=민혜경 작가
2004년 발간된 책 '쪽빛의 진실'. 사진=민혜경 작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천연염색의 자연주의 기법과 쪽의 신비로운 빛깔에 환호했다. 

2002년부터 일본, 중국은 물론이고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러시아, 미국 등 해외에서 20회 이상의 전시를 했다. 국내 전시도 130차례 이상 가졌다. 

그는 현재 안동대 대학원 바이오 ICT 융합공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며 기술 연구 및 특허 등록에도 힘을 쏟아 쪽 염료로부터 쪽 색소 분리, 감지의 천연색 제조 공정 등 3가지 특허의장 상표권을 취득했다. 

2018년 대한민국 신지식경영 대상에서 문화인 대상을 받았다. 

“자연에서 얻은 쪽잎을 쓴다 해도 발효 과정에서 천연 잿물이 아닌 양잿물(수산화나트륨 가성소다)을 쓰면 천연염색이 아닙니다. 천연염색은 물을 많이 사용해 환경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관계 당국의 엄격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천연 염색은 환경과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이에요. 1856년 화학 염료가 나오기 이전의 염색 기술이 있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천연염색은 세계의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최고의 관광 상품이니까요.” 

이제 그의 소망은 우리의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천연염색을 세계문화유산에 올리는 것이다. 

전통천연염색연구소의 아름다운 전경. 사진=민혜경 작가
전통천연염색연구소의 아름다운 전경. 사진=민혜경 작가

[대한민국명인512호공방 최옥자 명장]
1987~2018년 전통천연염색연구소 소장 
1997년 보건복지부 ‘여성복지 증진’ 표창 
2001년 동경 길영갤러리 ‘전통발효 쪽 염색’ 전시 
2003년 뉴욕 코리아 갤러리 ‘천년의 빛깔’ 전시
2005년 노동부 장관 ‘우수기능개발’ 표창 
2009년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 ‘전통천연발효염색작품’ 전시 
2011년 대한민국명장(섬유가공) 제 512호로 선정 
2013년 특허권 등록 ‘감지의 천연색 제조과정’  
2017년 프랑스 노르망디 한국문화축제 ‘전통 천연발효 쪽 염색’ 전시
2018년 대한민국 신지식경영 문화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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