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17. 손수 염색한 천에 꽃 한송이 피워 올리네
[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17. 손수 염색한 천에 꽃 한송이 피워 올리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9.04.24 1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담천연염색 임영숙 대표
사진=김숙현 작가
색색으로 염색한 삼베와 명주 두루마리. 사진=김숙현 작가

따스한 햇살이 머물다 가는 아담한 공방이 있다. 조물조물 염색을 하고, 스윽 슥 난을 치거나 탐스러운 연꽃을 피워 올리고, 한 땀 한 땀 바느질에 정성을 들인다.

안동 웅부공원을 지척에 둔 예당천연염색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천연염색이 너무 좋다는 임영숙 대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공방이다. 그의 손에서 민화 걸개가 탄생하고, 다채로운 스카프가 펄럭이고, 색다른 조각보가 완성된다.

 

사진=김숙현 작가
예당천연염색 임영숙 대표. 사진=김숙현 작가

◆ 미술을 좋아하던 소녀, 염색장이 되다

“학창시절에 미술을 유난히 좋아했어요. 그때부터 손재주가 있었나 봐요. 젊어서는 미용실을 운영했고, 지금은 그 손으로 염색하고 그림 그리고 옷을 짓고 있네요.”

임영숙 대표가 천연염색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천연염색의 세계로 그를 인도한건 신계남 선생이었다. 1997년 안동시문화원에서 사군자와 천연염색을 가르치는 강좌에서 선생과 제자의 연으로 처음 만났다. 염색한 천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붓을 움직여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반하고 말았던 것.

 

사진=김숙현 작가
패브릭용 물감으로 그린 사군자. 사진=김숙현 작가

사군자와 천연염색을 동시에 배웠다. 선생님이 하셨던 것처럼 염색한 천에 직접 그림까지 그리려면 두 가지가 다 필요했다. 강좌는 1년 과정으로 끝났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배움은 계속되고 있다고.

얼마 전 임 대표는 안동의 공예작가들과 함께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전시를 하고 왔다. 한국 전통 공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임영숙 대표는 전시장에 테이블을 놓고 손수건에 사군자를 그려주는 작업을 맡았다.

다림질만 하면 그림이 지워지지 않는 패브릭 전용 물감을 써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손수건이다. 전시 관람객에게 주는 일종의 이벤트였는데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나흘 동안 사용해야 할 손수건을 첫날 모두 소진해 버릴 정도로 인기였다.

 

사진=김숙현 작가
해외 전시에서 큰 인기를 끈 즉석에서 사군자 그리기. 사진=김숙현 작가

◆ 안동포에 민화 그리고 쪽으로 마무리

사군자와 민화를 그리다보니 염색 작품과 연계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먹물로 무늬를 내는 염색이 유행인데 임 대표의 경우 천을 구겨서 꽃잎처럼 먹물 염색한 다음 무늬 사이에 꽃대나 잎을 그려 넣는 식으로 차이를 줘서 작품을 만든다.

 

사진=김숙현 작가
삐뚤빼뚤 조각을 이어 ‘조각의 자유’를 표현했다. 사진=김숙현 작가
사진=김숙현 작가
조각의 자유 시리즈 중 하나. 사진=김숙현 작가

공방을 둘러보다 보니 삐뚤빼뚤하게 이어붙인 조각보가 유독 눈에 띈다. 반듯하게 마지막 한 올까지 정확하게 맞춰서 만드는 것이 조각보의 기본인데 임대표의 것은 일부러 기본을 어겨보겠다고 다짐한 것처럼 제멋대로다. 그래서인지 제목도 <조각의 자유>다.

비뚤게 이은 조각보로 손가방도 만들고 복주머니도 만들었다. 이렇게 제멋대로 만든 조각보를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으니 임영숙 대표 고유의 디자인이라고 봐도 좋겠다.

 

사진=김숙현 작가
울금 염액에 넣어 샛노랗게 물든 스카프. 사진=김숙현 작가

염색을 배울 때는 명주를 연습용으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천을 가리지 않고 만들 제품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천을 골라 쓴다. 무명처럼 싸고 흔한 천에 먹물 무늬염이나 쪽과 감물을 이용한 무늬염을 근사하게 넣으면 그 가치가 완전히 달라지는 게 염색의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여전에는 땡감을 주우려고 이른 아침에 동네를 한 바퀴 돌기도 했어요. 요즘은 청도처럼 감이 많이 생산 되는 곳에 전화만 하면 감물을 택배로 보내줘서 참 편하지요.”

 

사진=김숙현 작가
함에 넣는 돈 봉투. 사진=김숙현 작가

감물을 만들 땐 물컹한 감이 아니라 파랗고 단단한 풋감을 갈아서 건더기는 짜내고 물만 모아서 쓴다. 감물은 방충, 항균성이 좋고 자외선을 차단하고 통기성, 소취성도 좋으니 그야말로 천하무적의 염색 재료다.

땀을 흘려도 옷이 살에 달라붙지 않아 예로부터 노동복을 많이 만들었다고. 갈색 한 가지만 나온다는 게 유일한 단점인데, 요즘은 감물로 얼룩덜룩한 무늬를 내고 쪽이나 먹물로 복합염색을 하면 오히려 단점이 장점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사진=김숙현 작가
함에 넣는 돈 봉투. 사진=김숙현 작가

◆ 영원히 남는 쪽빛이 좋아

“저는 쪽빛이 좋아요. 쪽 염색은 삶아 빨아도 색이 빠지지 않아요. 그렇게 견고하고 영원한 게 쪽 염색의 매력이지요.”

생풀 잎을 삭히고 발효하는 과정을 거쳐 생산한 쪽물은 견뢰도가 높아 한번 물들면 영원히 남는다. 쪽을 일러 ‘천년의 색’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견고함이 좋아 쪽 염색을 아낀다. 아무리 아름다운 색상이라고 하더라도 금방 바라면 허무할 수밖에 없다.

 

사진=김숙현 작가
안동포에 민화를 그리고 쪽염색 천으로 테두리를 두른 작품. 사진=김숙현 작가

좋아하는 안동포에 민화를 그려 넣고 사방 테두리를 쪽 염색 천으로 액자처럼 감싸면 하나의 미술 작품이 된 것 같다. 햇살 좋은 창가에 걸어도 되고 흰 벽에 걸어도 포인트가 된다.

신계남 선생을 만난 게 자신의 인생에 너무 큰 행운이라고 임 대표는 몇 번이나 말한다. 어쩌면 그저 평범하게 미용실이나 계속 운영하다가 별다른 취미도 흥미도 없는 그런 삶일 수도 있었는데 그분과의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사진=김숙현 작가
조각보 복주머니로 만든 노리개. 사진=김숙현 작가

사람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고, 공방을 운영하고, 전시회를 열면서 매일의 삶이 보람되고 즐겁다. 그래서 남들은 고되다고 투덜대는 염색 작업을 그리 힘에 부쳐했던 적도 없다.

공방 운영도 큰돈은 아니지만 재료 구입하고 용돈할 정도는 되니 크게 욕심나지 않는다고. 지금처럼 오래 이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랄 뿐.

 

사진=김숙현 작가
손끝에서 국화 한 송이가 순식간에 피어난다. 사진=김숙현 작가

 

[예담천연염색 임영숙]
2005~2009년 경북 관광기념품 공모전 다수 입상
2005~2010년 공예아카데미 천연염색 민화 강사
2006년 전국관광기념품 공모전 장려상
2006~2008년 안동천연염색연구회 회장
2007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입선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념 민화초대전, 경북공예품대전 특선
2009~2011년 나누리 재단 민화염색 강의
2011년 경북공예품대전 동상
2011년~현재 자연색문화체험관 민화 강사
2013년 예당천연염색 공방 오픈
2018년 천년의 숨결 국제교류 전시(이탈리아 베니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