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3.청춘으로 한 올 한 올 베를 짜다
[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3.청춘으로 한 올 한 올 베를 짜다
  • 옥지원
  • 승인 2019.01.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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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안동포짜기 보유자 권연이 장인
보물처럼 아끼는 안동포를 선보이는 권연이 장인
보물처럼 아끼는 안동포를 선보이는 권연이 장인. 사진=김숙현 작가

[블로그뉴스=옥지원 기자] 장인의 베틀은 나이를 잊었다. 시할매, 시어매가 쓰시던 베틀을 물려받아 한 평생 베를 짰으니 베틀의 역사가 실로 까마득하다. 교육생을 가르치는 안동포전시관 교육실에는 개량 베틀이 있지만 집에서는 전통 베틀만 쓴다.

60평생을 함께 했으니 이만한 동무가 없다. 키 작고 얼굴은 볼품없지만 짜 놓은 베는 어느 누구 것보다 곱다며 소탈하게 웃는다. 권연이 장인의 얼굴이 마치 곱게 짜 놓은 안동포처럼 화사하다.

장인의 베틀과 전짓다리(삼 삼을 때 쓰는 도구)
장인의 베틀과 전짓다리(삼 삼을 때 쓰는 도구) 사진=김숙현 작가

열아홉에 금소로 시집 온 소녀
권연이 장인을 만나러 안동 임하면 금소리를 찾았다. ‘안동포마을’이라는 별칭이 붙은 마을이다. 삼베하면 임금께 진상하던 안동포를 가장 고급으로 치고, 안동에서도 좋은 삼이 나고 고운 베를 짜던 곳이 금소다.

70~90년대만 해도 안동 전역에서 삼베를 많이 생산했는데 금소에서 키운 삼(대마)은 질이 좋아 안동 다른 마을에서 일부러 삼을 사러 올 정도였다. 지금은 삼을 심는 곳도, 베를 짜는 이들도 대부분 사라지고 금소에서 옛 명맥을 지키고 있다. 안동포전시관이 금소에 자리한 이유도 거기 있다.

권연이 장인이 베틀에 처음 앉은 건 열일곱 나던 해였다. 결혼 전에는 금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선면 샘뜰이라는 마을에 살았는데 그때만 해도 열댓 살만 넘으면 베짜기를 배웠다. 식구들 옷 해 입고, 결혼할 준비를 하려면 베짜기가 기본이었던 것. 그렇게 2년을 배워 열아홉에 금소로 시집왔다. 삼농사에 베를 많이 짜던 금소로는 딸을 안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던 시대였다.

봄에 삼 씨를 뿌려 여름에 키 높이로 자라면 베어 삼굿에 찐다. 찐 삼은 햇빛에 말렸다가 물에 불려 껍질을 벗긴다. 벗긴 껍질에서 겉껍질을 훑어 내어 햇빛에 일주일 이상 널어 바랜다. 여기까지가 준비에 해당하고 이후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바랜 삼에 물을 뿌려 가늘게 찢는 삼째기, 삼 올의 끝과 끝을 이어 실을 만드는 삼삼기, 씨실은 꾸리를 감고 날실은 새 수와 올 수에 맞춰 한 필 길이나 두 필 길이로 갖추는 베날기, 날실에 풀을 먹여 도투마리에 감는 베매기, 베틀에 앉아 짜는 베짜기까지 길고도 섬세한 과정을 거쳐야만 안동포가 탄생한다.

이 모든 과정을 실수 없이 해내려면 한 두 해 배워서는 어림도 없다. 특히 베날기, 베매기는 3~4명이 손발을 맞춰야 하고 작업도 까다로워 10년은 해야 한다고 권연이 장인은 말한다.

60평생 베를 짜온 장인의 손
60평생 베를 짜온 장인의 손. 사진=김숙현 작가

입술이 찢어지고 허벅지가 트도록 삼 삼던 밤
안동포는 한 필이 폭 35~38㎝, 길이 40자(22m)다.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베만 짠다고 하면 손 빠른 이는 일주일이면 한 필을 짠다. 하지만 고운 베는 시간이 배로 든다. 올의 굵기를 ‘새’로 표현하는데 보통 많이 팔리는 것이 7새, 8새, 9새 정도다.

1새는 80가닥의 올인데 올이 가늘면 가늘수록 같은 폭에 더 많은 올 수가 들어가 곱고 촘촘한 베가 된다. 7새 삼베는 36㎝의 폭에 560올(80올×7새)이 들어가고, 14새 베는 2배인 1120올이나 되는 셈이다. 권연이 장인은 평소에는 10새 베를 짜고, 전시나 공모전에는 13새, 14새를 준비한다.

고운 베를 짜려면 실력은 기본, 삼 준비부터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겉껍질을 훑어낸 속껍질을 계추리라고 부르는데 계추리 바래기를 할 때 밤낮으로 이슬 맞고 햇빛 보기를 일주일 이상 반복해야 질기고 색도 곱게 난다고.

쇠꼬리에 이은 끈을 발뒤꿈치에 건다.
쇠꼬리에 이은 끈을 발뒤꿈치에 건다. 사진=김숙현 작가

삼을 삼을 때 삼실에 보풀이 일지 말라고 입으로 침을 발라가며 하느라 입술이 찢어져 피가 나기도 예사고, 삼실을 꼬아 허벅지에 대고 비비느라 허벅지 살이 트거나 굳은살이 배기도 했다.
농사짓고, 하루 세끼 끼니 챙기고, 아이들 돌보면서 삼베까지 하자면 베를 짤 시간은 밤 밖에 없다. 고단함에 졸아 가며 삼을 삼고 베를 짜던 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권연이 장인은 그래도 삼베가 있었기에 시골 살림에 아이들 대학까지 시켰다며 뿌듯하게 웃는다.

2018년, 드디어 무형문화재가 되다
권연이 장인은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1997년부터 10년 넘게 해마다 참가했다. 출품할 베는 평소보다 더 신경 쓰느라 1년 가까이 걸렸다. 작품을 여러 개 낼 수 있지만 한 점 당 참가비를 내야 해서 그 돈이 무서워 매번 한 점씩 밖에 못 냈다.

한 번도 낙선은 없고 입선은 여러 차례 받았다. 서울까지 작품 내러 가고, 개막식에 참가하고 또 작품 찾으러 가기까지 번거롭지만 당연히 해야 되는 건줄 알고 했다.

지금도 전통 베틀로 베를 짠다.
지금도 전통 베틀로 베를 짠다. 사진=김숙현 작가

권연이 장인은 무형문화재 보유자였던 고(故) 배분령 선생 밑에서 전수생으로 있으면서 기술을 배우고 공예대전 등에 참가해 실력을 검증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2018년 <경북 무형문화재 제1호 안동포짜기 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국회의사당이랑 세종문화회관에 베짜기 시연하러 가기도 했어요. 베틀까지 싹 다 싣고 가서 사람들 모인 앞에서 베를 짜면 신기하다고 난리가 나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연락이 와서 추포(삼실과 명주실로 짠 삼베) 13새짜리를 반필 기증 했더니 평생회원권을 주데요. 시골 할매치고 이만하면 실력도 뽐내고 상도 많이 받았지요.”

안동포 교육반 학생들과 삼삼기
안동포 교육반 학생들과 삼삼기. 사진=김숙현 작가

권연이 장인은 일주일에 세 번 안동포전시관에 나간다. 일주일에 두 번은 안동포(생냉이) 교육을 하고, 주말에는 베짜기 시연을 한다. 교육생들과 어울려 앉아 얘기를 나누면서 삼삼고 꾸리 만들다보면 시간이 잘 간다. 지금 교육생들은 3년째 배우고 있는데 삼삼기나 베짜기는 제법 하는데 베날기, 배매기는 장인의 도움 없이는 안된다고.

“몸 건강하게 챙겨서 내 밑에 올 후계자를 양성하고 싶어요. 혼자서 매고, 날고 할 수 있도록 잘 가르쳐주고 싶지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안동포짜기 보유자 권연이]
1997~2003년, 2005년, 2009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입선
2004년, 2006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장려상·장려공로상 수상
2010년 전통 삼베 기능전승자 선정
2011~2017년 대한민국 전통기능전승자 작품전 참가
2013년 전국기능대회 표창장 수상
2013~2016년 안동포 기능인 양성과정 강사
2014년 대한민국기능전승자회 표창장 수상
2018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안동포짜기 보유자 인정
대구달구벌축제, 국회의원회관 등지에서 안동포짜기 시연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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