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8.누비는 바느질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유산
[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8.누비는 바느질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유산
  • 옥지원
  • 승인 2019.02.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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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장 김해자 선생
2018 국가무형문화재 107호 누비장 공개행사에서 만난 김해자 선생. 사진=유은영 작가
2018 국가무형문화재 107호 누비장 공개행사에서 만난 김해자 선생. 사진=유은영 작가

[블로그뉴스=옥지원 기자] 인간문화재 김해자. 그 이름의 무게를 몇 페이지의 글로 다 감당하기 어렵다.

사라져가던 누비의 멋을 찾았고, 끊어져 가던 맥을 다시 뛰게 했고, 세상에 빛을 보게 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걸어와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이루었다.

그 길은 요령도 기교도 없이 곧고 정직하고 단아하게 이어진 누비를 닮았다.

책 백 권에 써도 모자랄 그의 누비 이야기를 만났다.

한 땀 한 땀 혼을 불어 넣는 일. 사진=유은영 작가
한 땀 한 땀 혼을 불어 넣는 일. 사진=유은영 작가

열 땀을 떠야 겨우 1㎝, 혼을 불어넣은 옷
지난 2017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간담회장에 모인 사람들의 눈길이 김정숙 여사에게로 쏠렸다.

김 여사가 입은 분홍색 누비외투를 보고 모두 감탄과 칭찬이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입고 있던 누비옷을 벗어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 부인에게 선물했다.

김 여사가 세계의 시선을 끈 분홍색 누비옷은 김해자 선생이 만든 옷이다.

누비는 천 사이에 솜을 넣거나, 아무것도 넣지 않고 함께 홈질하는 바느질법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누비갑옷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입어 온 오랜 전통의 옷이다.

조선시대 출토되는 복식유물 중에 절반이 누비일 정도로 널리 쓰였다.

끊어진 맥을 다시 잇다. 사진=유은영 작가
끊어진 맥을 다시 잇다. 사진=유은영 작가

누비는 바늘 땀 간격이 0.3㎝, 0.5㎝, 1㎝로 잔누비, 세누비, 중누비로 구분된다. 어찌나 정교한지 여덟 땀, 아홉 땀, 열 땀을 떠야 겨우 1㎝ 나간다.

8폭 치마 한 폭을 세누비로 만들려면 600줄이 넘게 누비질을 해야 하는 중노동이다.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몇 달씩 정성을 쏟는 일이 누비 말고 또 있을까. 고된 일인데다 재봉틀과 양복에 밀려나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옷이 되고 말았다.

맥이 끊어진 누비에 다시 혼을 불어넣은 이가 김해자 선생이다.

그의 누비는 우리의 문화유산. 사진=유은영 작가
그의 누비는 우리의 문화유산. 사진=유은영 작가

사라질 뻔한 누비를 다시 일으키다
그는 김천에서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마친 이듬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넉넉했던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어머니의 삯바느질을 돕기 위해 어린 손에 바늘을 잡았다.

한복학원을 다니며 옷 만드는 법을 배우고, 주단집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렇게 바느질이 업이 됐다.

왕실 침방나인이었던 성옥염 할머니와 선복스님을 만나면서 전통 바느질과 누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누비를 처음 보는 순간, 단번에 반해버렸다. 그길로 누비일에 뛰어들었고, 전통 누비기법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

옆액주름포를 재현하다. 사진=유은영 작가
옆액주름포를 재현하다. 사진=유은영 작가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누비의 맥은 끊어진 상태였다. 제대로 된 기록도 찾을 수 없었고, 맥을 잇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일부 사찰에 남아 있는 승복이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그에게 유일한 스승이었다. 댐 건설 현장 고분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 속에 있던 누비옷을 연구해서 재현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있는 누비옷 ‘옆액주름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재단, 재봉, 누비, 디자인, 마감까지 일을 세분해서 누비사를 키우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꼼꼼하면서도 인내가 필요한 누비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사라질뻔한 누비를 다시 일으킨 건 그의 인내와 집념이다. 사진=유은영 작가
사라질뻔한 누비를 다시 일으킨 건 그의 인내와 집념이다. 사진=유은영 작가

경남 창녕에 20년이상 승복을 누비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짐을 싸서 창녕으로 내렸다. 그곳에서 15년을 머물며 오로지 누비에만 몰두했다.

누비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건 1992년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하면서부터다.

6개월 동안 밤낮없이 누빈 두루마기, 치마저고리, 철릭, 승복을 출품해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과 언론 모두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작품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996년,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아 국가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40대 최연소 중요 무형문화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아한 매력. 사진=유은영 작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아한 매력. 사진=유은영 작가

단아한 우리 문화의 상징, 세계를 사로잡다
“온갖 화려함이 넘치는 다른 전시회는 숨이 막히는데, 누비를 보니 숨이 터진다.”

도쿄돔에서 열었던 전시회에 온 일본인들이 한 말이다.

일본 이세이 미야케는 “천하에 둘도 없는 옷”이라며 찬사를 보냈고, 일본의 소설가 이치키 히로유키는 김해자 누비공방을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지난 2005년에는 파리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프레타포르테 100회 기념 패션쇼에 특별전시된 김해자 누비옷이 세계 패션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식혜골 김해자 선생 공방. 사진=유은영 작가
식혜골 김해자 선생 공방. 사진=유은영 작가

“누비는 단순해. 군더더기 없이 그저 한 땀 한 땀 이어 나갈 뿐이야. 재주나 솜씨가 좋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 마음을 다듬고, 인내하며, 호흡을 정갈하게 해야 돼.”

아무런 기교 없이 단순한 바느질만으로 만든 옷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수천수만 번의 호흡을 가다듬으며 혼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문화예술인들이 우리 누비의 매력에 빠져드는 진짜 이유다.

 

[누비장 김해자]
1992년 제17회 전승공예대전 국무총리상 수상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 보유자 지정
2002년 일본 NHK 초대전
2004년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 누비초대전
2005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한복패션쇼 및 전시회
2007년 북경 한국문화원 초대전 및 초빙강의
2010년 일본 동경퀄트페스티벌 초대전
2011년 10,000 Threads(미국 뉴욕 소사이어티 갤러리)
2016년 천년보옥 한국의 누비 기획전시
201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 공개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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