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24. 순서에 맞게 지은 한복이 그대로 삶이다
[기획-멋과 색을 짓는 사람들] 24. 순서에 맞게 지은 한복이 그대로 삶이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9.06.12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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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미한복 대표 이봉이
사진=김애진 작가
실과 바늘로 짓는 인생. 사진=김애진 작가

차례를 지키고 순서를 따르는 것. 모든 일의 기본이다. 옷을 짓는 일도 다르지 않다. 바늘에 실을 꿰어야 바느질을 할 수 있고, 바느질 한 땀이 틀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언제 시작했는지 보다 어떻게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오랜 세월 바느질 한 길 걸어보니, 한복 짓는 일이 꼭 사람 사는 일과 같다고 말하는 이봉이 대표를 만났다.

 

사진=김애진 작가
작은 일이라도 손에서 놓치 않는 선생. 사진=김애진 작가

◆ 생활 바느질, 자연스레 작품이 되다

바느질의 시작은 그저 생계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놓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에 바느질이 대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대표가 젊은 시절만 해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직 한복을 입고 생활했다. 어린 시절 역시 대표의 어머니는 가족들의 옷은 물론 침구류와 소품까지 손수 지었다.

숟가락을 사용해 밥을 먹는 것을 자연스레 배우듯 바느질은 생활 그 자체였다. 결혼 후 대표 역시 어머니가 그러하셨던 그대로 가족의 옷을 지었다. 더욱이 손재주가 좋다는 얘기를 줄곧 들어온 터였다. 자연스레 다시 일을 시작하려 했을 때 바느질은 유일한 선택이었다.

 

사진=김애진 작가
기계를 사용한 듯 반듯한 바느질. 사진=김애진 작가

지금 상호 이름 그대로 진선미한복을 열며 개인 한복집을 시작한 것은 1987년의 일이다. 생활 바느질에서 직업으로 그리고 대표의 성향과 삶의 철학이 담겨지면서 대표의 바느질은 작품의 세계에 들어서게 됐다. 처음부터 ‘이것은 작품이다’라고 한복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

바늘과 실, 옷감을 들고 한복을 지으면 지을수록 그 방법과 역사가 궁금해졌다. 한 번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끝을 봐야 풀리는 성격 덕분이었을까? 이봉이 선생은 궁중복식 재현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사진=김애진 작가
진지함 속 밝고 긍정적인 심신의 소유자. 사진=김애진 작가

“고생 많이 했죠. 세상 쉬운 일 없다는 걸 이 나이 먹으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학위 때는 정말 고생 많았어요. 조선 시대 궁중복식에 대해 고증 연구도 어려웠지만, 연구에 필요한 모든 의복과 장신구까지 손수 재현했거든요. 재현하는 것 역시 그냥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죠. 전통 방식을 철저하게 고수해야 돼요. 그리고 전문 학자들에게 검수를 받아야 하죠. 쉽진 않았지만, 지나고 나니 하길 참 잘했다 생각해요. 모든 일이 다 그래요.”

 

사진=김애진 작가
보조도구 없이 바늘귀에 실을 끼우는 선생. 사진=김애진 작가

◆ 손으로 직접 왕의 옷을 짓다

정확히 언제부터 궁중복식에 관심을 가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선생은 말한다. 지금 사람들은 퓨전 한복이라는 이름으로 한옥마을이나 궁 등에서 재미 삼아 한복을 입는다. 이봉이 대표에게 한복은 전통이라 할 것도 없는 그저 하나의 생활의복이었다.

“그때는 누구나 한복을 입고 다니는 시절이었죠. 지금 세탁소에 옷을 맡기는 것처럼 보통의 날에 입는 한복들을 한복집에 맡기고는 했어요. 어떤 일을 하다보면 더 좋은 방향으로 하고 싶잖아요? 한복을 계속 만들다 보니 더 좋은, 더 전통적인 방법을 찾게 되었죠.”

 

사진=김애진 작가
작품 작업에서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손으로 짓는다. 사진=김애진 작가

그 과정이 지금을 만들었다. 옛 시대의 평민이 입던 한복들은 일반 서민의 바느질에 머물지만 왕가의 한복은 좀 더 전문적인 방법들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이봉이 대표가 궁중복식 연구와 복원작업을 시작한 이유일 테다. 왕의 의복은 당대 최고의 방법들로 지어졌을 것이니 말이다.

 

사진=김애진 작가
곱디 고운 전통 한복. 사진=김애진 작가

박사학위 이전 대표는 전통 한복과 궁중복식을 배우고 작품으로 내놓으며 꾸준히 연구했다. 바늘과 실, 옷감만 구입했을 뿐 모든 것을 손수 지었다. 전문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작업은 보다 확대됐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고종 황제의 구장복(대례복: 제례 때 착용한 의복)과 강사포(조복: 백관 접견 시 착용 의복), 황룡포(평상 시 업무 복장), 순종의 십이장복(대례복), 영친왕의 흥룡포 등 조선 왕조 후기 왕들의 의복은 대표의 손에서 온전한 한 벌의 옷들로 완성됐다.

 

사진=김애진 작가
경력과 함께 쌓인 학력과 그 결과물인 단행본 출간 사진=김애진 작가

국립고궁박물관이나 세종대학교박물관 등에 유물로 남아있는 옷들도 있지만 대부분 유물도 없다. 조선 후기였기에 가능한 황제와 왕들의 사진이나 당대 제도를 적어둔 고서들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현했다.

도식, 소재와 치수, 마름질 방법 등 자료를 분석해 제작하고 소매, 깃, 고름, 동정 등 각 부위의 제작 방법도 철저한 검증을 통해 복원했다.

 

사진=김애진 작가
전통을 지키고 정성으로 짓는 한복. 사진=김애진 작가

◆ 전통을 재현하고 복원하는 것은 미래를 향한 일

대표는 복원 제작된 옷들을 여러 곳에서 전시 중이거나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내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사진과 이야기만으로도 그 과정과 결과가 놀랍기만 하다.

순서에 맞게 차례를 지켜 하다보면 결국 된다는 것을 늘 바늘 끝에 깊이 새겨왔기에 가능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사진=김애진 작가
호탕하게 웃는 선생. 사진=김애진 작가

진선미한복 매장에는 시대 유행을 따르는 고운 한복들도 여럿이다. 시대는 흐르고 세상은 변한다.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는 것 없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도 없다. 오랜 세월 한복 짓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이다.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취향은 늘 변화하지만, 또 다시 옛것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대표가 전통 한복의 계승을 위한 행보를 계속 이어가는 이유다. 과거와 오늘에서 한복 제작 방법을 계속 발전시킨다.

 

사진=김애진 작가
허리를 세우며 건강도 늘 전념해야 한다. 사진=김애진 작가

매장에서의 작업을 통해 시대 유행에 맞는 소비자 중심 한복을 지으며 현대미의 흐름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그리고 전통 방식을 따라 손바느질을 하며, 과거와 오늘을 담아 미래를 위해 남겨두는 작업도 이어가는 것이다.

가장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궁금증들을 결코 버려두지 않은 언행일치의 삶, 바늘에 실을 꿰어 ‘짓는’ 인생을 살아내는 선생의 언행이 현대 한복과 재현 한복 작품들에 고스란히 담겼다.

 

[진선미한복 이봉이 대표]
경상북도 한복 최고 장인
경북대학교 전 겸임교수
성신여자대학교 의류학과 이학박사
서울시 무형문화재 11호 침선장 이수자
한국 궁중복식 연구원 이사
2018년 제2회상주 전통명주 한복 컬렉션
2018년 미국 독립기념 ‘왕조 복식 친견 패션쇼’
중국 운남 민족대학 박물관 전시
대한민국 한류문화산업예술대상 의상 부문 공로,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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