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2.전통과 생명의 놋그릇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2.전통과 생명의 놋그릇
  • 최정은
  • 승인 2018.08.28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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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주유기공방 김완수
경주유기공방 찜기 유기. 사진=민혜경 작가
경주유기공방 찜기 유기. 사진=민혜경 작가

[블로그뉴스 =최정은 기자]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그릇이 있다. 은은하게 빛나는 황금색의 기품과 함께 전통과 생명이 느껴지는 그릇, 유기다.

웰빙 시대, 건강 마니아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유기는 항균작용뿐 아니라 보온효과와 견고성까지 두루 갖춘 그릇이다.

경주 민속공예촌 내, 경주유기공방은 우리 전통의 멋과 혼을 담아 유기를 만드느라 1년 365일, 담금질이 분주하다.

3대를 이어 전통 유기의 진가를 널리 알리고 있는 경주 유기공방의 김완수 유기 장인을 만났다.

가질 작업 중인 김완수 장인. 사진=민혜경 작가
가질 작업 중인 김완수 장인. 사진=민혜경 작가

장인정신으로 이어온 3대의 전통과 열정, 경주유기공방
경주시 하동 공예촌길, 경주민속공예촌에 있는 경주유기공방은 유기로 3대의 전통을 이어가는 곳이다.

경주유기공방에서 만드는 유기는 주물 방짜 놋그릇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방식인 주물방식과 독창적인 디자인 개발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유기를 만들고 있다.

50년간 유기를 만들어온 김완수 씨는 방짜 유기와 주물 유기의 차이점에 관해 설명한다.

“주물 제조방식인 유기그릇보다 놋그릇을 두드려 늘려서 만든 방짜유기가 좋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놋그릇은 용도와 특성에 따라 제조방식부터 다릅니다. 징, 꽹과리 등 소리가 필요한 제품이나 양푼이, 대야 등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한 제품은 두드려 만들었지만, 그 외 제기, 반상기, 식기 등 생활소품들은 대부분 주물방식으로 만들어 왔어요. 방짜유기라고 불리지만, 손으로 직접 두드리는 방법보다는 두께를 얇게 늘리는 압연 기계나 성형 기계로 만들어 내는 게 현실입니다.”

그의 말대로 황금빛의 유기가 탄생하는 과정은 험난하고 치열하다.

고온에서 작업하는 주물 공정부터 그릇을 깎고 다듬는 모든 과정이 수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방짜유기 생활칠첩반상기 세트. 사진=민혜경 작가
방짜유기 생활칠첩반상기 세트. 사진=민혜경 작가

유기를 깎는 과정은 미세먼지보다 세밀하게 부서지는 쇳가루와 강렬하고 날카로운 소음 속에 이루어진다.

어두운 실내에서 거무튀튀했던 놋그릇이 다듬어지며 발산하는 황금빛을 보고 있으면, 환골탈태의 지난한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완수 씨가 만드는 유기는 정확하게 구리 78%와 주석 22%를 합금한 청동(방짜)을 10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용해해 거푸집에 부어 찍어낸다.

그다음에 그릇을 단단하게 만드는 담금질, 표면을 일정하게 깎아내는 가질 작업까지 일사불란한 수작업 속에 품위 있고 견고한 유기그릇으로 탄생한다.

2대와 3대가 함께하는 유기공방. 사진=민혜경 작가
2대와 3대가 함께하는 유기공방. 사진=민혜경 작가

현대적 감각으로 명품 유기에 도전하다, 김완수 유기장인
김완수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찍이 아버지의 유기공장에서 장인의 꿈을 키웠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손으로 만들고 다듬는 걸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유기공장에서 기초부터 다졌던 유기작업은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고 한다.

유기공장 일을 돕다가 사업이 어려워지자 그는 1970년대 초부터 유기 공방 회사에 금속공예 디자인개발(석고조각)로 취직해서 유기에 대해 꿈과 열정을 이어갔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오직 유기 만드는 일에 젊음을 바쳤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형틀을 만들어 낼 만큼 손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샘플제작부터 디자인까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유기 개발에 힘을 쏟았다.

그는 타고난 감각과 성실함으로 유기의 공정과정을 개선해 나갔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기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획기적인 방식으로 공정과정을 줄이고 금형의 두께를 얇게 만드는 등 경비와 시간을 줄였다.

경주유기공방 생산전시판매장. 사진=민혜경 작가
경주유기공방 생산전시판매장. 사진=민혜경 작가

기술적으로는 완성에 도달했지만, 항상 배움에 목말랐던 그는 유기그릇을 만들면서 늘 사진과 그림을 찾아보며 독학으로 디자인 공부를 했다.

타고난 감각에 열정까지 보태어져 자신만의 석고 틀을 개발하고 응용해서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다.

특히 완성된 물건을 검수하는 과정에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치밀함까지 갖춰 유기의 완성도를 높였다.

다른 곳에 비교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상품개발에 힘써서 높은 품질의 유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1983년 아버지가 공예촌 사업협동조합 조합장직을 맡으며 경주로 돌아오면서 김완수 씨도 서울에서의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 경주로 돌아오며 사업에 날개를 달았다.

지금은 대를 이어 넷째 아들이 유기의 전통을 빛내겠다고 팔을 걷고 나섰다. 2016년에는 경상북도 뿌리 기업으로 선정됐다.

실속 있는 반상기세트는 물론이고 아름다운 장식품과 선물용 제품들을 다양하게 생산해내고 있다.

경상북도 우수제품브랜드인 실라리안 참여업체로 수출시장까지 바라보며 최고의 품질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유기그릇은 초기에 정성으로 길만 잘 들이면 견고하게 사용할 수 있는 웰빙 그릇입니다. 놋그릇 자체가 환경에 민감하지만, 살균력이 있기 때문에 삶아 소독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어요. 사용하다가 얼룩이 생길 때는 파란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서 결을 따라 닦으며 3주 정도 사용하면 비로소 놋그릇 고유의 은은한 색상을 즐길 수 있게 되지요. 우리 조상의 멋과 품위가 서린 유기그릇은 우리 몸의 건강까지 생각하는 일거양득의 그릇입니다.”

그는 무엇보다 쉽게 깨지지 않고 보온과 보냉 효과가 뛰어나며 항균작용은 물론 독성물질에 반응하는 특성 등 유기의 진정한 가치가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랄 뿐이다.

게다가 수입 그릇과 트랜드에 밀려 우리 전통 유기의 소중한 의미와 정서가 잊혀가는 것도 안타깝다.

김완수 장인의 뜨거운 유기사랑은 3대를 이어서 더욱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유기를 제작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최고의 그릇으로 인정받기를 바랄뿐이다.

[(유)경주유기공방 김완수]

1969년 선친 마포금속공예사 창업. 가업종사
1973년 금속공예 디자인 개발(석고조각) 자영업 시작
1982~2016년 공예품경진대회 공예품대전 특선, 은상 등 수상
2010년 호주 브리스번 경상북도주최 공예전시회 참가
경북도지사 제2348호 표창
2011년 영호남 공예명품 전시회 참가
제6회 대한민국 공예문화박람회 참가
2015년 한국공예협동조합연합회장 표창
2015년 경주시 관광기념품개발 육성위원 위촉
2017년 대한민국 공예문화박람회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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