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뉴스=정세인 기자] 전국에 있는 국립박물관의 국보급 유물을 만날 때, 누구나 한 번쯤 드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과연 진품일까, 복제품일까.

진품은 전시 중 손상의 우려가 있고 여러 박물관에 같이 전시하기 위해 복제품을 만든다는데, 이런 섬세하고 전문적인 작업을 하는 이는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경탄보다 경외감이 들 만큼 예술의 경지가 느껴지는 금속 유물복제의 장인, 김진배 씨가 그 주인공이다.

또 하나의 유물을 만드는 그를 만나기 위해 경주 하동 민속공예촌 내의 작업실, 삼선방을 찾았다.

백제금동대향로를 작업 중인 김진배 금속공예 장인. 사진=민혜경 작가
백제금동대향로를 작업 중인 김진배 금속공예 장인. 사진=민혜경 작가

진품만큼 귀하고 품격 있는 복제품을 만들다, ‘또 하나의 유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에 전시된 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를 보면, 그 정교하고 치밀한 아름다움에 감탄이 나온다.

앞발을 치켜든 용 한 마리가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고 연잎 표면에는 불사조, 학, 사슴, 물고기 등 26마리의 동물이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탄식을 자아내는 이 향로는 진품이 아니다.

2005년 이 대향로의 복제품을 만든 사람이 바로 금속 유물복제 전문가, 김진배 씨다.

지난 35년간 그가 복제한 유물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전국 각 국립박물관, 전시관의 유물이 그의 손끝을 거쳐 다시 태어나는데, 진품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재현 솜씨가 뛰어나고 완벽하다.

천마총금관 복제 작업을 하고 있는 김진배 금속공예 장인. 사진=민혜경 작가
천마총금관 복제 작업을 하고 있는 김진배 금속공예 장인. 사진=민혜경 작가

유물 복원은 외형만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옛 선인의 예술혼을 담아내는 진지한 작업이다.

15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신라 금관을 복제하는 그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숭고함이 느껴질 정도다.

신라인의 예술성까지 담아낸다고 할 만큼 그의 관찰력은 예리하고 손끝은 정교하다.

신라 시대 금속장인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일본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금속 공예계의 독보적 존재, 김인태 선생은 그의 아버지이자 스승이다.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자연스레 유물에 관심을 두고 유물복제에 입문했다.

동국대 국사학과 재학 중에도 부친의 가르침을 받아 유물복원 작업에 몰두한 덕분에 강도 높은 유물 복제 기술을 전수할 수 있었다고.

부친이 작고한 1998년부터 그 명성을 그대로 이어 지금까지 꾸준히 복원한 유물만도 1천여 점이 훨씬 넘는다.

국보 90호 부부총귀걸이 제작 과정. 사진=민혜경 작가
국보 90호 부부총귀걸이 제작 과정. 사진=민혜경 작가

복제품을 뛰어넘어 문화재의 예술혼을 담다, ‘장인의 꿈’
유물 복제의 전 과정은 온전히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그의 문화재 복제 작업을 돕는 부인 박정희 씨가 함께 하는 작업장에는 고요하고 진지한 적막이 흐른다.

워낙 집중을 필요로 하는 치밀한 작업이라 하루 10시간 이상 정신을 쏟아서 하는 날들이 많다고.

전통 수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도 제작 과정에 선조의 혼을 담아 장인정신으로 완성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가 재현한 작품에는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 복제품, 감은사지에서 출토된 사리기 복제품, 백제금동대향로 복제품, 국보78호인 금동반가사유상 등의 걸작들이 있다.

유물복제가 힘든 건 복제를 위한 교본이나 도구가 따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진배 씨는 망치와 가위, 송곳 등 기본 공구 외에는 작업에 필요한 모든 공구를 스스로 만든다.

못이나 쇳조각 끝을 날카롭게 갈아서 만든 맞춤형 공구 2천여 개가 공방 벽에 빼곡하게 걸려있다.

화덕과 아궁이 불 대신 가스 불을 쓰는 것 말고는 신라 시대 금속장인들의 수작업과 거의 똑같은 방식이다.

유물 한 점 복원하는 데, 3주에서 5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국보 90호 부부총귀걸이 제작 과정. 사진=민혜경 작가
국보 90호 부부총귀걸이 제작 과정. 사진=민혜경 작가

몇 달을 공방에 칩거하는 작업과정은 고되고 고독하지만, 삶의 의미를 찾는 시간이다.

그는 선조가 남긴 문화재와 예술 혼을 재현한다는 자부심과 긍지 없이는 지속하기 힘든 작업이라고 말한다.

김진배 씨는 유물 복제에 앞서 박물관에서 유물의 실측을 한 뒤, 작품 당 사진만 수백 장씩 찍는다.

모양은 물론 색감도 같아야 하므로 소소한 장식까지도 꼼꼼하게 찍는다.

온종일 사진작업만 할 때도 있을 정도로 철두철미하다.

실측과 사진을 비교하고 모형을 통해 분석하면서 복제 준비를 한다.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자르고 수없이 두들기고 붙이고 색을 입히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작업은 화려한 외양만큼이나 섬세하고 난해하다.

금관이나 귀고리의 도금과 주물 등에 색을 입히는 마지막 과정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본인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작업을 마치지 않는다고 할 만큼 완벽주의자인 김진배 씨는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유물 등 작업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풍부한 제작 경험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에게는 단순한 복제품을 뛰어넘어 관람자에게 진품의 감동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그래서 유물과 유적에 대한 연구와 자신만의 작품개발에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삼선방의 실내 풍경. 사진=민혜경 작가
삼선방의 실내 풍경. 사진=민혜경 작가

유물의 문양과 형태를 응용하여 신라예술의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순은으로 만든 잔, 곡옥 목걸이, 귀걸이와 팔찌 등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유물복원 기술과 복제품의 작품성은 그의 수상경력이 뒷받침한다.

유물을 모티브로 해 만든 펜던트, 목걸이 등의 창작품이 전국 공예품경진대회 특선, 전국 관광기념품 경진대회 장려상을 차지했다.

1993년부터 2001년 경상북도 공예품 경진대회, 관광기념품 경진대회에서 9년 연속 금상과 장려상 등을 수상하고 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0 행사 공로를 인정받아 도지사 표창도 받았다.

김진배 씨는 그동안 자신이 제작한 복제 유물을 모아 작은 박물관을 갖고 싶다는 꿈을 말한다.

“전국의 박물관에서 제가 만든 복제 복원품이 전시되고 있는 것을 보면, 뜨거운 자부심과 보람을 느낍니다. 그동안 작업했던 복제품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전시물들을 모아 한 곳에서 시대별로 전시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를 바라보는 그의 예리한 눈빛이 한 번 더 뜨겁게 빛나는 순간이다.


[삼선방 김진배]
1993년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 특선
1997년 경상북도 관광기념품 경진대회 금상
1998년 경상북도 공예품 경진대회 금상
1999년 경상북도 관광기념품 경진대회 특선
2001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0 행사공로 도지사 표창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등 28건 33점 제작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 외국박물관 한국관 지원 사업, 금동대향로 등 30점 제작
2010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한국문화관 전시 황금유물 20점 등 유물제작
2010년 한성백제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등 37점 제작
2012년 국립중앙박물관 국보78호 금동반가사유상, 황남대총금관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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