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0.민족의 흥, 장승에 새기다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0.민족의 흥, 장승에 새기다
  • 정세인 기자
  • 승인 2018.09.27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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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뉴스=정세인 기자] 타고 나는 것이 있다. 천성, 천직, 천명. 우리는 그것을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 여긴다.

목석원 김종흥 명인에게 장승을 만들고 탈춤을 추는 것은 하늘이 내린 운명이다.

민족의 흥을 자신의 몸을 통해 장승으로 탄생시키고 정신과 육체를 다해 민족 문화를 예술로 승화한다.

꾸준한 연구와 노력으로 국내외를 오가며 한민족 전통문화를 알리는 김종흥 명인을 만나본다.

심신의 혼을 넣어 내리치는 타목. 사진=김애진 작가
심신의 혼을 넣어 내리치는 타목. 사진=김애진 작가

장승으로 이어진 타고 난 흥
하회마을 초입, 가지각색의 장승이 둘러 서 있는 한옥 한 채가 눈에 든다.

목석원. 입구 현판에 새겨진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면 묵직한 기운이 저절로 느껴진다.

이곳은 김종흥 장승명인의 삶터다. 아니, 그의 심신으로 만들어진 장승의 터라 말하는 것이 옳을 테다.

안으로 들어서면 벽면 가득 걸린 그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장승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그의 사진 안에도 오롯하다.

강렬한 타목, 불타는 눈빛과 표정이 장승을 조각할 때 그의 심중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진 액자 아래로 다양한 표정을 지닌 각양각색의 장승들이 객을 반긴다.

주문으로 만들어진 것들도 있고, 그저 마음 따라 완성된 것들까지 모두 하나의 작품이고 이야기고 역사다.

김종흥 명인이 장승을 제작하고 있다. 작은 부분까지도 집중해야 한다. 사진=김애진 작가
김종흥 명인이 장승을 제작하고 있다. 작은 부분까지도 집중해야 한다. 사진=김애진 작가

“모든 장승은 하나하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이건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제작된 것 중 하나고, 또 여기 있는 것은 마을 입구에 세우는 장승이죠.”

장승과 어울린 집 안팎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인한 기운과는 달리, 선생의 첫인상은 무척 훈훈하다.

상투를 틀어 올린 백발의 훈장님 같은 얼굴에 맑고 강한 눈빛이 반짝인다.

털털한 웃음으로 객을 맞이하는 그를 따라 안채에 들어섰다.

방 안 가득 사진 액자와 함께 수많은 자료가 꽂힌 서가가 눈에 든다.

오늘을 기록하는 것은 자신이 지나온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고 누군가의 역사는 나아가 후대에게 남겨질 자료가 된다.

더욱이 무언가를 한 길로 이어온 사람의 역사는 그 존재만으로 큰 가르침이 될 터다.

다소 쑥스러운 미소를 띠며 꺼내 보여주는 자료에는 선생 자신의 이야기뿐 만 아니라 장승, 하회마을, 탈춤까지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정원 곳곳에 세워진 정겨운 표정의 장승들. 사진=김애진 작가
정원 곳곳에 세워진 정겨운 표정의 장승들. 사진=김애진 작가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늘 놀았던 거 같아요. 동네 친구들과 뛰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활기찬 아이였어요. 심심한 것을 싫어하니 혼자 있을 때도 이것 저것 만들며 시간을 보내기도 일쑤였죠.”

나무며 돌을 주어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 내는 것은 그의 어린 시절 트레이드마크일 정도였다고.

선생은 하얀 수염을 쓸며 어린 손자를 바라보는 훈훈한 미소를 띠고 오래 전 옛 모습을 떠올렸다.

타고난 그의 흥은 젊은 시절을 지나 장승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의 모든 활동 속에 담겨졌다.

장승, 공연이 되다
장승을 만드는 과정은 목재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한다. 나무를 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혹은 그림 구상이 떠오르면 그에 맞는 나무를 찾아 길을 나선다. 나무에 혼을 불어 넣는 것, 장승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장승 제작을 공연으로 만들려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승을 만드는 일이 마냥 좋아 생계를 위한 직업과 함께 간간히 작업을 이어가던 중,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을 위해 이곳 하회마을로 들어섰다.

“하회마을 초입에 자리를 잡고 목석원이라 이름 지었어요. 그동안 만들었던 장승을 둘러 세우고 아담한 정원을 꾸몄죠. 저는 장승이 민족 예술이라 생각해요. 이곳에서 장승의 혼을 모든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장승을 설명하는 김종흥 명인. 사진=김애진 작가
장승을 설명하는 김종흥 명인. 사진=김애진 작가

목석원은 1992년 관광농원으로 인증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더욱 알려지게 됐다.

그 후 영국여왕의 하회마을 방문 등 행사들이 이어지며 하회마을은 더욱 유명해졌다.

영국여왕과 축배 장면이 찍힌 사진 한 장을 내 보이며 선생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직도 그날의 일이 생생해요.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아요. 영국 여왕이 하회마을을 찾았을 때 하회마을은 대대적인 축제현장이었어요. 그날은 여왕의 생일이었는데, 저 역시 생일이었죠. 여왕의 생일상을 한국 전통식으로 차리고 건배제의를 제가 할 수 있게 된 거죠.”

여왕의 방문과 같은 생일날을 가진 것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은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찾아오지 않는 법이다.

선생은 그저 흥이 많아 탈춤을 췄고, 우리민족의 전통과 역사, 문화를 계승하고자 장승을 만들었다.

내부 곳곳에 걸린 명인의 역사 사진. 사진=김애진 작가
내부 곳곳에 걸린 명인의 역사 사진. 사진=김애진 작가

그 시간 속에 우연은 적절한 때에 맞춰 행운으로 찾아왔다.

억지를 부려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도 부단한 애를 써가며 고통을 자처하지도 않았다.

흐르는 시간에 맞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묵묵히 해왔을 뿐이었다.

“장승 제작 퍼포먼스를 구상한 것도 그즈음이었어요. 사람들은 장승이 마을 어귀에 세워진 흔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장승은 우리 민족성과 민족정신, 민속신앙을 모두 담고 있거든요. 시대가 변해도 그 의의는 달라지지 않아요. 저는 장승 제작 과정을 공연으로 보여주면서 장승의 의미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그의 생각은 옳았다. 처음에는 국내에서보다 외국에 더 빨리 알려졌다.

각종 국제 행사에서 초청을 받게 되어 공연에 나섰다.

외국인들은 대한민국의 전통문화를 접하고 감탄을 토해냈다.

국내에도 그의 명성이 알려지고 선생의 첫 생각처럼 장승을 새로이 다시 보는 시선들이 늘어났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사용했던 장승들. 사진=김애진 작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사용했던 장승들. 사진=김애진 작가

우리의 민족 문화를 공연예술로 끌어와 장승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공예 제작과 퍼포먼스 공연을 접목시킨 시도는 시대를 앞섰다.

누구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선생의 길은 여전히 내일을 향한다.

오늘을 즐겁게 살며 하루하루를 기록해 나가는 것 역시 미래를 위한 한 방법이다.

우리의 것, 우리 민족은 한도 많지만 흥도 많다는 선생의 말처럼 모든 사람들이 어울려 신명나게 우리 것을 즐기고 나눌 수 있는 길 어귀에 선생의 장승이 안내자가 되어주길 기원한다.

 

[목석원 김종흥]
1999년 제1회 장승만들기 대상
          영국여왕 하외마을 방문 축하 공연 및 축배
2001년 제36회 서울국제기능올림픽대외 행사장 장승 4기 설치
2004년 농림부 장관상 수상
2006년 킨텍스 명인전 장승퍼포먼스
2009년 동화사 축제 퍼포먼스
2010년 호주 브리즈번 시드니 장승제작 퍼포먼스
2012년 중국 한중수교 20주년 행사 참가
2016년 프랑스 장승전시 퍼포먼스
          세계사진총회 피아푸 퍼포먼스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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