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8.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공예가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8.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공예가
  • 정세인 기자
  • 승인 2018.10.25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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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뉴스=정세인 기자] 모든 것은 마음에서 온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건 과거가 괴로웠기 때문만은 아닐 테다.

지난 시간들이 쌓여 오늘을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내공일 것이다.

고뇌 없는 인생은 없지만 모든 것은 마음이 하기 나름이다. 말은 쉬워도 심신을 그대로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이 참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용직 장인의 인생 이야기에서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만나본다.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이용직 장인의 가구. 사진=김애진 작가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이용직 장인의 가구. 사진=김애진 작가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이 좋았던 시작
어린 시절 장인의 주변 기계들은 모두 고장이 났다.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의 아이가 모두 분해했기 때문이다.

손으로 먹고 살게 된 시작은 아마 그때부터일 것이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일찍이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지만 어린 나날에 대해 늘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살림이 넉넉한 집안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저는 직업을 가져야 했어요. 외국으로 학업과 기술을 배우러 갈 기회가 있었지만 집안 문제로 무산되고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죠. 가족의 추천으로 상 만드는 공장에 취직을 했어요. 무언가를 만들고 물건 위에 그리기 좋아하던 제 취향에 맞는 일이었죠.”

지금이야 상 문화가 없었지만 예전 좌식 생활을 주로 하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상이 있었고 가지고 있는 상 종류와 크기도 다양했다.

선한 웃음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이용직 장인. 사진=김애진 작가
선한 웃음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이용직 장인. 사진=김애진 작가

선생이 처음 일하게 된 공장은 나무로 된 상을 만드는 곳이었다.

상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그가 주로 하던 업무였다.

손재주가 있었던 덕분에 누구보다 빠르게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이내 자회사 형태의 공장을 맡아 운영하게 됐다.

장인의 길에 이르기 전 기술과 사업, 관리 등을 배우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공장 운영 초기에는 몇 동료들과 공동 운영을 했지만 이런저런 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결국 공장 문을 닫게 됐다.

사업의 실패는 생활에 불편과 낙담을 주었지만, 지나고 나니 그때 문을 닫은 후 자신의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혹은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 웃을 수 있지만 그때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죠. 당시 제 곁을 지켜준 것은 가족이었어요. 열심히 일하는 모습 밖에 보이지 못하고 다른 집 아이들처럼 소풍 한 번 제대로 가본 적 없지만 두 자녀는 반듯하게 잘 커줬어요.”

지금 웃을 수 있는 것은 그런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자재가 가득한 목재 작업실. 사진=김애진 작가
자재가 가득한 목재 작업실. 사진=김애진 작가

가족의 응원으로 혼자 이어온 길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수입은 자연스레 끊겼다.

가족을 바라보니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음을 다지고 작업에 몰두했다. 독립된 판로를 개척하려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장인이 믿은 것은 딱 하나, 좋은 제품은 팔린다는 신념이었다.

제품에 차별을 두고 자신의 색깔을 찾기 시작한 것이 이때다.

수많은 책을 읽고 해외 디자인들을 살펴보고 전통 문양을 되짚어 보면서 연구에 매진했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밤이고 낮이고 나무판을 가지고 작업을 이어갔다.

기존 상이 각진 형태라면 장인의 상은 곡선형이었고 다른 상들이 상판만 강조할 때 장인의 상은 다리에 포인트를 줬다.

완성된 상을 등에 이고 시장 앞을 서성였다.

“주변머리가 없는 성격 때문에 가게 안으로 먼저 들어가 상을 사라는 말은 못하고 그 앞만 계속 오갔어요.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 저를 눈여겨보던 상인들이 그 상을 파는 거냐고 먼저 물어왔죠. 신기했고 기뻤죠.”

이용직 장인이 옻칠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애진 작가
이용직 장인이 옻칠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애진 작가

차별화, 그 시대에도 색달라 보이는 디자인의 상은 팔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정신없는 작업 시간이 이어졌다.

주문은 밀리고 장인과 안주인은 허리 한 번 필 새 없이 밀려드는 주문량에 맞춰 일만 했다.

처음에는 판매 자체로 재미가 있었지만, 이내 공허함이 들었다.

안사람 역시 건강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나 좋은 것도 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 2002년의 일이었다.

더 나은 작품을 위해
주문량은 줄이고 공예품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역 대학의 산학 연구 기관의 도움을 받아 목공예에 대한 조언을 받으며 ‘한국의 목가구’라는 책과 함께 습작을 시작했다.

책 안에는 도면과 기법 등이 사진과 함께 잘 설명되어 있었다.

하나하나 직접 해보며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색을 찾아갔다.

“기술은 남들보다 떨어질지 몰라요. 하지만 디자인만큼은 자신이 있었죠. 모르겠어요. 머릿속에는 늘 무언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거예요. 이미지가 떠오르면 밤잠을 설쳐 가며 작업에 몰두하게 됐고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공모전에 지원을 하게 됐어요. 입상하면 좋겠지만 사실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했죠. 혼자 하는 작업이다 보니 스스로의 수준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결과는 기대보다 좋았다. 유럽스타일과 전통 문양을 접목시킨 상을 출품하며 우수상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장인의 지난 노력을 보여주는 상장들. 사진=김애진 작가
장인의 지난 노력을 보여주는 상장들. 사진=김애진 작가

지금까지도 다채로운 디자인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목공수리기능장, 장애인 공예전 심사위원, 고가구 복원 등 장인의 이름은 다양하게 불린다.

앞으로도 창의적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며, 작업장을 개선해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무 이야기를 나누며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를 바라고 있다.

“제가 장애인이에요. 손가락 끝 마디가 없죠. 고등학교 시절 철강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이리 됐어요. 저는 힘든 줄 모르고 살아왔지만 보는 이가 불편할까봐 늘 조심하는 편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주어진 환경을 헤쳐 나가며 더 열심히 사는 길뿐이에요. 그렇게 살다보니 지금은 무척 만족스럽네요.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힘들지 않아요. 참 감사한 삶이죠.”

아무 거리낌 없이 옻칠을 하고 목판 작업을 하는 장인에게서 삶의 진중함을 전해 배운다.

감사함이 묻어나는 삶처럼 보다 더 아름답고 독특한 장인만의 작품들을 기대해 본다.


[이목전통칠기공예연구소 이용직]
2011년 영호남공예 명품전
          세계공예가회 아태지역총회 참석 및 전시
2011년~2013년 경상북도 장애인 기능경기대회 심사장
2014년 대한민국공예품대전 중소기업청장상
          대한민국정수미술대전 기업체매입상 우수상 2점
2015년 대구디자인협회전
2017년 중소기업중앙회회장 표창장
          대구공예대전 초대작가
          경상북도 산업디자인전람회 공예디자인 추천작가
          문화재수리기능자 8633호[칠공]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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