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유기 김형도

경북유기 김형도 장인의 유기 작품. 장인에게 유기는 운명이었다. 사진=민혜경 작가
경북유기 김형도 장인의 유기 작품. 장인에게 유기는 운명이었다. 사진=민혜경 작가

예부터 태어나 처음 받는 첫돌 상에는 재복과 식복을 빌며 황금빛 유기그릇에 하얀 쌀밥을 담아 정성스레 올렸다. 

가족의 축복과 정성이 가득 담긴 유기는 아름다운 전통이었다. 

조상의 전통과 삶의 지혜가 함께 녹아서 만들어져 생명의 그릇이라고 불리는 유기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바친 경산, 경북유기의 김형도 유기 장인을 만났다. 

장인의 손길만 닿으면 거무스름한 금속 덩어리에서 황금빛 유기로 탄생하는 마법 같은 공방에서 치열한 유기 인생을 보았다.

경북 경산시 경북유기 공반 내부 모습. 사진=민혜경 작가
경북 경산시 경북유기 공반 내부 모습. 사진=민혜경 작가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작은 박물관, 경북유기 작업장
김형도 유기장인의 공방은 경산시 와촌면 대동리의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있다. 

낡고 허름해 보이는 작업장으로 들어서자 장인의 인생 역정이 한눈에 느껴질 만큼 치열한 삶의 현장이 펼쳐졌다. 손때 묻은 도구가 걸려있는 작업 현장은 살아있는 유기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고색창연하다.

수십 년 동안 매일같이 주물 작업부터 마무리까지 유기작업을 하기에 최적화된 공간들이다. 장인에게는 수십 년 동안 자신이 가장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도록 꾸며진 곳이라 더욱 애정이 가는 곳이다. 

웬만한 도구는 모두 직접 만들어 쓰다 보니 전기용접과 산소용접기까지 없는 기구가 없고 못 만드는 도구도 없다.

경북유기 전시장 모습. 사진=민혜경 작가
경북유기 전시장 모습. 사진=민혜경 작가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삼복더위의 여름이나 혹한의 겨울에도 뜨거운 불 앞에서 쇠와의 작업은 피할 수 없는 일상이었다. 

17살에 유기를 배우기 시작한 소년은 19살, 유기 기술자가 되기 위해 서울 입성까지 일사천리로 뚝심의 행보를 이어갔다. 

잠을 줄이고 새벽 3시부터 일어나서 유기를 깎으며 끊임없이 연습에 매진한 덕분이었다.

생업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김형도 장인에게 유기는 운명이었다. 

2004년 경산시 와촌면 대동리에 정착하기까지 전국에 수없이 많은 유기 공방에서 기술을 익히고 연마했다. 

누구보다 좋은 조건의 스카우트로 불려 다니며 가는 곳마다 후한 대접을 받았고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무형문화재인 이봉주 명장에게서 기술을 익혔고 거창유기, 오부자공방, 봉화유기 등 유기로 유명한 공방 곳곳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문득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유기는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만큼 보람도 컸기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오로지 유기만 만들며 살 수 있었습니다.”

경북유기 김형도 장인의 유기 작품. 사진=민혜경 작가
경북유기 김형도 장인의 유기 작품. 사진=민혜경 작가

생활의 지혜와 아름다움이 담긴 유기, 웰빙 밥상에서 사랑받다
방짜 유기는 1천여 년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전통 식기다. 

우리나라에서 유기를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확실치 않지만 넓은 의미에서 동합금의 일종인 동검이나 동경 같은 물건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삼국 시대에는 주로 불교와 관련돼 제기, 수저, 밥그릇, 향로 등을 생활 전반에 걸쳐 사용하기 시작했다. 상류층이 쓰던 유기가 일반인에게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건 조선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일제 강점기에 유기 원료인 청동을 군수용으로 쓰느라 놋그릇을 만들지 못하게 하면서 유기의 역사는 잠시 빛을 잃는 듯 했다. 

경북유기 김형도 장인의 유기 작품. 사진=민혜경 작가
경북유기 김형도 장인의 유기 작품. 사진=민혜경 작가

6·25를 겪으면서는 가벼운 양은그릇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난방 방식이 재래식 아궁이에서 연탄 화덕으로 바뀐 것도 유기를 멀리 하게 된 원인이다. 

연탄에서 나오는 유독가스가 놋그릇을 변색시켜 관리가 힘들어지자 스테인리스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유기가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유기의 우수성이 전해지며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방짜유기의 효능이 증명되고 있다. 

유기에는 해충을 쫓는 신비한 효능이 있으며 멸균 효과도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옛날에는 미나리에 붙어 처치 곤란한 거머리를 놋수저로 물리쳤다고도 한다. 

십수 년 전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던 O-157균을 방짜유기 안에서 배양했더니 하루도 안 돼 모두 죽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주석은 자체만으로 상당한 살균효과가 있다고 적혀있는데, 바로 청동에 들어있던 주석 성분 때문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인간에게 꼭 필요한 미네랄 성분인 구리, 아연과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등이 미량 검출되기도 했다.

경북유기 김형도 장인이 유기를 연마하고 있다. 사진=민혜경 작가
경북유기 김형도 장인이 유기를 연마하고 있다. 사진=민혜경 작가

“지금도 유기하면 떠오르는 것이 어린 시절 명절이나 제사 때 어머니가 온종일 유기를 닦던 기억입니다. 1960년대에 사용되었던 유기는 어머니, 할머니들에게 등골을 휘게 하는 애물단지였어요. 평소에는 가끔 하는 일이지만, 차례나 제사를 앞두면 수십 개에 달하는 유기를 모두 꺼내놓고 집안의 여자들이 둘러 앉아 재를 묻힌 짚으로 문질러가며 광을 내야 했으니까요. 이제는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요. 파란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결을 따라 잘 닦아 쓰기만 하면 유기의 은은한 광택을 살릴 수 있고 삶아 소독할 필요도 없이 건강하게 쓸 수 있는 최고의 그릇입니다.”

조상의 아름다운 전통을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밥상의 건강도 함께 지킬 수 있는 유기의 능력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다. 

뜨거운 음식은 따뜻하게, 차가운 음식은 시원하게, 맛있는 음식은 건강하게, 차려진 음식은 아름답게 지켜주는 유기, 부지런한 장인의 손길이 앞으로 더 바빠지길 기대한다.


[경북유기 김형도]
2004년 경북유기 공방
2008년 경상북도 공예대전 입선
2012년 대구 관광기념품 공모전 특선
2013년 대구 엑스코 중소기업박람회 전시
2014년 서울 코엑스 중소기업박람회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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