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9.나무를 통해 나를 찾아가는 길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9.나무를 통해 나를 찾아가는 길
  • 최정은 기자
  • 승인 2018.09.20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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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뉴스=최정은 기자]나무는 땅에서 자라 하늘을 향한다. 나무를 보며 사람을 떠올린다. 우리는 하늘을 향하고 있을까?

나무에 글씨를 새기며 자신을 찾아가며 확인하는 한 예술가가 있다.

나무를 통해 자신을 보고 다시 나무 위에 마음을 새겨 놓는 서각 작가 피재현이다.

나무를 파내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다.

비우면서 무엇을 채워 넣을지 끊임없는 고민의 연장선에 서있는 작가의 서각과 삶의 철학을 따라가 본다.

피재현 작가가 나무를 만지고 칼을 들어 마음을 새기는 서각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애진 작가
피재현 작가가 나무를 만지고 칼을 들어 마음을 새기는 서각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애진 작가

교사, 서각에 빠지다
노암공방은 작은 시골마을에 자리한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 어귀를 지키며 객을 반긴다.

작가를 만나기 전 마음이 열린다. 땅과 하늘을 잇는 나무의 힘이리라.

공방에서 마주한 피재현 작가의 외모는 앞서 들은 연배보다 젊어 보였다.

청바지와 청남방을 매치한 옷차림 때문이라 생각했다.

대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의 젊음은 맑게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에서 나오는 기운인 것을 알게 됐다.

작업 과정이 고스란히 쌓인 목재 작업실. 사진=김애진 작가
작업 과정이 고스란히 쌓인 목재 작업실. 사진=김애진 작가

“본래 직업은 대안학교 교사였어요. 아이들과 활동 수업을 하면서 서각을 만나게 됐죠. 서각 수업을 하면서 저 스스로가 서각에 빠진 거예요. 정말 재미있는 거죠. 나무가 가지고 있는 물성을 손으로 느끼고 그 위에 제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과정이요. 무척 매력적이었어요. 서각에 집중하는 동안에 시간의 흐름도 잊혔고, 머릿속에 상기되는 기억들도 없었어요. 딴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거죠. 처음 서각에 빠져 지낼 때는 나무에 온통 집중했어요. 나무를 매만지고 칼을 들어 새기는 작업 같은 거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가 아닌 저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니, 그 두 행위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변한 것이 아닌 처음부터 동체였을 지도 모른다.

선생은 2005년부터 개인 공방을 만들고 그곳에서 학교수업 이후의 시간을 서각 작업으로 보냈다.

그러다 장소와 공간의 한계, 무엇보다 서각 작업에 몰두하며 깨닫게 된 자신의 바람이 큰 결심을 부추겼다.

조용한 시골 마을로 공방을 옮기고 학교에는 사표를 냈다.

처음 서각을 만난 지 5년이 지난 2010년의 일이다. 4년 후 공방 옆 작은 집으로 거처까지 옮겼다.

오롯이 서각에 몰입하는 시간의 시작이었다. 목공예 분야인 서각 작업은 나무를 고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좋은 나무를 보면 욕심이 생겨 공방 옆 목판작업실에 나무는 쌓여갔다.

서각을 하기 위한 시작이 나무에 있지만 비우는 것의 시작 역시 나무에 있었다.

비워야 채워지는 삶의 지혜와 철학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여전히 끝나지 않는 숙제다.

나무의 물성을 중시하는 서각. 사진=김애진 작가
나무의 물성을 중시하는 서각. 사진=김애진 작가

비워야 채워진다.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이 있던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성향으로 나뉜다.

한 쪽은 오로지 돈의 길로만 향하고 다른 쪽은 그 반대로 간다. 선생의 유년기도 경제적 어려움이 많던 시기였다.

허나 아무리 돌이켜봐도 물질적인 욕심을 가져본 적은 없다. 돈에 욕심은 없어도 세상사에 호기심은 높았다.

생을 살면서 옳고 그른 것들에 대한 궁금증, 이 땅에 태어난 자신에 대한 물음, 종국에는 자신이 가장 원했던 것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국문학 석사와 복지정책 박사과정을 거친 것 역시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서각에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길이었지 모른다. 서각을 하는 것은 자신과의 대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나의 노년에 갖추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의 연장선이었다.

그렇게 서각을 알고 작업해 나가면서 지금의 공간과 활동으로 이어진 셈이다.

근래에는 마음속에 피어나는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 시집 한 권을 냈다.

선생의 삶과 작업에 대한 끝없는 고민의 결과물이다.

노암공방갤러리. 사진=김애진 작가
노암공방갤러리. 사진=김애진 작가

고민하고 시도하고 다시 고민하다.
그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외롭지만 깊은 것,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쓸쓸함을 가지지만 모든 인생이 소중한 것이다.

그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고민에 대한 선택은 분명 각자의 몫이다. 서각 안에 인생이 담겼다.

“처음 서각을 만나고 표현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전국에 유명한 서각 장인들을 직접 찾아가 말씀도 듣고 작업 현장도 보면서 어깨 너머로 배웠어요. 관련 서적도 여럿 읽고 다양한 작품들도 보면서 제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서각을 파내기 시작했어요. 어렵더라고요. 할수록 어려운 거예요. 기술적인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늘어가지만, 그 안에 담고 싶은 생각은 날이 갈수록 깊은 고민을 주었죠. 정답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계속 찾아가는 거죠. 사람의 인생도 그렇잖아요. 모두가 외롭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이어가죠. 저 역시 서각으로 할 수 있는 저의 성찰을 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선생은 서각 표현의 전통 방법들은 고수하면서도 또 다른 새로운 방법들을 꾸준히 고민한다.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만 작품이 된다는 생각보다 세상에 선보이는 결과물로 관객을 만나 작가의 생각이 공감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피재현 작가가 새긴 추사 김정희의 새한도. 사진=김애진 작가
피재현 작가가 새긴 추사 김정희의 새한도. 사진=김애진 작가

나무판에 집중하는 시간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이라는 작가의 이야기는 매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늘을 보고 나를 보고 있을까?

선생의 공방은 언제나 열려 있다. 자신의 배움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공간이며, 주민은 물론 지나는 모든 이들의 사랑방을 자처한다.

선선히 바람 부는 어느 날, 공방에 들러 깊게 새겨진 서각 작품도 감상하고 향긋한 커피와 함께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좋을 테다.

돌아 나오는 길, 마을 입구에 선 느티나무가 다시 배웅한다.

나무에게,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고개 숙여 인사를 나눈다. 삶의 철학이 새겨진 선생의 서각이 표현해 나갈 세상을 기대해 본다.


[노암공방 피재현]
안동목판서화연구회 회장
사)한국전통서각예술협회 회원
1인창조기업 선정
경북 청년창업 우수기업 선정
국제유교서예 대전(서각부문) 초대작가
그 외 개인전 및 단체전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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