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3.섬세한 손놀림으로 시대사상을 새기다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3.섬세한 손놀림으로 시대사상을 새기다
  • 최정은 기자
  • 승인 2018.10.09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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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뉴스=최정은 기자] 시대를 보는 눈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세상에 대한 애정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과 주변 사람들과의 행복한 관계에서 시작된다.

모든 것이 평탄할 수만은 없는 것이 삶이고 관계이다.

그렇다고 한숨 쉬기보다는 긍정의 마음으로 한바탕 웃어보는 것이 좋을 테다.

서로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품고 작업도 삶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쇠노리공방의 임방호 대표를 만나본다.

금속과 한지, 목재까지 어우러진 전통 갓 모양의 향꽂이. 사진=김애진 작가
금속과 한지, 목재까지 어우러진 전통 갓 모양의 향꽂이. 사진=김애진 작가

삼 짓는 마을에서 자란 아이, 공예가가 되다
쇠노리 공방이 자리한 마을은 금소리로 임방호 장인이 나고 자란 곳이다.

이곳 금소리에는 안동포짜기 무형문화재 1호인 안동포직조기능보유자가 거주하는 마을로 예부터 집집마다 안동포라 불리는 마직물을 직조했다.

임방호 장인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와 할머니, 옆집 어르신 모두가 손으로 물레질을 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장인은 어린 시절부터 늘 무언가를 만드는 취미를 지녔었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일이 있어요. 시골마을에는 월동준비를 하거든요. 마당에 커다란 웅덩이를 파고 그 안에 무를 저장하는 거죠.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그 웅덩이는 텅 비어요. 그러면 제가 그곳을 영화관으로 바꿨어요. 왠지 될 것 같아서 해보니 정말 되더라고요. 박스로 영사기 비슷하게 만들고 그때 유행하던 만화영화를 틀어서 친구들과 놀았죠. 총이나 썰매 같은 장난감들도 어렵지 않게 뚝딱 만들고는 했어요. 그저 머릿속에 그려지는 대로 만들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모두가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시절이라, 무언가를 만드는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은 꿈꾸지 않았다.

당시의 생각으로는 열대과일 등을 들여와 농사를 지으면 잘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작품 과정과 의미를 설명하는 임방호 장인. 사진=김애진 작가
작품 과정과 의미를 설명하는 임방호 장인. 사진=김애진 작가

시대를 앞선 아이디어였고,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해야 하는 작업에 대한 자신의 적성에 대한 발견이었을지 모른다.

대학입학 즈음 장인은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인연을 만나게 된다.

송명수 교수의 금속 공예 개인전이었다. 아무 지식 없던 장인에게 금속공예는 새로운 세상이자 들어서고 싶은 우주였다.

무작정 송 교수를 찾아 배움의 방향을 물었다.

당시 교수는 공예라는 것이 그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인은 미술학원을 다니며 데생과 스케치, 수채화 등을 배우며 명암의 수차를 차근히 배워나갔다.

공예가의 길이 시작된 셈이었다. 전문대학과 산업대학교를 지나 여러 분야의 공예가와 예술, 문예가들과의 친분이 쌓이며 장인 역시 전문적인 공예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몇 해 지나지 않아서다.

고택 체험도 겸하는 쇠노리공방 전경. 사진=김애진 작가
고택 체험도 겸하는 쇠노리공방 전경. 사진=김애진 작가

시대에 맞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걷는 길
1980년대 말, 장인은 고향인 안동 금소리로 돌아와 공예가로서의 터를 잡아나갔다.

혼자가 아니었다. 금속, 도자기, 공예 등 십여 명의 공예가들과 함께였다.

각자의 작업을 하면서 서로의 분야를 접목시켜 함께 작업하는 것, 지금 말로 하면 융합 디자인 공예인 셈이다.

어릴 때부터 시대를 앞서는 아이디어를 가진 장인은 당시에도 조금 앞선 생각을 가졌었다.

함께 하는 공예가들과 함께 안동 금소리에 민속공예마을을 만들자는 포부를 가졌었다.

“초창기에는 잘 진행되어 갔어요. 서울과 대전에 있는 백화점에 납품을 시작했죠. 여러 다른 공예 분야의 작가들이 협업한 작품이 당시에는 거의 전무했거든요. 그러니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각광을 받았죠. 계속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대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대형 백화점이 붕괴되고 이런저런 사회적인 사건들로 납품이 중지되고 그랬죠.”

민속마을을 만들고 공예학교를 세우고자 했던 계획은 사라졌지만, 함께 한 공예가들과의 친목은 더욱 돈독해졌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생을 살아가고 있다.

현재 안동공예사업협동조합의 이사장직과 안동공예문화전시관 관장직 역시 그런 장인의 뜻이 이어지는 셈이다.

각자의 길을 걷게 된 후 장인은 생계를 위해 안동시내 금방골목에 매장 하나를 마련했다.

‘예인보석’이란 이름으로 수공예품들과 공산품을 함께 판매했다.

생계가 이어지는 곳에서는 하고 싶은 작업보다 팔리는 작업이 주를 이룬다. 공예가들에게는 다소 재미없는 일이기도 하다.

임방호 장인에게는 쇠노리공방이 있다. 소위 말하는 공모전 시즌인 봄부터 가을까지 장인은 쇠노리 공방에서 작업에 몰두한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장인 스스로 ‘철의 여인’이라 부르는 가장 좋은 동료이자 후원자인 사모 덕분이다.

강한 힘과 지구력이 필요한 대공 작업. 사진=김애진 작가
강한 힘과 지구력이 필요한 대공 작업. 사진=김애진 작가

시대사상을 담아 섬세하거나 거칠거나
쇠노리공방 안 다양한 작품들이 눈길을 잡는다.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미가 독특하다. 각각의 작품들은 만들어질 당시의 시대적 이슈를 담고 있다.

드라마 혹은 역사 다큐 등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아이템들을 잡아 작품화 한다.

예술작품이라 해도 손색없어 보이는 작품들은 모두 생활 공예품이라 장인은 강조한다.

작품 중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깨알같이 작은 글씨 문양들이다.

그 안에 사모의 솜씨인 한지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장인의 투각기법은 무척이나 섬세하고 뛰어나다.

하나의 작업을 위해 수천수만 개의 쇠줄이 끊어져도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모른다고.

인내심과 끈기, 거기에 한 조각이라도 빗나가지 않기 위한 세밀함까지 엿보인다.

세공작업에서 섬세한 모습을 보이는 장인은 망치와 불을 드는 대공작업에서 또 다른 열정을 보인다.

한 땀 한 땀 이어가는 투각기법 세공 작업. 사진=김애진 작가
한 땀 한 땀 이어가는 투각기법 세공 작업. 사진=김애진 작가

작업의 방식은 달라도 만들어지는 공예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선조 대부터 이어진 퇴계 선생의 가르침으로 공경과 예이다. 거기에 장인 내외가 늘 마음에 품고 사는 긍정의 힘을 더한다.

쇠노리 공방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 그것이 작품으로 완성되건 사람과의 관계로 이어지건, 그 안에는 장인 내외의 뜻과 마음이 스며있다.

장인 내외의 작품을 보며 사람과 세상에 대한 공경을 가슴 깊이 품어본다.

내외의 밝은 웃음처럼 세상사 모두 밝게 빛나길 바라본다.


[쇠노리공방 임방호]
1996년 경상북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2011년 대한민국 전통기능전승자 선정
          중국 공자박물관 전시
2012년 경상북도 미술장식품 심사위원
          경상북도 최고장인선정 심사위원
          안동공예사업협동조합 이사장
2015년 독일 드레스덴 전시
2016년 송곡대학교 평생교육원 겸임교수
2017년 프랑스 클로뤼세성 전시
          부산, 대구광역시 공예품 공모전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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