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3.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평생을 걸다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3.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평생을 걸다
  • 정세인
  • 승인 2018.08.30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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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뉴스=정세인 기자] 그토록 강렬한 순간이 또 있을까? 사인검을 본 순간 마음을 통째로 빼앗겼다.

그 검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한 평생을 칼을 만들었다.

우연처럼 찾아온 만남은 그렇게 한 남자의 운명이 됐다.

문경 땅 깊숙한 곳에서 칼을 만드는 전통야철도검 기능전승자 이상선 선생에게 칼은 첫 사랑이요, 운명이요, 끝내 이루고 싶은 꿈이다

고려왕검연구소 이상선 소장이 만든 사인검. 사진= 김숙현 작가
고려왕검연구소 이상선 소장이 만든 사인검. 사진= 김숙현 작가

양녕대군의 후손, 검에 빠지다
이상선 선생은 전주이씨 양녕대군 15대손이다. 열여섯 살 때 영친왕 제례를 위해 종묘를 찾았다. 제관으로 발탁된 큰형을 따라 구경을 나선 길이었다.

제례 중에 우연히 사인검을 볼 기회가 생겼는데 그걸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

“그때 봤던 칼을 갖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디에서 팔지도 않고, 아무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죠. 내가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게 이 길에 들어선 계기가 된 거죠.”

결심은 했지만 배울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대장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는 마을마다 대장간이 있었다.

농기구도 만들고 식칼도 만드는 곳이었지만 궁금한 기술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기술자들은 자신의 기술을 뺏길까봐 잡일만 시킬 뿐 중요한 기술은 보여주지도 않았다.

어깨 너머로 몰래 엿보다가 얻어맞기도 여러 차례, 한 번은 머리에 크게 한 대 맞아 뼈가 함몰되기도 했다.

고려왕검연구소 이상선 소장. 사진=김숙현 작가
고려왕검연구소 이상선 소장. 사진=김숙현 작가

충남 예산 고향에서는 땅이 많아 생활은 넉넉했다.

70년대 말에 국산 농기계가 성에 차지 않아 일본에서 수입한 트랙터를 끌었을 정도라니 짐작이 간다.

홀로 아들 셋을 키우는 어머니는 칼에 정신을 뺏겨 대장간이나 쫓아다니는 아들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칼에 미친 아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향을 떠나 인천에서 자신만의 공방을 차린 것이 1987년. 독학으로 배운 기술을 연습해 가며 칼을 만들었지만 밖에 내놓을 순 없었다.

칼을 제작하려면 도검 제작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허가를 받기까지 몇 년이 걸렸던 것.

1991년 드디어 허가를 받고 나서야 날개를 단 듯 마음껏 칼을 만들어 냈다.

지하 공방에 한 번 들어가면 집에 가는 것도 잊고 며칠씩 칼만 만들어도 힘든 줄 몰랐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그렇다. 경제적으로 가계가 쪼들려도 정작 선생은 불편한 줄도, 지겨운 줄도 모르고 내내 칼만 만들었다.

체력이 한참 좋을 때는 한 달에 칼 120자루씩 만들었다. 한번은 주문 받은 물량을 시간에 맞추기 위해 보름에 칼 200자루를 갈기도 했다.

이상선 소장이 악어 가죽에 가죽줄을 엮어 감아서 검 손잡이를 만들고 있다. 사진=김숙현 작가
이상선 소장이 악어 가죽에 가죽줄을 엮어 감아서 검 손잡이를 만들고 있다. 사진=김숙현 작가

12년에 하루 단 두 시간만 허락하는 사인검
인천에서 하던 공방은 이조도검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문경으로 오면서 이름을 고려왕검연구소로 바꾸었다.

우리나라 전통도검을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에서다. 고려 시대 때 검은 중국의 검과 비슷하다. 우리 고유의 검은 조선 시대 때 완성됐다.

칼을 만드는 심장은 바로 대장간이다. 특히 사인검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검이다.

12간지의 인(寅)이 4번 겹치는 호랑이해, 호랑이달, 호랑이일, 호랑이시를 택해 검을 만드는데 호랑이 힘을 빌려 나쁜 기운을 물리쳐 왕실과 궁중에 안전을 도모했던 궁중의 검이다.

12년에 단 하루, 그것도 호랑이 시간은 2시간에 불과하다. 지난 2010년 경인년에 선생은 2시간 동안 검 여러 개를 열처리해 두었다.

한동안은 그때 작업해 둔 것으로 사인검을 만들 수 있다. 사인검에 비견할 만한 사진검은 용의 해 용의 달, 용의 날, 용의 시간에 만드는 검이다.

사인검의 검신에는 27자의 한자를 상감하고, 다른 면에는 191개의 별을 새겨 넣는다. 전시장에는 사인검 외에 언월도, 협도, 죽도, 환도 등 전통도검과 창, 철퇴가 다수 전시돼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전통도검을 연구하고 완벽한 재현에 애를 쓴 덕분에 여러 종류를 원형대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경기대박물관의 요청으로 전통도검을 제작해 박물관에 전시도 하고 있다.

독학으로 시작한 칼 만들기가 다른 이의 인정을 받는 것은 보람된 일이다. 2007년에는 전통야철도검 기능전승자로 선정됐다.

칼에 날을 벼리는 작업 중에 불꽃이 튀고 있다. 사진=김숙현 작가
칼에 날을 벼리는 작업 중에 불꽃이 튀고 있다. 사진=김숙현 작가

좋은 기운으로 만든 검은 사람을 살리는 검
선생이 어렸을 적 한 눈에 반해 검의 길에 들어서게 했던 바로 그 사인검을 지금은 우리나라 그 누구보다 더 완벽하게 제작할 수 있게 됐다.

곁눈질 하지 않고 오직 검만 바라보며 한평생을 해온 덕분이다. 직접 제작한 다양한 도검과 수집한 검을 전시할 만한 공간을 고민하며 문경으로 공방을 옮겨왔다.

폐교에 둥지를 틀고 작업실, 전시장, 사무 공간도 만들었지만 박물관처럼 일반인에게 보여줄 만 한 정도는 아니다.

일본, 중국 등지를 다니면서 검을 보고, 구입도 하면서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도검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아직은 요원한 일이라서 아들이 대신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통도검을 재연한 것 중 맨 아래가 사인검이다. 사진=김숙현 작가
전통도검을 재연한 것 중 맨 아래가 사인검이다. 사진=김숙현 작가

“기분이 나쁘거나 몸이 안 좋을 때는 아예 일을 하지 않습니다. 칼은 남을 해칠 수도 있는 물건이에요. 나쁜 마음으로 만들면 분명 검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좋은 기분으로 만들어야 그 검에 좋은 기운이 스며드는 거 아니겠어요?”

칼에 관련된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칼날은 차가운 푸른빛이다. 검으로 사람을 지킬 수도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예로부터 검, 검도는 나라와 가족을 지키는 행위였지 살상의 도구는 아니다.

전시장 한 벽에 ‘수신제가(修身齊家)’ 네 글자가 적혀 있다. 자기 스스로를 먼저 가지런히 하고 난 뒤에 일을 한다는 선생의 다짐이다.

“내가 만든 검은 그저 하나의 물건일 뿐이에요. 그 물건을 보고 평가를 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몫이죠. 잘 만들었다느니, 작품이라느니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늘 그렇듯이 좋은 기분 일 때 좋아하는 검을 만드는 게 큰 즐거움입니다.”

좋아서 하는 일. 차갑고 무서운 검을 만들면서도 선생의 얼굴이 더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유를 알 것 같다.

 

[고려왕검연구소 이상선]

1999년 국회의원 표창
2003년 28회 전승공예대전 입상
2007년 대한민국 전통야철도검 기능전승자 선정
2008년 경희궁 숭정전 별운검 재현 제작
2010년 경인년 사인검 제작 및 담금질 재현
2011년 대통령 하사검 삼정검 제작
경북도지사 표창
2012년 임진년 사진검 제작 및 담금질 재현
2015년 갤러리이즈 도검 전시회
現 고려왕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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