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6.김천 징의 부활을 꿈꾸다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6.김천 징의 부활을 꿈꾸다
  • 정세인
  • 승인 2018.09.1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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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뉴스=정세인 기자] 김천은 예부터 유명한 유기 생산지다. 두드려 만드는 방짜유기로는 김천이 으뜸이었다.

김천 유기 역사의 산증인이며 경북무형문화재 제9호인 고 김일웅 옹의 김천고려방짜유기 공방이 있는 김천시 양천동 하로마을을 찾았다.

장인의 인생 역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유기 작업장에서 6대를 이어 김천 징을 만드는 김형준 장인의 징 소리를 만났다.

장인의 치열한 예술혼과 전통의 울림이 어우러지는 징 소리의 여운을 따라 가슴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옛 방식으로 징을 깍는 발틀 가질 작업. 사진=민혜경 작가
옛 방식으로 징을 깍는 발틀 가질 작업. 사진=민혜경 작가

장인의 열정으로 6대를 이어 온 김천 징, 김천의 자부심이 되다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말까지 김천시 양천동의 거창 방면 국도변에는 가내 수공업 형태의 유기 공방이 밀집되어 김천의 명물로 꼽혔다.

조선 후기 때 전국 3대 시장 중의 한 곳으로 번성했던 김천장은 유기라는 특수한 수공업을 발전시켰다.

김천은 방짜유기 중에서도 김천 징이 유명했다. 빗내농악의 발상지로 일찍이 풍물이 발달했던 김천의 전통 문화적인 배경도 한몫했다.

고 김일웅 옹의 외할아버지는 경남 함양에서 4대째 가업으로 징을 만들다가 1910년대 초 김천으로 이주한 후에 외숙부와 아버지에게 가업을 잇게 했다.

소년 김일웅은 집안의 형들과 함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고된 유기 일을 배웠다.

김천 징의 대표적인 작품인 대징. 사진=민혜경 작가
김천 징의 대표적인 작품인 대징. 사진=민혜경 작가

그 후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이겨낸 장인은 전국 민예품 경진대회에서 다수의 상을 받으면서 유기 장인으로서의 명성을 알렸다.

1986년에는 경북 무형문화재 제9호 김천 징장으로 지정돼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김천 징장 고 김일웅 옹의 차남으로 6대를 이어 가업을 승계해온 김형준 전수자는 징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소리 잡기라고 말한다.

“좋은 징 소리는 황소울음 소리가 나지요. 깊고도 웅장하게 퍼지는 울림을 가져야 하고 여운은 길게 뻗어 하늘로 치솟아야 합니다. 징은 ‘바디기’를 수천 번 두드려서 만들어요. 방짜란 결국 수천 번의 두드림이라고 할 수 있고 징은 이런 방짜의 과정 없이 만들 수 없어요. 오로지 손작업만으로 방짜 징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참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어릴 적부터 어깨너머로 배우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본격적으로 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울음잡기를 터득했다. 김형준 씨는 징을 깨어도 보고 무게도 달아보며 연구했지만, 결국 오랜 기간 연마한 경험 덕분에 스스로 터득한 뒤에야 소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유기 가질 작업 중인 김형준 장인. 사진=민혜경 작가
유기 가질 작업 중인 김형준 장인. 사진=민혜경 작가

수천 번의 두드림 끝에 아름다운 울림으로, 김천 징 태어나다
징을 제작할 때는 6명이 한 조가 된다. 구리와 주석을 160대 45의 비율로 섞어 900도 이상의 고온에서 녹여낸다.

‘바디기’라는 바둑알처럼 생긴 틀에 부어 식힌 주물을 두드리고 불에 넣어 늘리는 과정을 6회 반복한 후 열처리를 한다.

징 소리를 조율하는 ‘울음잡기’는 징의 제작 과정에 있어 가장 마지막 단계이자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완성 단계다.

황새, 벼루 2자루의 망치로 조이고 풀며 두드리는 힘의 강도에 따라 결정된다.

이 작업은 6명 중 소리를 잡을 수 있는 장인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다.

고 김일웅 옹은 황소울음과 같은 징 소리를 잡기 위해 우시장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아들 김형준씨도 인근에 있는 우사에 들러 소 울음소리를 들으며 징 소리의 감각을 지키고 있다.

부친의 손때가 묻은 작업장의 도구들은 낡고 초라하지만, 세월의 인내와 장인의 기품이 느껴진다.

80년 동안 사용한 유기 도구들. 사진=민혜경 작가
80년 동안 사용한 유기 도구들. 사진=민혜경 작가

방짜의 필수 도구는 망치다. 벼루처럼 뭉툭한 벼루망치는 쇠의 단단한 몸을 풀어주고 황새의 다리처럼 가늘고 민첩한 황새망치는 쇠의 몸을 조여 준다.

풀어주고 조여 주는 수천 번의 두드림 끝에 징은 아름답고 웅장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징은 복판이 두껍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얇아집니다. 오로지 손의 감각에 의존해 작업하다보니 마무리 단계에서 깨지는 경우가 많죠. 예부터 김천 징은 웅장하게 울면서 뒤끝이 황소울음처럼 치켜 올라가다 여운을 남기며 멎는 것이 특징이라고 해요. 첫소리 잡는 것을 ‘풋울음잡기’라고 합니다. 망치로 두드리면 진동으로 만들어진 음파가 가장자리로 번져나가다 다시 중앙으로 모여 방출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죠. 그 다음 가질이라고 해서 징 표면에 태문양을 돌려 새기고 끈을 달아주는데, 그때 소리가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재울음잡기’를 통해 황소울음의 여운을 남기는 김천 징이 탄생합니다.”

조상의 유산이자 소중한 우리 전통문화를 지켜가는 그의 손에서 황금빛 유기로 만든 김천 징이 번쩍하고 빛을 발한다.

치열한 삶을 보냈던 부친의 자리에서 묵묵히 유기를 녹이고 붓고 두드리고 풀어주고 조여 주며 김천 징의 자부심을 이어가고 있다.

80년 동안 사용한 유기 도구들. 사진=민혜경 작가
김천고려방짜유기 전시장 모습. 사진=민혜경 작가

김형준 씨가 가업을 이어가며 가장 힘든 점은 경제적인 부분이다. 징은 깨지기 전에는 찾지 않는 악기이고 세월이 흐를수록 징의 수요도 제한적이다.

소규모 농악단들은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해 제작하는 징보다는 공장에서 만든 저렴한 징을 찾기 때문이다.

그는 공방에서 한 달에 닷새는 징을 만들고 나머지는 방짜유기를 만든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가업을 지켜 오신 아버지를 존경하고 그런 가업을 대물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우리 전통문화와 김천 징의 소리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에게는 확고한 꿈이 있다. 부친의 치열한 삶과 역사가 배어있는 작업 도구와 작품을 전시하는 기념관을 짓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친의 꿈이기도 했던 2m 크기의 대형 징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김천고려방짜유기 김형준]
1995년 김천고려방짜유기 전수 시작
1999년 경북 관광기념품대회 장려상
2000년 전국 관광기념품공모전 입선
2001년 김천고려방짜 전수조교 등록
2006년 경북 공예품대전 장려상
2007년 전국 공예품 대전 특선
2013년 mbc‘우리는 한국인’촬영
          오감만족 고향탐험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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