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한지에 천년의 혼을 담는 사람들] 11. 7대를 변함없이 지켜온 청송 한지
[기획-한지에 천년의 혼을 담는 사람들] 11. 7대를 변함없이 지켜온 청송 한지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9.12.19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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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전통한지 | 이자성
사진=유은영 작가
손이 베이고 고되도 포기할 수 없는 일. 사진=유은영 작가

푸른 닥나무가 무성한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에는 청송전통한지가 자리하고 있다. 200여 년 동안 전통 방식 그대로 전통 한지를 만들고 있다. 윤이 나고 결이 고운 명품 한지로 전국에 소문이 자자하다.

7대째 지켜오고 있는 이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이자성 한지장이다. 우리가 귀하게 여기고 지키지 않으면 사라질 거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한평생을 버텨온 이자성 한지장을 만나 귀한 한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진=유은영 작가
7대째 한지를 만드는 이자성 한지장. 사진=유은영 작가

◆ 윤이 나고 고운 청송 한지의 비결

청송전통한지 간판 아래로 좁은 길을 들어서면 양쪽으로 푸른 닥나무가 늘어서있다. 길만 아니라 청송전통한지 주변이 온통 닥나무다.

푸른 잎을 흔들며 환영하는 닥나무 길을 지나면 청송전통한지라고 쓰인 나무 명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닥풀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는 건물 안 쪽에 한지가 차곡차곡 쌓인 판매장으로 들어서자 향긋한 종이 향이 가득하다.

 

사진=유은영 작가
잘 말린 백닥. 사진=유은영 작가

“이 한지 한 번 꽈 봐요.” 이자성 한지장은 한지 한 조각을 손에 쥐여 주었다. 부드러운 한지는 쉽게 꼬아졌다.

이번에는 꼰 한지를 당겨보라고 한다. 있는 힘껏 당겨보았다. 부드럽게만 생각한 한지가 아무리 힘을 주어 당겨도 끊어지기는커녕 동아줄처럼 질기고 단단했다. 가느다랗게 꼰한지를 가지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더니,

“우리 한지가 얼마나 대단하다꼬요. 괜히 천년가는 게 아니라요”하며 껄껄 웃는다.

 

사진=유은영 작가
닥나무가 무성한 청송전통한지 입구 사진=유은영 작가

청송 한지가 유난히 윤이 나서 그 비결을 알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왔다 한다. 하지만 웃어른들이 하는 방식대로 하는 것뿐 별다른 비결이 없다.

참닥나무를 재배해서 겨우내 베고, 7시간 이상 찌고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고 말린다. 어디 그뿐인가. 메밀대나 콩대를 태워 잿물을 만들어 다시 삶은 다음 수천 번을 두드려 닥죽을 만든다.

황촉규로 만든 닥풀과 닥죽을 섞어서 대나무발로 한 장 한 장 정교하게 뜨고 탈수하고 말리기까지 고단한 전통 방식 그대로다. 비결을 보러 온 사람들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다 돌아간다.

 

사진=유은영 작가
물빠진 종이를 한장씩 열판에 건조하고 있다. 사진=유은영 작가
사진=유은영 작가
지통과 대나무발. 사진=유은영 작가

◆ 우리 것을 지킨다는 자부심, 무형문화재로 인정받다

“우리 것은 우리가 지켜야지요. 일본이나 중국이 지켜주나요? 오히려 없애지 못해 안달이겠지요. 우리가 버리면 사라져요.”

고되고 힘든 전통 한지를 어떻게 지켜오게 되었냐는 우문에 대한 현답이다. 이제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만드는 곳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나마도 우리나라 토종 닥나무로 만드는 경우가 드물다.

깨끗하게 손질된 수입 닥나무를 쓰면 몸이야 편하겠지만, 종이 질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사진=유은영 작가
잿물에 삶아 씻어낸 뽀얀 백닥. 사진=유은영 작가

닥나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한다. 바로 물이다. 철분이나 석회가 섞이거나 조금이라도 오염된 물은 안 된다. 청송이 물이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지만, 파천면의 물이 청송 한지가 윤이나는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귀띔한다.

신라시대 이래 제지업이 성행했던 고장으로 이름을 떨친 것도 물이 좋아서다. 잿물도 마찬가지다. 메밀대, 콩대, 짚을 태워서 만든 천연 잿물이라야 종이가 오래간다.

양잿물을 사용한 닥으로 만든 종이는 몇 십 년을 넘기지 못하지만, 천연 잿물로 삶아낸 백닥은 천년을 간다.

 

사진=유은영 작가
대나무발로 한지 뜨기를 하는 이자성 한지장. 사진=유은영 작가

그가 한지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건 어릴 때부터다. 6대째 한지 일을 해오던 아버지 일을 도우면서 자연스레 배우기 시작했다.

대량 생산으로 싼 가격의 일반 한지가 쏟아져 나와도 전통 한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손이 많이 가더라도 전통 한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늘면서 보람도 느낀다.

전국에 내로라하는 서예가나 그림 그리는 이들이 단골로 찾는다.1995년에는 국가가 인정해주어서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사진=유은영 작가
내노라하는 서예가와 화가들이 즐겨찾는 화선지. 사진=유은영 작가

◆ 명품 한지의 밝은 미래를 위해

한지 작업장 옆에 체험관과 가람공방이 자리 잡고 있다. 학생들과 관람객들이 직접 한지를 만들고 한지 공예도 체험할 수 있다.

닥나무 껍질 벗기기부터 한지 뜨기까지 한지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고, 자신의 손으로 전통 한지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사진=유은영 작가
한지 뜨기와 한지 공예를 체험할 수는 체험관을 운영 중이다 사진=유은영 작가

“학생들은 자기가 만든 한지가 신기한가 봐요. 직접 만든 한지로 그림도 그리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요.”

체험하는 학생들이 많을수록 전통 한지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기는 거라고 말하는 이자성 장인의 얼굴에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가 번졌다.

한지 공예 교육은 이자성 장인의 장녀인 이규자씨가 맡고 있다. 한지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친구이자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사진=유은영 작가
한지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한지 공예 체험이 인기다. 사진=유은영 작가

“예전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한지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우리집만 남았어요. 우리나라 자긍심인 한지를 아이들과 관광객들에게 한 사람이라도 더 알리는 게 저의 사명인 것 같아요.”

물심양면으로 돕는 가족들이 있어서, 200여 년을 이어온 청송 한지의 미래가 유난히 밝아보였다.

 

사진=유은영 작가
청송전통한지 외관. 사진=유은영 작가

 

[청송전통한지 | 이자성]

1950년 출생
청송중학교, 경안고등학교 졸업
1966년 한지 전수 시작
1975년 결혼 후 부인과 함께 청송전통한지 설립
1978년 당시 군수의 권유로 부업단지를 조성해 송강(하천변)으로 공장 이전
1988년 현 위치로 이전
1995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23-가호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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