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한지에 천년의 혼을 담는 사람들] 4. 한지공예는 마음으로 낳은 나의 분신
[기획-한지에 천년의 혼을 담는 사람들] 4. 한지공예는 마음으로 낳은 나의 분신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9.10.31 1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인공방 | 박경진
사진=유은영 작가
섬세하고 까다로운 한지 민속 그림 공예. 사진=유은영 작가

가을빛이 환히 빛나는 날 수인공방을 찾았다. 한지 향이 은은한 공방 안에는 닥종이 인형과 한지 민속 그림 공예들이 가득했다. 그림 속에 주인공들은 작가의 철학이자 마음으로 낳은 분신이다. 동심, 청사초롱, 농촌의 하루, 황혼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세계가 마음을 훔친다.

“작품은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라 말하는 박경진 작가의 작품은 그의 눈빛처럼 포근하고 사랑스러웠다.

 

사진=유은영 작가
작품을 설명하는 박경진 작가의 눈빛이 빛난다. 사진=유은영 작가

◆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한지 공예를 선택한 것

공방 안으로 들어서자 닥종이로 만든 노부부 인형이 눈에 들어온다.

“작품 속 주인공은 또 다른 나예요. 배우가 연기를 할 때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야 하듯이 저도 마찬가지예요. 표정은 물론 손짓 발짓 하나까지 주인공에 빠져 있어야만 제대로표현이 되니까요.”

작품을 설명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 빛난다.

 

사진=유은영 작가
작품 ‘황혼’. 사진=유은영 작가

노부부 닥종이인형의 작품명은 ‘황혼’이다. 백발의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은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뽀얀 목도리가 단정해 보이는 할머니의 손을 마주잡았다.

박경진 작가의 말을 듣고 보니, 노부부의 표정과 옷매무새까지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작가는 평생을 함께 해 온 노부부가 되어 인형을 만들었으리라.

 

사진=유은영 작가
우리의 소중한 전통을 담은 작품들. 사진=유은영 작가

눈썹이나 수염, 머리카락을 표현할 때는 한지의 가느다란 결을 이용한다. 워낙 가늘다보니 숨조차 쉴 수 없다. 스펀지로 볼륨을 표현하는 일도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이다 보니 온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어렵다.

때론 끼니를 거르는 것조차 모르고, 날이 새는 줄도 모른다. 굽은 허리가 안 펴질 정도로 작업에 몰두할 때가 많다.

작품에 몰입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박경진 작가는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들기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며 모은 차비로 공예 재료를 구입하기도 했다. 남들 다 부러워하는 탄탄한 직장에 다니다가 한지 공예에 빠져들었다.

 

사진=유은영 작가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박경진 작가 사진=유은영 작가

결국 직장까지 그만두고, 대학교 공예디자인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한지 공예과가 있는 전주예원예술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 입학했다.

전주까지 먼길을 마다않고 꼬박 2년을 다녀 석사를 취득했다. 직장을 그만둔 것도, 교육대학원을 가려던 것도 모두 포기하고 한지 공예를 선택했던 일은 생각할수록 잘한 일이라고 여길 만큼 그에게 한지 공예는 천직이 아닐 수 없다.

 

사진=유은영 작가
작품 ‘농촌의 하루’. 사진=유은영 작가

◆ 어른들에게는 따뜻한 옛 정서를 아이들에게는 멋진 전통을

서울 세종회관에서 열린 공예 회원전에 출품했던 ‘농촌의 하루’는 그의 감성이 고스란히 표현된 작품이다. 논에는 모심기가 한창이고, 나무 그늘 아래는 새참 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멀리 초가지붕과 산자락이 고향 풍경 그대로다.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은 저마다 그리움과 추억을 떠올리며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민속놀이와 풍습을 좀 더 다양하게 재현해서 어른들에게는 따뜻한 옛 정서를, 어린 친구들에겐 멋진 전통을 선사하고 싶다고 한다.

 

사진=유은영 작가
작품 ‘청사초롱’ 사진=유은영 작가

박경진 작가가 주력하는 한지 민속 그림 공예는 우리의 정겨운 옛 풍습을 한지로 재현한 것이다. 스펀지를 오리고 한지로 감싸서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그림 공예다. 스펀지로 볼륨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찰흙이나 클레이아트처럼 맘껏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팔, 손, 다리 하나하나 섬세하게 완성되는 과정이 희열 그 자체다.

그의 열정은 수많은 공모전을 휩쓸었다. ‘한지꽃’으로 전국 종이꽃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꽃잎 한 장 한 장 염색을 하고, 구기고 꼬고 인두질하며 몇 달간 공을 들였다. 꽃받침과 꽃수술까지 진짜 꽃처럼 정교한 표현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상 속에서 나온 영원히 지지 않을 꽃으로 만든 꽃꽂이였다.

 

사진=유은영 작가
수인공예방 내부. 사진=유은영 작가

◆ 한지종합테마관을 세워 우리 곁에 한지가 더 풍성해지기를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저에게 방과 후 수업을 받는 초등학생이 인터뷰한 기사가 눈에 띄었어요. 그 학생은 지금까지 꿈이 없었는데 공예 수업을 받으며 꿈이 생겼다는 거예요. 자기도 커서 공예 선생님이 되고 싶다면서요. 제 직업에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가르치고 봉사하는 일이 또 다른 활력이자 행복한 일이라며 환히 웃는다.

 

사진=유은영 작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는 한지 공예는 그의 천직이다. 사진=유은영 작가

각종 전시회 준비와 작품 활동으로 바쁜 나날이지만, 그는 강의와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유치원부터 주부대학까지 강의가 줄을 잇는다. 한지 공예뿐만 아니라 노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작은 봉사까지 눈코 뜰 새가 없다.

 

사진=유은영 작가
표정하나 손짓 하나까지 작품은 나의 분신. 사진=유은영 작가

기회가 된다면 종합한지테마관을 만들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말한다. 우리 한지는 천년을 견디는 우수한 유산이다. 그런데 현실은 안타깝게도 우리 곁에서 자꾸만 사라져간다.

닥나무를 심고, 그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고, 한지 염색부터 한지 공예 더 나아가 한지 섬유까지 한지의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을 세우는 게 꿈이다. 우리 곁에 한지가 점점 가까워지는 날을 상상하며, 그의 소중한 꿈에 박수를 보낸다.

 

사진=유은영 작가
수인공예방 외관. 사진=유은영 작가

 

[수인공방 | 박경진]

1995년~ 영천문화원 수인공예 회원전수회
1998년 전국 종이꽃 공모전 금상, 장려상 등 여러 공모전 다수 수상
2001년 서울 세종회관 공예회원전 등 40여회 전시
2001년~ 영천 한약,별빛축제 공예전시 및 체험행사 다수
2002~16년 영천문화원 이사 역임
2008~15년 경산1대학교 외래교수 역임
2008~16년 경상북도 천연염색연구원 강사 역임
2014년~현재 영천시 마을 평생교육지도자협의회 강사 역임
2018년 경상북도지사 표창 수여
2019년 ㈔한국종이문화원 대구·경북 연합회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