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한지에 천년의 혼을 담는 사람들] 1. 자연 빛을 담은 한지, 예술로 태어나다
[기획-한지에 천년의 혼을 담는 사람들] 1. 자연 빛을 담은 한지, 예술로 태어나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9.10.10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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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빛 한지 | 전인남
사진=민혜경 작가
차 한잔이 잘 어울리는 연꽃 문양의 시각상. 사진=민혜경 작가

안동의 ‘고운빛 한지’ 공방을 찾은 날은 한바탕 소나기가 내려 자연의 초록이 더욱더 짙어진 늦여름 오후였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을 지나 풍광 좋은 언덕에 위치한 ‘고운빛 한지’ 공방에서 전인남 한지 공예가를 만났다.

마침 서예를 함께 배우는 회원들이 마실 온 날이라 공방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공방에 가득한 산수화, 천연 염색, 규방 공예 작품 속에서 전인남 작가의 한지 공예 작품은 유독 눈에 띄었다.

지인들 말대로 종합 예술인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공예의 모든 것을 섭렵한 전인남 작가 의 특별할 수밖에 없는 한지 공예 작품 세계를 만났다.

 

사진=민혜경 작가
머릿장에 붙일 문양 배접 작업 중인 전인남 작가. 사진=민혜경 작가

◆ 종합 예술인으로 불리는 다재다능한 한지 공예가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시골집의 작은 공방은 전통 갤러리를 연상하듯 다양한 작품이 전시 중이었다. 한지 공예가이며 다도 명인이기도 한 전인남 작가의 공예 작업실은 차향이 은은하게 배어있는 향기로운 예술공간이다.

“산수화와 사군자, 서예, 천연염색, 규방 공예 등 그동안 제가 해왔던 모든 공예 작업은 저의 한지 공예 작업에 끊임없이 신선한 자극을 줍니다. 오랫동안 다도를 해왔기 때문에 한지 공예로 다도상(찻상)을 만들 때도 다도상에 실용적인 부분을 접목해서 만들어요. 상에는 저만의 문양과 색감을 그리고 디테일한 묘사에 서예 한자까지 응용할 수 있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지요. 산수화와 사군자 등 그림을 그리다 보니 한지 공예 작품에 아름다운 전통 기법의 그림을 그려 넣어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저의 장점입니다.”

 

사진=민혜경 작가
머릿장을 위한 문양 배접 과정. 사진=민혜경 작가

그의 공예 작품에는 집 주변의 아름다운 풀과 꽃들이 활짝 피어있다. 큰꽃으아리, 매발톱꽃, 애기똥풀, 인동초, 할미꽃, 엉겅퀴 등 독특하고 아름다운 야생화가 생생하게 피어난다.

‘고운빛 한지’ 공방의 문밖에도 풀과 나무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인공적으로 가꾼 자연이 아니고 천연의 자연이라서 더 풍성하고 자유롭다. 그 자연의 풍경이 전인남 작가의 작품 세계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것이다.

 

사진=민혜경 작가
머릿장에 들어가는 꽃잎 문양들. 사진=민혜경 작가

◆ 예술과 삶의 나눔 속에서 한지 공예를 즐기다

전인남 작가는 2016년 전국안동한지대전으로 동상을 수상하며 한지 공예가로 입문했다. 그의 프로필에는 2000년부터 16년간 열정적으로 한지와 인성 교육에 정진했던 경력이 숨어있다.

그가 미술심리 재활학과를 전공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2007년 국립민속박물관의 한지 교육 전문 강사가 될 때까지 장애인을 위한 한지와 인성 교육에 보람을 갖고 매진했다. 그에게 교육과 나눔은 한지 공예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진=민혜경 작가
고급스러운 붉은 빛의 대물함. 사진=민혜경 작가

“한지 공예는 주로 집안에서 쓰이는 물건들이라 친환경으로 만들어야 해요. 한지 공예에 쓰이는 풀은 한 달 동안 물을 갈아가며 순수한 전분을 걸러 끓여서 만들기 때문에 몸에 해가 되는 성분이 전혀 없어요. 한지 공예야말로 실생활에 유익한 물건이라고 할 수 있죠. 집안에 습기가 많을 땐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할 때는 습기를 내보내는 제습 기능을 하거든요.”

 

사진=민혜경 작가
박쥐 문양의 팔각 쟁반. 사진=민혜경 작가

전인남 작가의 친환경 작품은 소문이 나서 개인적으로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큰 작품은 완성하는 데는 1년씩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차근차근 기본에 충실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의 꼼꼼하고 성실한 작업을 배우기 위해 봉화, 영주, 안동, 구미 등지에서 많은 수강생이 한지 공예 수업을 들으러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 전인남 작가는 자신을 찾아오는 수강생들에게도 성심을 다해 나눔과 교육의 기쁨을 실천하고 있다.

 

사진=민혜경 작가
섬세하게 그린 꽃이 인상적인 야생화 반짇고리. 사진=민혜경 작가
사진=민혜경 작가
꽃잎이 살아있는 듯 생생한 큰꽃으아리 구절판. 사진=민혜경 작가

◆ 세상에 하나뿐인 명품처럼 한지 공예를 만들다

우리나라 전통 한지는 닥나무를 이용해 만든다. 닥나무 껍질을 벗겨 말린 후 다시 물에 불려 하얀 내피 부분만 가려내고 여기에 양잿물을 섞어 푹 삶은 후 헹굼과 일광 표백을 거친다.

그 후 남아있는 표피와 불순물을 제거해 나무 방망이로 섬유가 물에 잘 풀어질 때까지 두들긴다. 그리고는 깨끗한 물에 넣고 닥풀이 잘 섞이도록 저어준 후 발로 걸러 떠서 건조한다.

완전히 건조되기 전에 방망이로 두들겨 한지의 밀도와 섬유질 형성을 높여주는 작업을 마치면 비로소 한지가 완성된다.

 

사진=민혜경 작가
안동한지공예대전에 출품한 새악시 버선장. 사진=민혜경 작가

제작만 보름 이상 걸리는 만큼 정성과 장인 정신으로 탄생하는 종이다. 거실 구석에 놓여있는 장에 눈길이 갔다. 단아하고 수수한 장은 은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제5회 전국 안동한지공예대전에서 수상한 ‘새악시 버선장’이다. 반가의 아가씨가 시집갈 때 작은 소품들을 간수했던 장으로 주로 버선을 넣어둔다 해 버선장이라고 불렸다.

얇은 한지를 겹겹이 붙여 골격을 견고하게 만들고 섬세한 무늬를 만들어 붙여 색감과 질감을 완성하는 과정은 상상이 안갈 만큼 정교하고 지난한 작업이다.

 

사진=민혜경 작가
선비들의 사랑방에 걸렸던 서류함, 고비. 사진=민혜경 작가

전인남 작가의 공방에는 미완성의 작품들이 곳곳에 쌓여 있지만, 힘든 내색은 없고 소녀처럼 해맑고 즐거운 표정이다.

“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쉽지 않지만, 한지 공예 작업 과정은 더욱더 힘든 과정입니다. 하지만 완성하고 나면 세상에 하나뿐인 자식처럼 소중한 작품이 탄생하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고비입니다. 고비는 양반집 사랑방에 걸렸던 서류함을 말하는데, 늘 제 작업에 큰 힘이 되어주는 남편을 위해 만든 작품이에요. 제 작품은 모두 집안에서 전시 중이고 실생활에 쓰이고 있답니다. 삶과 예술을 동시에 누리며 살고 있다고 할까요.”

그의 환한 미소가 더없이 만족스러워 보이는 건 그만큼 그가 작품과 자신의 삶에 열정을 다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민혜경 작가
‘고운빛 한지’ 공방으로 가는 입구. 사진=민혜경 작가

 

[고운빛 한지 | 전인남]

2007년 국립민속박물관 한지 교육 강사
2007~2014년 대한민국 한지대전 4회 수상
2008년 서울 인사갤러리 개인전
2009년 남해 바람흔적미술관 개인전
2011~2016년 전국 전주한지대전 4회 수상
2012년 전국장애인경진대회 심사위원
2014년 한국국제교류 프랑스 클로뤼세성 회원전
2015년 한국국제교류 이탈리아 회원전
2016년 전국 안동한지대전 초대작가
2018년 일본 가와자나, 블라디보스톡, 중국 강소성 회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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