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와사랑 | 권혜영

사진=민혜경 작가
옛 서적을 디자인한 고서 보석함. 사진=민혜경 작가

긴 여름이 끝나고 초가을이 시작되는 9월의 어느 날, 권혜영 한지 공예가의 안동 공방을 찾았다. 차분한 전시장 옆에 열정 가득한 작업장이 함께 공존하는 한지 공예 공방의 이름은 ‘지(紙)와사랑’이다.

언뜻 헤르만 헤세의 소설 중에 널리 알려진 소설 ‘지와 사랑’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종이 지(紙)를 써서 센스 있게 한지 공예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한지와 사랑에 빠진 지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권혜영 작가의 한지 공예에 대한 열정은 지금이 가장 뜨겁다.

 

사진=민혜경 작가
‘지와사랑’ 공방에서 권혜영 한지 공예가. 사진=민혜경 작가

◆ 어둠 속, 은은하게 빛나는 한지등(燈)의 매력에 빠지다

권혜영 작가는 안동대학교 미술학과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던 중 결혼을 하며 화가의 꿈을 접어야 했다. 손끝이 야무지고 미적 감각이 뛰어났던 그는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면서 공예 예술과 관련된 취미 생활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2000년 어느 날, 한지 공예 전시장에서 아름다운 한지등을 만나고 한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고 아련하게 불빛이 스며드는 한지등을 보고 그 매력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사진=민혜경 작가
공예품대전 출품 작품 ‘청실홍실 엮어서’. 사진=민혜경 작가

그 후 본격적으로 한지 공예를 시작하고 열정을 다해 작품을 만들면서 만학의 꿈도 이루게 됐다. 시어머님과 남편의 적극적인 격려와 후원을 받아 안동대학교 미술학과 동양화과에 복학해서 2009년에 졸업을 한 것이다.

20년 이상 차이 나는 젊은이들과 공부하고 동양화를 그리며 한지 공예도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동양화를 그리면서 한지 공예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한지공예는 동양화의 채움과 비움의 미학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그만의 작품으로 완성됐다.

 

사진=민혜경 작가
전시장의 한지 소품들. 사진=민혜경 작가

“저는 전통적인 한지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낍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하고 일상생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지요. 안동시립민속박물관 관장인 남편의 외조 덕분에 창의적인 작품 구상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새로운 전시 작품 도록들을 제게 보여주는데, 신선한 예술적 시각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거든요. 늘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작품을 만듭니다.”

 

사진=민혜경 작가
양반가의 애기씨들에게 사랑받았던 애기장 세트. 사진=민혜경 작가

◆ 형형색색의 한지에서 수백 가지 작품이 태어나다

전국 안동한지대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권혜영 작가의 ‘애기장 세트’는 애기장이라는 이름처럼 앙증맞고 예쁜 장이다. 옛날 어린 아씨들이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물건을 넣어두는 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혼수품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청홍을 포함한 오방색을 기본으로 한 문양을 봉황문에 넣어 음양의 화합을 표현했다.

또 다른 작품인 책 보석함은 알록달록 오방색으로 꾸몄는데, 혹시라도 촌스럽게 보일까 봐 색감의 채도에 더욱 신경 써서 작업한다.

 

사진=민혜경 작가
초충도 나비장. 사진=민혜경 작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삼베에 나비를 그려 넣은 나비장이다. 꽃잎 위에 앉은 나비가 금세 날아갈 것처럼 정교하고 아름답다.

대한민국 공예품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한 ‘내 마음의 창’은 우리의 정서가 담긴 전통 창호와 조각보를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직선과 사선이 만나 이뤄내는 선과 면, 색채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인 느낌과 사계절의 감성으로 표현하고 실용성을 살려냈다.

띠살문 등의 창호 문양을 삼베 배접지로 조각내어 붙이고 한지 연사로 마무리했다. 또 장석(꺽쇠)과 손잡이를 달아 장식과 편리함을 더해 도구함 가방이나 반짇고리 등 다용도 함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사진=민혜경 작가
권혜영 한지 공예가의 손때 묻은 한지 공예 작업 도구들. 사진=민혜경 작가
사진=민혜경 작가
색감이 남다른 꽃 거울. 사진=민혜경 작가

◆ 전통 한지를 현대적이고 트랜디한 작품으로 재구성하다

한지는 비단보다 수명이 길고 천년을 살아 숨 쉬는 종이다. 통기성이 좋아 습도 조절이 잘되고 빛의 투과율이 높아 아름답다.

부드럽고 은은한 색과 자연적인 질감의 한지는 예나 지금이나 많은 곳에 활용되고 있다.

한지 고유의 특성 때문에 물이 닿으면 찢어지기 쉽다는 단점을 갖고 있지만, 최근에 생산되는 한지 제품들은 이런 점을 보완해 지속해서 발전 중이다. 한지 공예가 대중들의 생활 속으로 자연스레 들어오게 된 것 역시 이러한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민혜경 작가
‘지와사랑’ 공방에 그의 모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민혜경 작가

권혜영 작가가 오랜 세월 만들어온 한지 공예 작품은 ‘지(紙)와사랑’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각별히 아끼는 작품 한두 개쯤 집안에 모셔두지 않을까 싶은데, 그의 작품은 모두 공방에 있다.

그만큼 작품 하나하나에 쏟아부은 작가의 정성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한지 공예 작업을 하다 보면 때론 식사 시간도 잊을 만큼 창작에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사진=민혜경 작가
현대적인 감각으로 탄생한 부엉이등. 사진=민혜경 작가

“작업할 때 열정적으로 몰입하다 보면 밥 먹는 것조차 잊을 때가 많아요. 작품에 정성을 기울이다 보면 완성까지 시간이 워낙 오래 걸리고 다작보다는 한 작품에 정성을 다하는 편이거든요. 한지 공예는 집중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예술 작업이에요. 가장 큰 매력은 실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제가 만드는 한지 공예 작품 세계에 불가능이란 없답니다.”

내년 3월에는 안동시립민속박물관에서 권혜영 한지 공예가의 새로운 시각과 감각을 담은 한지 공예 개인전이 열릴 계획이다. 남다른 미학과 열정으로 새롭게 탄생할 한지 공예 작품 전시가 기대된다.

 

사진=민혜경 작가
권혜영 한지 공예가의 작품을 만나는 ‘지와사랑’ 공방. 사진=민혜경 작가

 

[지와사랑 | 권혜영]

2012년 경북공예품대전 동상
2013년 대한민국 한지대전 입선
2014년 전국(전주)한지대전 입선, 경북공예품대전 특선
2015년 경북공예품대전 은상
2016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교류전, 개인전 2회
2017년 전국안동관광기념품 공모전 입선
2018년 대한민국공예품대전 장려상
2018년 경상북도 프랑스 루왕 공예품 특별 초대전
2019년 대한민국 공예품대전 특선
2019년 안동 미협전, 경상북도 한지공예 작가전

관련기사

저작권자 © 블로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