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당 | 김미경

사진=유은영 작가
하나부터 열까지 손으로 하는 열정. 사진=유은영 작가

“한지는 사람을 닮았어요. 쉽게 구겨지고 찢어지고 상처받지만 두드릴수록 단단해지고 여러 장 모일수록 질겨져요. 그래서 한지를 보면 푸근하고, 위로가 돼요.”

그의 한지 사랑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도 한지에 썼고, 고마운 분께 보내는 선물도 한지로 만들었다. 죽을 만큼 힘겨웠던 시절을 한지 작품에 몰두하며 버텨왔고, 한지를 사랑하는 제자들과 사라져가는 한지 공예를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한지를 꼭 닮은 김미경 작가를 만났다.

 

사진=유은영 작가
작업에 몰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사진=유은영 작가

◆ 어려서부터 남다른 한지 사랑

‘온고당(溫故堂)’은 김미경 작가의 호이자 그의 한지 공예장 이름이다.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처럼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전통과 옛것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친구들이 예쁜 편지지에 편지를 주고받을 때도 그녀는 한지에 편지를 썼고, 한지로 만든 선물을 하곤 했다.

다도전문가 자격증을 따게 된 날 다도 선생님께 드린 선물도 한지로 만든 찻상이었다. 그냥 두기 아까운 손재주라며 한사코 자격증을 따두라고 권했다. 그길로 서울을 오가며 한지공예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사진=유은영 작가
20년이 넘은 찻잔 받침대. 사진=유은영 작가

한지 공예가 가득한 김미경 작가의 온고당을 찾은 날, 그는 조용히 차를 권했다. 온고당 한 귀퉁이 아담한 차 마루에 앉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차를 마시는 동안 한지로 만든 찻잔 받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만든 지 20년이 넘은 받침대는 바닥 한 겹이 살포시 일어나고 있었지만, 오히려 차 마시는 시간을 더 따뜻하게 해주었다.

 

사진=유은영 작가
오묘하고 정겨운 한지의 질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진=유은영 작가

“저는 그런 한지 공예를 원해요. 한지가 겹이 일어나도록 평생 쓰다가 자식이 엄마의 손때를 기억하며 물려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가 한지 공예에 특히 시간과 공을 들이는 이유다. 기계로 뚝딱 만든 것은 전혀 쓰지 않고, 모든 걸 손으로 직접 한다. 남들이 두 겹 바를 때 세 겹을 바르고, 지문이 없어지도록 정성을 다한다. 

 

사진=유은영 작가
사랑스런 한지 서랍장. 사진=유은영 작가

◆ 한지가 선물한 제2의 인생

“한지는 사람을 닮았어요. 쉽게 구겨지고 찢어지고 상처받지만 두드릴수록 단단해지고 여러 장 모일수록 질겨져요. 그래서 한지를 보면 푸근하고, 위로가 돼요.”

세상 근심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맑은 얼굴이지만, 그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어두운 시기가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쫓기다시피 고향 영주로 왔다. 모든 걸 잃어버리고 원망으로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에 부석사로 달려가 울다가 기절하기도 했고, 한밤중에 정신없이 다니다가 검문에 걸리기도 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게 한지였다. 한지 작품에 몰두해 있을 때는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사진=유은영 작가
한지로 꽃피운 장식장. 사진=유은영 작가

한지로 만든 작품이 한방을 가득 메웠을 무렵이었다. 길을 물으러 오신 분들에게 차를 권하게 되었다.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그냥 보내지 말고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하라는 엄마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그분들이 작업하고 있던 방을 보고는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왔다. 알고 보니 영주시청에서 일하는 분들이었다. 영주시에서 열리는 전국민속예술축제에 참여해달라는 것이다.

 

사진=유은영 작가
작업 중인 김미경 작가. 사진=유은영 작가

사람들 앞에 나설 엄두가 나지 않던 때라 거절을 했지만, 작품만이라도 전시해보자며 간곡하게 부탁해왔다. 우여곡절 끝에 내어준 작품들은 축제기간 5일 만에 모두 팔리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걸로도 모자라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했고, 여기저기 강의 요청이 밀려들어왔다. 죽음의 문턱에서 동아줄처럼 생명의 끈이 되어준 한지 공예가 제2의 인생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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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당에 전시된 작품들. 사진=유은영 작가

◆ 제자들과 함께 해온 온고당 한지사랑회 작품전, 올해 22회째

“정신요양원에 자원봉사를 다니던 때였어요. 어느 날 몸이 아파서 수업을 못가겠다고 연락을 했더니, 수업은 안 해도 되니 잠시만 다녀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갔더니 수업 받는 아이가 요구르트와 사탕 하나를 들고 서 있었어요. 그걸 주머니에 넣고 일주일을 기다렸다는 거예요.”

공방을 내고 한지 공예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한지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한지 공예로 아픔이 치유되는 일들을 겪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사진=유은영 작가
온고당에 전시된 작품들. 사진=유은영 작가

이제는 자격증을 가진 제자만 38명에 이른다. 제자들과 함께 소백문화제, 인삼축제 등 150회가 넘는 전시를 이어오고 있고, 온고당 한지사랑회를 만들어 작품전을 열어온 지 22회를 맞이한다.

2020년 영주시 한문화테마파크가 완공을 앞두고 있다. 한지를 비롯해 한복, 한식, 한옥, 한글, 국악 등 한국 고유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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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손으로 이어붙여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사진=유은영 작가

김미경 작가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음악, 미술, 시, 문학보다 공예를 낮게 여기는 풍토가 여전하다면서, 한문화테마파크가 한지 공예를 하는 젊은 인재들이 역량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기를 바랐다.

사라져가는 한지 공예의 맥이 이어지는 길은 젊은 작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눈빛을 보니 한지 공예의 미래가 밝게 여겨졌다.

 

사진=유은영 작가
온고당 한켠에 있는 차 공간이 그의 마음처럼 포근하다. 사진=유은영 작가

 

[온고당 | 김미경]

2002년 서울 코엑스 전시
2005년 대한민국 공예품대전 장려상 수상
2007년 경북청소년 지도자 대상 및 기타 수상 30여회
2009년 LA 한지공예 초대전
2011년 세계 공예가회 국제 공예 초대전
2014년 세종문화회관 공예작가전
2017년 한·베 미술교류전
현 한문화테마파크 한지 자문위원
현 국공에디자인연구회 경북지회장
현 ㈔평생교육진흥회 경북 한지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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