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한지에 천년의 혼을 담는 사람들] 10. 한지와 손으로 만든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
[기획-한지에 천년의 혼을 담는 사람들] 10. 한지와 손으로 만든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9.12.12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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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지예 | 송인영
사진=유은영 작가
한지를 손으로 찢어 만들었다고 믿기 어렵다. 사진=유은영 작가

그의 손끝에서 한지가 다시 태어난다. 한지에 색을 입히고, 세심한 손길로 뜯고 붙여서 일상을 표현한다. 대한민국 한지그림공예 명인으로 선정된 송인영 작가는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한지 사랑과 그림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한지는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고, 그를 행복하고 풍성하게 했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날선 마음이 둥그레지고, 아린 곳이 편안해진다. 오래오래 보고 싶은 한지 위의 세상이다.

 

사진=유은영 작가
작업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송인영 작가. 사진=유은영 작가

◆ 오직 손과 한지만으로 그린 그림

송인영 작가를 찾아 안동에 간 날은 13번째 개인전을 앞둔 분주한 날이었다. 작품 앞에 앉아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빨려들 듯 그의 작품 앞에 섰다. 처음엔 붓으로 그린 그림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온통 한지였다.

활짝 핀 능소화도 한지였고, 오묘한 색감이 번진 배경 역시 한지다. 흔히 보던 그림과는 사뭇 달랐다. 한 번에 빨려들었다. 모가 나있던 마음은 둥글둥글 선해졌다. 고단했던 어깨를 토닥여주었고, 눈물이 핑 돌 것 같이 위로해 주었다.

 

사진=유은영 작가
한지를 뜯어 물고기를 만들고 있다. 사진=유은영 작가

“제 그림은 전부 한지예요. 처음엔 다들 붓으로 그린 줄 알아요. 꽃도 물고기도 나무도 다 한지를 뜯어서 만들어요.”

한지는 그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다. 한지를 곱게 물들이는 것도 그의 손이다. 물들인 한지를 손으로 뜯어내 붙이면 능소화도 되고, 잉어도 되고, 심지어 갈대도 된다. 산이며, 바다며, 달빛에 일렁이는 호수도 그의 손에서 창조된다.

특히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상작인 ‘월광 소나타’는 보름달 두둥실 뜬 가을밤의 갈대를 그려냈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갈대와 은은히 흐르는 강물은 한지를 찢어서 작업했다고 믿기 어렵다. 당시 이 작품을 본 관람객들은 작품에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잔잔히 들려오는 듯 감명 깊었다고 한다.

 

사진=유은영 작가
염색부터 완성까지 한지와 손으로 이루어진다. 사진=유은영 작가

한지 회화는 밑그림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머릿속에 떠오른 영감에 의지한다. 그림에 필요한 색은 한지에 직접 염색을 해서 쓴다. 물감처럼 색이 풍부할 리가 없지만 한지만의 독특한 감성이 가득하다.

손으로 뜯어낸 한지 끝 부분은 특유의 섬유질이 나타나는데, 붓 터치와는 다른 느낌이다. 한지가 가진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최대한 풍성하게 화폭에 담는 것이 송인영 화가의 능력이다.

 

사진=유은영 작가
밑그림도 없이 오직 영감으로 작업한다. 사진=유은영 작가

◆ 한결같은 열정으로 달려온 20년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손재주가 많은 그였다. 학창 시절에는 뜨개질로 그를 당할 친구가 없었고, 뒤늦게 배우기 시작한 바느질로는 한복 한 벌 뚝딱 만들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손으로 하는 일이라면 재밌고 자신이 있었다.

그러던 중 오색 한지를 배우러 다녔고, 우연히 한지 그림을 만나게 되었다. 한지 그림을 보는 순간 단숨에 빠져들고 말았다.

 

사진=유은영 작가
오직 한지와 손으로 만든 그림. 사진=유은영 작가

하루도 쉬지 않고 한지 그림에 빠져 살았다. 앉으나 서나 한지 생각이었고, 자나 깨나 작품 생각이었다. 한지 그림을 자랑하고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때 작품을 사람들이 보이게 들고 있을 정도였다.

누구라도 관심을 보이면 신이나서 한지 그림에 대해 자랑했다. 한지 그림을 만나고 나서 그의 삶이 바뀌었다.

 

사진=유은영 작가
안동무궁화와 물고기. 사진=유은영 작가

“나는 손이 전부예요. 보시다시피 제 작품은 모두 손에서 이루어져요. 손으로 뜯고, 붙이고, 물들이고, 하나에서 열까지 다 손으로 만들어요.”

한지에 염색을 하고 건조한 다음 원하는 모양을 뜯어서 붙이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의 열정을 막을 순 없다. 힘들기는커녕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날아갈 것 같이 행복했다. 뜨거운 열정으로 한지 그림에 매달려온 지 어느덧 20년. 13번째 개인전을 열게 됐고, 대한민국한지그림공예 명인에 등재됐다.

 

사진=유은영 작가
작품을 설명 중인 송인영 작가. 사진=유은영 작가

◆ 한지 그림 전용 갤러리 건립이 희망

“김포공항에서 개인전을 할 때였어요. 한 독일 분이 전시회에 들렀는데, 작품을 두 개나 구입해 갔어요. 그분은 한국에 있는 동안 인사동에도 가보고 많은 곳을 가봤지만, 이렇게 한국적인 것을 본적이 없다면서 감격해했어요.”

 

사진=유은영 작가
한지의 매력을 한껏 살리는 것이 송인영 작가의 능력. 사진=유은영 작가

송인영 작가는 우리나라 전시장은 대부분 서양화 위주라고 안타까워했다. 한지 그림 공예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전용 갤러리가 없어서 접할 기회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꾸준히 개인전을 준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한지 그림을 볼 수 있고, 한 사람이라도 한지 그림의 매력을 알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최근 한지 그림 작가들이 늘고 있지만, 한지만의 매력과 가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다. 젊고 재능 있는 인재들이 한지 그림 공예에 대해 더 많이 알고, 활성화 되고 더 나아가 세계에 주목받는 예술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사진=유은영 작가
한지그림공예 대한명인 등재. 사진=유은영 작가

 

[천연지예 | 송인영]

2004~2018년 개인전 12회, 단체전 50회
2007년~현재 대한민국 새하얀 미술대전 운영·심사위원 및 초대작가
2008년 대한민국 미술대상전 심사위원
2009~2010년 삼성현 미술대전 운영·심사위원 및 초대작가
2010년 장한한국인상 수상(문화예술근장)
2012년 대한민국 정수미술대전 심사위원
2013~현재 조달청 문화상품 납품업체(천연지예공방)
2014년 대한민국명인(한지그림공예) 14-404호 등재
2018년 조달청 전통문화상품공모전 심사위원
2019년 충청북도 공예품대전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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