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한지에 천년의 혼을 담는 사람들] 2. 천년이 가도 변함없는 문경 한지
[기획-한지에 천년의 혼을 담는 사람들] 2. 천년이 가도 변함없는 문경 한지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9.10.17 1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경전통한지 | 김삼식
사진=유은영 작가
고려지의 명맥을 잇는 문경 한지. 사진=유은영 작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문경 한지장 보유자 김삼식 장인은 한평생 전통 한지를 만들어왔다. 그의 한지는 천년이 가도 변함없는 고려지의 맥을 잇는다.

토종 닥나무를 심는 것부터 천연 잿물에 삶고, 황촉규로 닥풀을 만들고, 한지를 뜨기까지 옛 방식 그대로다.

조선왕조실록 복원용 한지로 선정된 것은 물론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유물 복원에 사용됐다. 한국의 유산을 넘어 세계의 유산인 문경 한지를 만났다.

 

사진=유은영 작가
전통 한지와 한평생을 함께한 김삼식 장인. 사진=유은영 작가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입성한 문경 한지

1966년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모여 든 고고학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1200년 전 금동제 사리함 속에서 종이 두루마리가 나온 것이다. 신라 35대 경덕왕 10년(751)에 간행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낸 종이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570여 년 된 구텐베르크의 성경은 부식이 심해 전시가 불가능한데, 640여 년 된 우리의 직지는 여전히 책장을 넘길 수 있고, 1200년이 넘은 다라니경은 아직도 전시가 가능하다.

 

사진=유은영 작가
천년을 견디는 전통 한지 방식 그대로 만든 문경 한지. 사진=유은영 작가

천년을 견디는 한지의 인기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지’로 불리며 당대 중국의 시인·묵객들에게 실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다.

백추지(표면이 희고 단단한 종이)나 경면지(표면이 거울과 같이 맑고 깨끗한 종이), 견지(표면이 솜처럼 부드러운 종이) 등의 애칭으로 부르며 탐내던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사진=유은영 작가
옛 공장에서 쓰던 나무지통. 문경 한지의 역사를 말해준다. 사진=유은영 작가

2017년부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문경 한지를 유물 복원용 종이로 쓰고 있다. 문경 전통 한지가 사용되는 부분은 문화재 표구 시스템인 ‘데빠쌍’이라는 분야다.

그동안 일본의 화지와 중국의 선지를 사용해온 루브르 박물관이 문경 전통 한지를 선정한 것은 전통의 방식 그대로 제작하는 문경 한지를 고려 한지의 명맥을 잇는 전통 한지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진=유은영 작가
한지를 뜨는 김삼식 한지장. 사진=유은영 작가

◆ 그의 종이가 천년을 견디는 이유

문경 전통 한지를 만드는 김삼식 한지장은 물려줄 땅 한 평 없는 집에 태어났다. 가난해서 학교도 가지 못한 그는 3대째 한지 만드는 집으로 시집 간 누나를 따라 가서 한지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그의 나이 겨우 9살이었다.

그렇게 먹고 살려고 뜨기 시작한 한지가 한평생 그의 업이 됐다. 지금은 그가 종이를 처음 뜨던 70여 년 전과 딴 세상이다. 종이가 기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흔하디흔한 시대지만, 그의 종이는 꼬박 1년이 걸린다. 그가 9살 때 배운 전통 방식 그대로다.

 

사진=유은영 작가
그의 집 주변에 닥나무밭이 푸르다. 사진=유은영 작가

껍질이 말끔히 벗겨진 중국산 닥나무가 밀려들어오지만, 그는 닥나무를 직접 키운다.

1년생 닥나무를 베고, 삶고, 손으로 일일이 껍질을 벗긴다. 외피를 벗기고 청태까지 제거해서 백닥을 만드는 일이 한지 만드는 일 중에 가장 고된 순간이다. 온종일 해도 고작 5㎏ 남짓 벗기는 게 전부다.

 

사진=유은영 작가
닥껍질 벗기는 작업은 온종일 해도 5㎏ 남짓 할까말까한 고된 일. 사진=유은영 작가

메밀대와 콩대를 태워 잿물을 만들고, 그 잿물로 백닥을 삶는다. 그리고 수백수천 번을 두드려 닥죽을 만들고, 닥풀과 함께 찬물에 푼다.

닥풀 역시 직접 키운 황촉규 뿌리로 만든다. 닥풀을 무얼 쓰느냐에 따라 종이의 치밀함이 결정된다.

 

사진=유은영 작가
오직 1년생 닥나무만 쓴다. 사진=유은영 작가

천연 잿물로 삶은 닥죽은 잘 풀리지도 않는다. 팔에 쥐가 나도록 휘저은 뒤라야 종이 뜰 준비가 끝난다.

대나무발을 좌우로 흔들어 종이를 뜨는 것은 단 1분. 고도의 집중과 숙련된 그의 솜씨가 빛을 발하는 시간이다.

 

사진=유은영 작가
전통한지를 위해. 사진=유은영 작가

이렇게 고되고 오래 걸리는 한지 기술은 사라져가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한지업체들 마저 현실과 타협하며 전통 방식과 재료를 멀리한다. 천연 잿물 대신 양잿물을 쓰고, 청태를 일일이 손으로 벗기는 대신 표백제를 쓴 개량 한지가 전통 한지로 둔갑하기도 한다.

“수입 닥을 쓰고, 표백제로 씻고, 양잿물로 삶으면 오늘 주문 받고 내일이면 종이가 나와. 하지만 그런 종이는 오래 못가.”

그의 종이는 1년 꼬박 걸려 1만 5,000장이 겨우 나온다. 전통의 방식으로 만든 그의 종이가 천년을 버티는 이유다.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7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조선왕조실록 밀랍본 복원 한지로 선정됐고, 고려초조대장경 복원에도 그의 한지가 쓰였다.

 

사진=유은영 작가
하나부터 열까지 전통 방식대로 만든다. 사진=유은영 작가

◆ 한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설 쇠려고 종이 짊어지고 눈 쌓인 산길을 넘어 화령장으로 갔어. 한 장도 못 팔고 눈길에 얼어 죽을 고생을 했지. 죽으나 사나 종이만 만들어 온 것도, 남들처럼 양잿물을 쓰지 않은 것도, 다 가난했기 때문이지.”

어렵고 고된 전통한지를 어떻게 지켜냈냐는 질문에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였다고 겸손히 답하는 그의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눈가가 촉촉했다.

지금은 아들 김춘호씨가 대를 잇기 위해 아버지 옆을 지키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 종이 뜨는 걸 보고 자란 그는 아버지 종이가 얼마나 위대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사진=유은영 작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표지석이 집 앞에 우뚝하다. 사진=유은영 작가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험하고 험한 한지 일을 하겠다는 아들을 어머니는 눈물로 말리셨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가 아니면 한지의 맥이 끊어진다는 사명감 하나로 부모님을 설득했다.

그의 꿈은 한지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동안 유럽에선 중국 선지나 일본 화지를 더 선호해 왔지만, 한지가 더 우수하고 좋은 종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그에 힘입어 일본의 화지와 중국의 선지처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도록 온 힘을 쏟고 있다.

문경 한지장이라는 표지석이 우뚝한 그의 집 주위는 닥나무가 온통 푸르다. 한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가는 종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날까지 그의 닥나무가 푸르게 푸르게 자랄 것이다.

 

사진=유은영 작가
문경한지장 전수교육관 외관. 사진=유은영 작가

[문경전통한지 | 김삼식]

1963년 문경전통한지 설립
2004년 토종닥나무 재배 성공(국내 최초)
2005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23-나호 선정
2008년 조선왕조실록 밀랍본 복원용 한지로 선정(문화재 연구소)
2010년 한지영화 ‘달빛길어 올리기’ 출연 및 자문위원(임권택 감독)
2010~2014년 고려대장경 초조본 복원사업 한지 선정
2010년 해인사 사간판 인경사업 한지 선정
2014~현재 불교중앙 박물관 금석문 탁본사업 한지 선정
2015년~현재 불교문화재 연구소 경판 인경사업 한지 선정
2017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국내최초 한지 납품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