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휴대폰만 들고 물들어찬 마을 탈출…맨홀 있었다면 빠져 죽었다"
[르포] "휴대폰만 들고 물들어찬 마을 탈출…맨홀 있었다면 빠져 죽었다"
  • 정혜민 기자
  • 승인 2020.08.04 14: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일 수해를 입은 백금미·은순씨 자매의 집 © 뉴스1/정혜민 기자

"신랑이 죽는다고 나오라고 해서 휴대폰만 들고 나왔어요."

안성시 죽산면 수재민 백은순(64)·금미씨(59) 자매는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틀 밤을 이재민대피소인 죽산초등학교에서 지새운 백씨 자매는 낮 동안엔 집에 가서 상태를 살피고 청소도 한다고 했다.

동생 백금미씨는 "이번 수해는 자연을 거슬러서 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기가 30년 만에 수해가 났다"고 말했다. 집으로 바삐 향하는 백금미씨의 관자놀이 위로 땀이 흘렀다.

백금미씨의 설명에 따르면, 죽산면 산기슭엔 학교 등을 짓는 공사가 많았다. 백금미씨는 "산을 파헤치고 공사를 하니까 산이 물을 못 잡아주고 쏟아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일 오전 6시부터 백은순·금미씨의 집에는 물이 차기 시작했다. 집의 지대가 낮아지다보니 하수구부터 역류한 것이다. 백은순·금미씨 가족은 이날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밤을 지새웠다.

백금미씨는 오후 6시가 되자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재민대피소인 죽산초교로 대피했다고 했다. 밖에 나와보니 허리까지 물이 차있었다. 물살이 몸이 휘청거리고 발이 닿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백금미씨는 "만일 맨홀 뚜껑이라도 열려있었으면 빠져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1일 0시부터 3일 오전 7시까지 안성에는 누적 312㎜의 비가 내렸다. 특히 2일 오전 7~8시 한 시간 동안 104㎜의 물폭탄이 떨어지기도 했다. 안산시 죽산면에는 백은순·금미씨 같은 이재민 총 25명이 발생해 죽산초교에서 지내고 있다.

백은순·금미씨 자매의 집은 폭 6m가량의 죽산천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담벼락은 완전히 무너졌고 곳곳에 깨진 항아리가 굴러다녔다.

비가 그쳤지만 죽산천의 물살은 빠르게 흘렀다. 바로 옆에서는 통신업체 직원들이 통신망을 고치고 있었다. 직원들은 "지금 이 동네에선 인터넷, 통신, CCTV 모두 막혔다"고 전했다.

시에서 나온 공공근로 인력 4명이 도로 위에 올라온 흙과 잔가지들을 치우고 있었다. 모두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었다. 도로 곳곳엔 죽산천이 범람하면서 함께 넘쳐나온 굵은 나뭇가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4일 수해를 입은 백은순·금미씨 자매의 집© 뉴스1/정혜민 기자

집안은 온통 흙바닥이었고 고가구들이 포개져 있었다. 비가 그치고 백금미씨가 임시로나마 올려둔 것이다. 백금미씨와 그의 남편은 전통장류 사업과 함께 고가구 사업을 하기 위해 2년 전 서울에서 내려왔다.

백금미씨는 "전통장류가 고가구랑 잘 어울린다"면서 "지금 이것도 못쓰게 됐지, 저것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백금미씨의 남편 유봉준씨(62)는 집 밖에서 남은 장독대를 황망히 바라봤다. 유씨는 "안에 장이 든 장독대들이 떠내려 갔다"며 "가전제품을 제외하고 사업하려고 장만한 물건들만 약 2000만원어치를 손해 봤다"고 했다.

이틀 밤을 안성시 죽산초등학교에서 지낸 백금미씨는 "불편하지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죽산초교에서는 가족이 함께 쓸 수 있는 텐트와 깔개, 그리고 얇은 담요가 제공됐다. 다만 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 잠들기 불편하고 샤워 시설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백은순·금미 자매는 언제까지 죽산초에서 지내야 할지 모른다. 백금미씨는 "절대 개인이 집을 치울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시에서 하루빨리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일 수해를 입은 백은순·금미씨 자매의 집© 뉴스1/정혜민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