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빛이야기 류광순 대표

사진=김숙현 작가
소목 꼭두서니 황벽 쪽 코치닐로 염색한 무지개. 사진=김숙현 작가

구수한 버섯향이 기분 좋다. 뜨거운 물을 부은 능이버섯 차는 금세 본연의 향기를 내뿜는다. 가을철에 사다가 햇빛에 잘 말려놓았던 능이버섯은 겨우내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 다구를 정갈히 갖춰놓고 혼자 차 마시는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는 류광순 대표. 그는 차도 염색도 과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한다.

 

풀꽃이야기 류광순 대표. 사진=김숙현 작가
풀빛이야기 류광순 대표. 사진=김숙현 작가

◆황토 염색 옷이 몸에 제일 좋아

풀빛이야기 공방에서 만난 류광순 대표는 황토 염색 티셔츠에 감물 염색 원피스 차림이다. 색상은 평범하지만 몸에 좋은 황토 염색 옷을 즐겨 입는다. 황토는 항균·해독력이 뛰어나고 습도 조절까지 되므로 속옷이나 피부에 닿는 의류, 침구에 최고다.

 

사진=김숙현 작가
햇빛과 바람이 천을 물들이는 시간. 사진=김숙현 작가

한때 유행했던 황토 염색이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류광순 대표는 여전히 황토를 사랑한다. 황토 같은 광물 염색은 아주 고운 입자가 섬유 사이에 들어가서 염색이 되는데 세탁하는 과정에서 입자가 탈락되면서 색이 바라기 쉽다. 그럴 때는 다시 염색해서 사용하면 새것처럼 된다.

 

사진=김숙현 작가
창살에 염색천을 꽂은 장식. 사진=김숙현 작가

몸에는 좋지만 작업은 힘들다. 일반적으로 염색을 할 때 30분 주물고 씻어 말리기를 4회 정도 반복하는데 황토는 20회, 먹물은 40회, 숯 염색은 많을 땐 100회까지도 한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염색도 여러 가지 해봤어요. 흙 종류는 황토 말고도 갯벌 흙, 산 공사에서 나오는 미세 흙, 벽돌가루 등 일곱 가지 정도 염색했어요. 서해안 갯벌 흙을 가져다가 한 염색에서 신기하게도 물결 문양 같은 게 나오더라고요. 갯벌에는 소금기가 있어서 그랬던 거죠.”

 

사진=김숙현 작가
천연염색으로 표현한 오방정색과 오방간색. 사진=김숙현 작가

지난해 인사동에서 영주공예협회 회원들이 참가한 전시회에 우리나라 전통의 오방색(황, 청, 백, 적, 흑)을 천연염색으로 만들어 전시했다. 오방색을 오방정색이라고도 하고, 오방색을 섞어 나오는 중간색을 오방간색이라고 한다.

 

사진=김숙현 작가
공방 곳곳에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사진=김숙현 작가

서예·사군자에서 천연염색으로

류광순 대표 작품에는 유독 그림이 많이 들어가는데 염색을 배우기 전 서예와 사군자를 했던 이력 덕분이다. 사군자를 한창 하던 1995년, 지인이 불우이웃돕기 관련 전시회를 하는데 스카프에 사군자를 그려 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 당시 화학 염색 천에 그림을 그려주고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면서 천연염색에 눈을 떴다고.

1998년, 안동에서 쪽물을 잘 한다는 최옥자 선생님이 천연염색 수업을 개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참가했다. 그때가 경북 지역에서는 거의 최초의 염색 수업이라 안동뿐만 아니라 영주, 상주 등지에서 수강생이 모여들었다.

 

사진=김숙현 작가
유칼립투스 잎, 꽃을 올려 찌는 방식으로 염색한 스카프. 사진=김숙현 작가

1년 과정 수업이 끝난 후 영주에 전통교육관이 문을 열면서 아이들 체험 위주의 천연염색 수업을 맡아달라고 부탁해 왔다. 아이들 체험이라 어렵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낀 시간이었다.

 

사진=김숙현 작가
소목 염색 시연. 사진=김숙현 작가

다시 찾은 배움의 기회는 성균관대 궁중복식과에서 실시한 염색반이었다. 1년 과정으로 주1회 수업이 있었는데 전날 저녁에 올라가서 자고 수업 마치면 저녁에 내려오곤 했다.

하반기에는 중앙고속도로가 뚫려 첫차를 타면 수업이 막 시작할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실습할 때면 누구보다 열심히 나섰다. 정확한 개량과 온도, 시간도 중요하지만 결국 염색은 주무르는 손의 강약 등 자신만의 경험을 쌓아야하기 때문이다.

 

사진=김숙현 작가
꽃, 풀, 나무로 고은 빛을 내는 마법 같은 천연염색. 사진=김숙현 작가

2018년 봄, 공방을 지금 자리로 옮겼다. 밭 가운데 있는 시골집을 공방으로 개조했다. 방 한 칸은 평생 모은 다구들로 채우고 한 칸은 염색 작품과 원단 보관실이다. 처마 아래 기둥을 대고 비닐을 감싸 차 마실 공간, 평상, 실내작업실, 주방을 차렸다. 햇빛이 잘 들어 여기 앉아 차 마시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넓은 텃밭에 쪽, 맨드라미, 메리골드, 차조기 같은 염색 재료를 심었어요. 집 주변을 둘러보면 애기똥풀, 쑥, 대나무, 억새 같은 자연 그대로의 염색 재료가 많아 바로 채취해서 쓸 수 있지요.”

 

사진=김숙현 작가
에너지 가득한 류광순 대표의 미소. 사진=김숙현 작가

아이들에게 무료 체험기회 제공

유난히 자연의 염색재료를 좋아한다는 류광순 대표. 지인의 어머니가 먹버섯 삶고 난 검은 물을 보고 염색으로 이용해 보라고 얘기해줬다. 실제로 염색해 봤더니 겨울 소나무 같은 신비로운 어두운 녹색이 나타났다.

이후 여러 가지 버섯 염색에 도전했다. 운지버섯은 연하늘빛, 상황버섯은 노란색이 매혹적이다. 버섯은 매염제를 쓰지 않아도 색이 잘 나와서 좋다고.

 

사진=김숙현 작가
직접 채취한 메리골드, 양파껍질, 맨드라미. 사진=김숙현 작가

풀빛이야기에서 만든 작품을 지역 축제장에서 판매하거나 주문을 받아 만들어 준다. 축제 때는 딸이 판매를 도와주는데 류 대표는 무뚝뚝해서 그런지 판매는 성격에 맞지 않는단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작업하는 것 외에는 교육을 주로 한다. 딸이 뒤를 이어 염색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데 아직은 판매 정도 말고는 도와주지 않아 시간을 두고 설득할 작정이다.

 

사진=김숙현 작가
하루 중 차 마시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사진=김숙현 작가

“가르치는 게 좋아요. 지역 초등학교,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무료로 체험하도록 공방을 열어놓았더니 마당에서 뛰고 놀고 조물조물 체험하는 게 너무 예쁘대요.”

내년에는 텃밭에 염색 재료를 더 다채롭게 심고 화단에 야생화도 많이 심을 계획이다. 앞마당, 뒷마당에 염색한 천을 걸어두고 마르기를 기다리며 차를 즐길 류 대표의 어느 햇살 좋은 날이 절로 그려진다.

 

사진=김숙현 작가
장인이 아끼는 다실. 사진=김숙현 작가

 

[풀빛이야기 류광순 대표]

2000년 성균관대 궁중복식과 염색반 수료
2001년 한국민속예술축제 중 개인전 
2006년 경북 관광기념품경진대회 입선
대한민국 관광 상품공모전 입선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입선
경북공예대전 입선 다수
코엑스 경북전 전시
2017, 2018년 선비고을의 향기전(인사동)
2017년 한·베미술교류전 참가(베트남 호치민)
2018년 영주선비문화축제 기간 중 전시 및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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