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닮 대표 황미애

사진=김숙현 작가
갤러리에 전시된 스카프. 사진=김숙현 작가

넓은 마당에 걸린 긴 빨랫줄과 장대가 손님을 반긴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장대를 보기란 쉽지 않은데 염색 공방에서 만나는 빨랫줄과 장대가 마냥 반갑다. 염색한 천이 잔뜩 널려있는 풍경도 장관이리라.

풍기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자닮은 갤러리 겸 카페다. 커피와 차를 주문할 수 있고, 근사한 천연염색 제품을 구경하고 살 수도 있다. 자닮에서 만난 황미애 대표는 그의 염색 작품들처럼 편안하고 따스한 사람이었다.

 

사진=김숙현 작가
자닮 황미애 대표. 사진=김숙현 작가

◆자연을 닮고 싶은 염색가

“자닮은 자연을 닮은 갤러리입니다. 자연의 멋을 그대로 전해주는 천연염색을 만들고 기술을 전수해 모든 사람들이 자연염색을 가까이 할 수 있게 하는 게 자닮의 목표입니다.”

자닮 홈페이지에 황 대표가 올려놓은 인사말이다. 좀더 많은 사람이 자연염색을 체험하고, 자닮 갤러리나 염색학교를 통해 자연염색의 다양함을 보았으면 하는 게 황 대표의 바람이다.

 

사진=김숙현 작가
메리골드는 노란색으로 물들일 때 쓴다. 사진=김숙현 작가

갤러리 처마 밑에 갈무리 해 말려둔 메리골드처럼 황 대표는 자연에서 온 재료로 염색하는 걸 즐긴다. 소루쟁이, 메리골드, 양파 껍질, 달맞이꽃, 오배자, 밤, 감 등 사방에 널린 게 재료가 된다. 시골에 있으니 재료를 구하기도 쉽다.

가르치는 교육생 가운데 정년 퇴직자를 위한 과정도 있는데 그런 분들을 모아 염색 식물을 재배하고 수확해 풍기인견으로 염색해 판매하는 프로젝트도 고민하고 있다고.

 

사진=김숙현 작가
빨랫줄에서 막 걷어온 감물 염색. 사진=김숙현 작가

황 대표가 천연염색을 시작한 것은 15년 전이다. 규방 공예와 민화를 먼저 배웠는데 거기서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천연염색을 배웠는데 너무 재미가 있었다.

같은 염색 재료일지라도 매염제에 따라 색상이 다르게 나오고, 염색하는 이의 손길에 따라서도 농도가 달라진다. 여럿이 같은 통에 천을 넣어서 동시에 작업을 하는데도 색상이 조금씩 다르게 나오는 게 너무 신기하다. 그래서 천연염색이 더 재미있고 매번 설렌다.

 

사진=김숙현 작가
힘들어도 염색작업은 늘 즐겁다. 사진=김숙현 작가

마음을 다스리며 집중해서 염색을 해야 원하는 색이 나온다. 시간과 정성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직접 만든 작품이 어떤 명품 가방보다 더 명품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공들여 만든 걸 생각하면 그 값을 매기기 힘들 정도다. 자연의 색에 반해, 좋아하는 색상을 내기 위해 힘들어서 끙끙대면서도 천연염색을 놓을 수 없다.

 

사진=김숙현 작가
풍기인견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한복. 사진=김숙현 작가

◆천연염색과 풍기인견은 환상의 짝꿍

“자연염색의 고요하고 깊은 색감을 지역 특산품인 풍기인견에 입히는 작업이 매력적이에요.”

황미애 대표가 최근 몇 년간 힘쓰는 일은 천연염색한 풍기인견을 상품화하는 일이다. 인견은 나무에서 추출한 친환경 웰빙 섬유로 풍기에서 많이 생산하는 지역 특산품이다.

풍기인견은 감촉이 시원하고 몸에 달라붙지 않으며 가볍고 부드러워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문제는 풍기인견을 여름 소재로만 생각하고 속옷이나 잠옷, 침구류 외에는 쓰이는 예가 드물다는 점이다. 황 대표는 직조방식을 달리해 차가운 느낌 대신 포근한 촉감을 주면 다른 계절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김숙현 작가
풍기인견에 쪽물을 들인 원피스. 사진=김숙현 작가

염색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풍기인견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잠옷이나 이불 정도만 만들던 10여 년 전에 이미 그는 풍기인견으로 만든 원피스, 파티용 드레스를 패션쇼에 출품하기도 했다.

지금도 꾸준히 풍기인견 제품 디자인이나 염색법을 연구 중이다. 풍기인견발전협의회에 참가해 지역 축제나 박람회, 전시회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자닮 갤러리에는 풍기인견을 비롯해 다양한 천으로 만든 천연염색 제품이 전시돼 있다. 격식 있는 자리에 입기에 어울릴법한 원피스,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한복, 캐주얼하게 청바지와 입어도 좋을 것 같은 티셔츠도 있다. 쿠션, 스카프, 가방, 브로치, 손수건 등 소품 종류가 다양하다.

 

사진=김숙현 작가
자닮 염색학교 작업실. 사진=김숙현 작가

◆녹색 쪽풀에서 짙은 바다 같은 쪽빛으로

풍기 읍내에서 소백산 비로봉 가는 언덕에 자리한 자닮 갤러리에서는 염색이 완료된 천으로 옷을 만들거나 하는 등 후반 작업을 주로 하고, 염색할 때는 영주시 휴천동에 자리한 자닮 염색학교를 이용한다.

폴리텍대학 염색반 실습도 여기서 이뤄진다.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활용한 덕분에 공간이 넓고, 큰 운동장은 교육생이 한꺼번에 염색한 천을 널어 말리기에 넉넉하다.

 

사진=김숙현 작가
교육생의 염색을 도와주고 있다. 사진=김숙현 작가
사진=김숙현 작가
손을 계속 움직여야 색이 골고루 든다. 사진=김숙현 작가

다음 수업에 쓸 천을 미리 염색해야 한다며 찾아온 교육생을 보고 황 대표가 쪽물 들이는 걸 도와준다. 온도를 살펴주더니 스테인리스강 용기에 천을 넣고 주무르는 작업도 교육생과 함께 한다.

얼룩지지 않고 고르게 색이 들게 하려면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여야 한다. 색이 어느 정도 나오면 물에 헹구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한다. 헹군 천은 녹색이다. 베기 전 쪽풀일 때 색상 그대로다. 햇빛에 널어 말리면 녹색에서 점점 깊은 바다 같은 쪽빛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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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 항아리에 담아놓은 스카프가 멋스럽다. 사진=김숙현 작가

“교육은 많이 했지만 아직 이쪽 분야에서 장인이라고 대접 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좀더 작업에 힘써서 개인전을 열어보고 싶어요.”

겸손해하는 황 대표 옆에서 교육생들이 거든다.

“선생님이 염색하실 때 보면 행위 예술가를 보는 것 같아요. 매염제로 쓰는 소금을 확 뿌릴 때도 그렇고, 구김을 잡는 것도 예술이에요.”

교육생의 칭찬에 부끄러운 웃음을 보이던 황 대표는 잘하는 후배들이나 제자들을 뒤에서 밀어주며 자신은 스스로의 작품을 만들고, 연구하고, 교육을 꾸준히 하면서 지낼 계획이란다.

 

사진=김숙현 작가
자닮 갤러리 내부 풍경. 사진=김숙현 작가

 

[자닮 황미애]

㈔대구경북천연염색조합 부이사장
㈔한국자연염색공예디자인협회 영주지부장
폴리텍대학-자연염색직업교육 강사
2009년 인도국제자연염색작가 교류전
2010~2011년 한국전통문화 자연염색 전국공모전 주관·심사
2013~2014년 (재)경북천연염색산업연구원-풍기인견현장인력양성과정 강사 
2013~2014년 동양대학교 평생교육사업팀-풍기인견 천연염색교육 강사
2015년 국제 자연염색 전시회(대만)
2015년~2017년 경북 여성사관학교 자연염색 주강사
2017년 경상북도지사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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