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화전통자연염색연구소 대표 권순남

사진=김애진 작가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수업하는 권순남 선생. 사진=김애진 작가

의성에 자리하며 홍화전통자연염색연구소를 운영하는 권순남 선생의 길은 자연과 지역, 사람을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늘 함께 하는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배웠고, 여러 나라를 돌아보며 지역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모든 과정이 ‘함께 잘 살자’로 귀결되니 자연히 선생과 동고동락하는 인연도 늘었다. 우리의 전통과 자연으로 문화예술의 길을 이어가는 선생의 삶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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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동행하며 자연으로 더불어 사는 권순남 선생. 사진=김애진 작가

◆ 세계를 돌아보다 의성 홍화로 돌아오다

선생의 전직은 지금말로 하면 플로리스트였다. 그맘때 네덜란드로 시집간 동생을 만나러 외국을 다니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꽃은 우리 꽃과 같기도 다르기도 했다. 네덜란드에 머무는 동안 그곳의 화원에서 일을 했다. 언어는 안 통해도 꽃을 보는 마음에 미소와 눈빛이면 업무에는 지장이 없었다. 더욱이 아시아계 여성의 손재주를 좋아해주었고, 선생의 손재주는 월등했다.

노르웨이 왕자의 결혼식 등 다양한 행사에서 선생은 더 많은 국가를 다니며 여러 종류의 꽃을 만져볼 수 있었다. 거기에 그들의 생활습관에서 오는 자연과의 공존법도 배웠다. 그들은 작은 바늘이나 유리 조각을 버릴 때도 환경을 생각했고, 타인에게 상처가 될까 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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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자연염색 수상뿐아니라 청소년지도자 관련 상도 수차례 받았다. 사진=김애진 작가

기후 조건 등 환경은 달랐지만, 꽃을 키우는 방법, 꽃으로 치장하는 법 등을 배우면서 꽃과 자연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각국에서 익힌 것들로 꽃 작업을 이어갔다.

한국에서의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결심했을 때, 선생은 국내 여러 종류의 자연 관련 분야들을 둘러보았다. 중심은 의성이었다. 의성에서 나고 자란 선생은 다른 나라와 지역을 돌아보면서 의성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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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홍화 자연염색을 하는 과정. 사진=김애진 작가

“우리 의성이 정말 아름다운 자연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중 홍화가 정말 좋죠. 나중에 돌이켜 보니 우리 어머니도 홍화를 그리 귀하게 쓰셨더라고요. 어머니는 농장 작업자 분들이 퇴근하실 때 홍화씨를 넣은 막걸리를 드리곤 했어요. 홍화에 어혈 효과가 있어서 고된 작업 후에 복용하면 피로 회복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저도 나중에 알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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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즐겨도 좋은 마른 홍화꽃. 사진=김애진 작가

선생의 말을 듣고 홍화의 효능이 궁금해 찾아보니, 홍화의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맵고 독이 없다고 동의보감에도 언급된 토종약초였다.

선생의 홍화를 비롯한 자연염색 작업은 결국 세계 각국의 꽃과 자연,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그곳의 사람들을 보고 돌아왔을 때, 우리도 우리 것의 소중함을 지키고 알려야 한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 생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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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물을 만들기 위해 미리 작업해 둔 홍화가지재. 사진=김애진 작가

◆ 의성 홍화염색 전문가의 길을 걷다

선생의 자연염색의 본격적인 행보 시작은 대구가톨릭대학 교수의 염색 전시회에 참여한 후였다. 자연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 중에 염색은 자연과 환경을 아끼면서 생활에 접목해 곁에 둘 수 있는 최적의 일이었다.

대구자연염색박물관의 3년 교육 과정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공예지도자 과정을 거치며 자연염색을 익혔다. 그 후 한국자연염색공예디자인학회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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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물이 나오기 전 홍화꽃의 노랑 물. 사진=김애진 작가

“자연염색이라 부르고 싶어요. 자연의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하는 염색이니까요. 흙, 나무, 풀, 꽃, 잎, 줄기, 뿌리까지 모든 것들이 염색 재료가 될 수 있어요. 자연은 어느 것 하나 똑같은 모습이 없듯이 그런 자연으로 하는 염색도 그때그때 달라요. 자연염색의 매력이라 할 수 있죠. 염색 후에 사용하면서 바라진 색도 마찬가지에요. 자연스럽죠.”

선생의 부군은 의성 홍화조합에서 활동하며 홍화농사를 시작했다. 모든 자연재료로 염색을 하던 선생에게 의성 홍화를 충분히 사용해볼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자연염색은 재료를 거두는 것부터 시작한다. 또한 재료를 얻기 위해서는 농사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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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 특유의 분홍빛 전 노랑 물 염색도 화사하다. 사진=김애진 작가

“농사는 다 힘든 일이지만 홍화 농사는 특히 더 어려워요. 우선 3, 4월에 씨를 뿌려요. 자연염색을 위한 농사이기 때문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요. 키우는 동안에도 농약을 안 쓰니 해충 방지를 위해 손이 더 많이 가죠. 그러다 6월에 꽃을 따는데요. 이때가 감자와 마늘 수확하고 겹쳐요. 일손이 부족한 시기죠. 더 힘든 일은 홍화 꽃은 꼭 새벽녘 차가운 기운 속에서 채취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침 10시 이후에 딴 꽃은 염액이 부족해서 제 색깔이 나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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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천을 말리는 작업도 자연을 배우는 과정이다. 사진=김애진 작가

어렵게 수확한 꽃을 말리고 보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선생의 손에 꽃잎 가시에 찔린 상처는 셀 수 없다. 꽃은 잘 마르나 싶다가도 습도가 높은 날이면 이내 곰팡이가 올라온다. 어느 자연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염색을 위한 홍화는 특히나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한 관리가 필요했다.

 

사진=김애진 작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자연염색 문화예술 수업 결과물. 사진=김애진 작가

◆ 이제, 의성의 홍화를 세계로

홍화의 수확도 어렵지만 염색도 쉽지 않다. 마른 꽃을 면포에 담아 물에 담그면 바로 분홍색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노란 물이 나온다. 물론 이 노란 물도 고운 빛깔을 내는 염료다.

하지만 홍화만의 절대 색인 분홍을 내기 위해서는 미지근한 잿물에 마른 꽃이 든 면포를 수차례 치대야 한다. 노란빛이 없어지면 드디어 홍화의 분홍빛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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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색상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애진 작가

이렇게 나온 분홍 물에 천을 담그면 천의 종류에 따라 또 다른 색색을 뽐내는 빛깔이 완성된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의 결과다. 어려움은 여전하지만 선생은 이제 명실 공히 홍화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한국자연염색공예디자인학회의 김지희 교수의 추천으로 홍화전통자연염색연구소를 운영하며, 홍화염색 작업과 교육,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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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홍화염색 천으로 그림도 그리고 옷도 짓는다. 사진=김애진 작가

“누군가 물어봐요. 이렇게 힘든데, 왜 계속 하냐고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의성과 의성 홍화에 대한 애정 때문 같아요. 사실 홍화염색은 단점이 있어요. 빛과 산에 약해서 색이 금방 바라거든요. 홍화 연구가 더 확장돼서 이런 부분에 대한 해결책이 어서 나오길 저 역시 바라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홍화는 무척 매력적이죠. 우리 자연에서 나오는 홍화의 매력을 이제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우리 의성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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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 수업에서는 홍화자연염색 전 전통문화를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사진=김애진 작가

일찍이 세계 각국의 흐름을 만난 선생의 걸음은 의성 홍화와 함께 곧 세계로 다시 향할 것이다. 자연을 아끼고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은 국가를 넘어선 모두의 바람이기도 하니까. 선생의 나날이 의성 홍화처럼 화사하게 퍼져나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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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와 홍화염색 체험을 접목한 문화예술교육. 사진=김애진 작가

 

[홍화전통자연염색연구소 권순남]
청와대 사랑채 시연작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한국전통공예연구회
한국자연염색공예디자인협회 의성지부장
한국전통규방문화연합회
서울공예아카데미 CEO 과정 수료
2016년 한국청소년지도자부문 전통자연염색 대상 
2011년 PID대구국제섬유박람회
2010년 전주전통공예 전국대전 장려상
2010년 한국전통문화자연염색 공모전 특별상 외 다수 
2009년 자연염색 심포지움&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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