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뉴스=정세인 기자]우리나라 전통 악기 중에 누구나 좋아하는 소리가 있다.

두근두근 심장을 울리듯, 힘차고 진중하게 울려 퍼지는 북소리다.

세계가 인정하는 북과 장구를 만들기 위해 통나무의 몸통을 깎고 가죽을 붙이고 끈으로 당겨 최고의 소리를 만드는 풍년국악기의 백윤근 목공예 장인을 만났다.

북과 장구의 전통적인 소리를 찾느라 생긴 굳은살로 남들보다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두툼한 손안에 장인의 치열한 삶과 자부심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백윤근 장인이 통나무를 통째로 깍아서 장구를 만들고 있다. 사진=민혜경 작가
백윤근 장인이 통나무를 통째로 깍아서 장구를 만들고 있다. 사진=민혜경 작가

체계적인 연구와 실험으로 국악기를 완성하다
백윤근 씨는 80년대 초, 제기와 발우를 만드는 목공예 일을 하다 90년대에 국악기로 전향해 1994년 풍년국악기를 설립했다.

국내 최고의 장구와 북을 만드는 전통 국악기 장인으로 인정받은 백윤근 씨는 타악기의 고유한 음색과 악기의 오랜 수명을 유지하는 제작 방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는 전통 국악기 제작이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수준급의 기술에 숙달할 때까지 힘들고 긴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국악기 제작은 오랜 시간을 연구하면서 기술적인 요소를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전통 악기의 미래를 위해 국악기 제작의 명맥을 이어갈 후진 양성에 노력할 시점인데, 아직 국악기 제작 관련 학과가 하나도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백윤근 씨는 그동안 악기 제작에 필요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실험을 통해 국악기 제작과 관련된 여러 개의 특허를 출원하며 전통 악기 발전에 기여했다.

오랫동안 사용해도 습기와 온도 등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풍부한 음색을 유지할 수 있는 우수한 국악기를 제작하기 위해 부단히 연구 중이다.

대를 이어 국악기를 만드는 백윤근 장인가 아들. 사진=민혜경 작가
대를 이어 국악기를 만드는 백윤근 장인가 아들. 사진=민혜경 작가

“하나의 통나무를 깎아서 장구를 만드는 데 15분이면 됩니다. 기술적인 것보다는 장구의 치수를 재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려요. 북과 장구를 만들려면 대장장이 일부터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장구를 만드는 장구용 칼부터 장구 속을 파내는 가리 공예 칼과 목공선반용 칼까지 필요한 도구를 대장간에서 직접 제작해야 하거든요.”

철공소에서 직접 제작한 기계와 도구 등 그가 특허 출원한 기구도 수두룩하다.

“옛날에는 북에 쓸 가죽을 찾기 위해 도살장에서 가죽 벗기는 일까지 했습니다. 껍질을 대패로 깎아서 말리는 일까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어요. 예전에는 가죽이 없어서 장구 만들기가 힘들었다면, 지금은 오동나무가 귀해 좋은 장구 만들기가 힘듭니다.”

백윤근 장인이 장구 속을 파내고 있다. 사진=민혜경 작가
백윤근 장인이 장구 속을 파내고 있다. 사진=민혜경 작가

천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오동나무처럼 전통을 지키다
요즘 그의 관심은 온통 오동나무다. 오동나무는 나무가 연해서 가볍고 나이테가 선명해 잡음이 나이테의 깊은 숨결로 흡입되는 특징을 가져 최고의 자재로 꼽힌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본연의 음색을 잃지 않는다는 비유가 있듯이, 소리의 전달 성능도 다른 나무보다 월등해서 옛 선현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람도 치열한 시간을 통해 부드럽고 좋은 성품으로 바뀌듯이 나무도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디며 깊어져야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나무가 오래되면 마를 때도 곱게 마르고 만들 때도 고집을 부리지 않아 편하고 좋은 소리를 내죠. 전통 악기는 소나무, 느티나무 등 다양한 나무를 쓰지만, 그중에도 오동나무는 북, 장구는 물론 가야금, 거문고 제작에도 훌륭한 재료예요. 하지만 점점 구하기가 힘든 나무예요. 10년 뒤를 내다보고 각 시·도마다 단 100그루씩이라도 오동나무를 심는다면, 우리 나라 전통악기 제작의 장래는 밝다고 봅니다.”

전시 중인 다양한 종류의 북과 장구. 사진=민혜경 작가
전시 중인 다양한 종류의 북과 장구. 사진=민혜경 작가

북이나 장구는 미송이나 오동나무를 이용해 통으로 된 원목에 속 파기를 해서 몸통을 만들거나 여러 개의 나무쪽을 아교로 붙여 몸통을 만든다.

완전히 건조한 몸통은 사포질을 거친다.

북의 소리를 좌우하는 가죽을 북통에 씌우는 북 메우기는 잘 말려서 손질한 가죽을 북통 양쪽에 씌우면서 소리를 잘 맞춰야 소리가 난다.

그다음 북 사이사이를 나비 모양으로 오려서 북 벌어짐 방지장치를 하고 나면, 통 옻칠, 가죽 옻칠, 북 메우기, 단청까지 꼼꼼한 마무리 과정을 통해 명품 북과 장구가 탄생한다.

백윤근 씨는 북의 좋은 소리와 견고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시도해왔다.

조립식 북이라든지 장구용 궁채, 타악기용 가죽마무리 장치, 타악기의 가장자리 보호구조, 악기받침대용 프레임, 전통타악기용 가죽 확인 장치 등 보다 능률적인 제작을 위해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은 대가로 다양한 특허까지 출원할 수 있었다.

풍년국악기 작업장에는 아버지의 대를 잇겠다고 나선 든든한 아들이 있다.

풍년국악기 외관. 사진=민혜경 작가
풍년국악기 외관. 사진=민혜경 작가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서 일을 익히도록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중이다.

“지금이야 기계의 힘을 빌려서 일이 쉬워졌지만, 예전에는 손바닥에 근육이 생길 정도로 줄을 당겨야 북에서 소리가 났어요. 북에 씌우는 가죽도 전통 방식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죽에 약품을 쓰면 색은 곱지만, 약품처리를 하기 때문에 북을 치다 터지기도 하고 소리도 안 좋아요. 좋은 북은 닳아서 찢어질 때까지 쓸 수 있어야 해요. 장구나 북의 타격점은 쓰면 쓸수록 뽀얗게 닳으면서 주변의 천연 기름기가 그 자리로 스며들어야 소리도 좋아지고 오래 쓸 수 있습니다.”

백윤근 씨는 단지 보기 좋은 악기가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장인 정신을 통해 정확한 소리의 틀을 잡고 오랫동안 연주자가 사용하는 악기가 좋은 악기라고 믿는다.

그런 장인의 마음을 알아보는 전통 음악 전문가들이 그의 오랜 단골이다.

최근 들어 해외에서 주문이 이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엄선된 좋은 재료와 부단한 기술 개발로 국악기 발전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전통 국악기에 대한 그의 결연한 다짐이 잘 만든 오동나무 북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처럼 진중하고 믿음직하다.

 

[풍년국악기 백윤근]
1991년 대전공예품 경진대회 은상
          서울한국공예품 경진대회 장려상
2001년 대구 동구 문화회관 국악기 전시
2005년 부산 엑스코 국악기 전시
2009년 대구 엑스코 공예조합 국악기 전시
2010년 대구동구문화회관 국악기 전시
          청소년지도자 국악기부문 대상
2013년 조달청전통공예부문 표창장
          대구동구문화회관 국악기 전시
2014년 중소기업중앙회 목칠공예부문 표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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