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23.한 뼘 길이에 구현한 완벽한 세계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23.한 뼘 길이에 구현한 완벽한 세계
  • 최정은 기자
  • 승인 2018.11.13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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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뉴스=최정은 기자] 장도는 한 뼘이다. 아니 채 한 뼘이 안 되는 것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 한 뼘 안에 장인의 인생이 담겨 있다.

날카로운 칼날, 버선코를 닮은 칼집과 칼자루, 그것들을 서로 아우르면서 꾸미는 역할을 하는 장석까지 세 부분이 만나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이룬다.

한 뼘 길이에 구현한 아름다운 세계를 만나러 소백산 아래 편안한 땅, 풍기를 찾았다.

갈고 깎고 다듬기를 무한반복한다. 사진=김숙현 작가
갈고 깎고 다듬기를 무한반복한다. 사진=김숙현 작가

은장도는 장도의 한 종류
‘풍기은장도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년 같은 웃음의 이면규 장인이 반겨준다.

전시장 겸 판매장은 작지만 아담하고 따뜻하다.

이 작은 공간에서 재료를 자르고 깎고 문질러 작품을 완성한다.

19살에 시작해 40년이 넘게 몰입하다 보니 장도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빼어난 기술을 지닌 장인이 되었다.

장도는 ‘주머니 속에 넣거나 옷고름에 늘 차고 다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말한다.

흔하게 알고 있는 은장도는 장도 가운데 칼집과 칼자루를 은으로 만든 것을 칭한다.

사극 드라마에서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은장도를 뽑아든 여인의 이미지가 강렬했던 탓에 은장도라는 이름이 귀에 익게 된 것.

조선시대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장도를 노리개로 하거나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이면규 장도장이 영주 선비촌에서 동료들과 전통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김숙현 작가
이면규 장도장이 영주 선비촌에서 동료들과 전통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김숙현 작가

위급한 순간에 자신의 몸을 지키는 방어용으로, 평소에는 정신을 다잡는 도구로, 외향적으로는 멋을 내는 장신구로 장도만한 것이 없었다.

은 외에 금, 뿔, 상아, 소뼈, 나무 등으로 만들어 상아장도, 뿔장도, 목장도, 골장도라 부른다.

형태에 따라 독을 검사하기 위한 은젓가락을 끼운 첨사도, 끝 부분을 대칭으로 구부린 을(乙)자장도, 머리를 구부리지 않고 마감하는 일(一)자장도 등 명칭이 다르다.

첨사도는 젓가락을 빼지 않으면 칼이 칼집에서 빠지지 않도록 제작하고, 일반 장도의 경우 장석에 칼날을 무는 장치가 되어 있어 노리개로 하고 다녀도 칼이 빠지는 일이 없다고.

여성은 은장도를 많이 쓰고, 남성은 담백한 장식의 무소뿔장도나 대추나무장도 등을 즐겨 썼다.

비녀나 남성의 상투를 틀어 올려 고정하는 동곳을 장도로 이용하기도 했다.

장도에 매듭을 연결해 노리개로 만들면 장식과 실용을 한꺼번에 추구할 수 있다.

불로 하는 일 외에는 이 작은 탁자에서 모든 작업이 가능하다. 사진=김숙현 작가
불로 하는 일 외에는 이 작은 탁자에서 모든 작업이 가능하다. 사진=김숙현 작가

운명처럼 스승을 만나 장도 외길 40년
이면규 선생이 장도를 접한 것은 열아홉 살 때 일이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할아버지께서 “먹고 살려면 기술을 배워라”고 하셨다.

그래서 취직한 곳이 영주의 한 금은방. 금은 세공을 배우고, 시계 수리를 배웠다.

그렇게 열아홉 살이 됐을 때 스승인 고 김일갑 선생을 만났다.

원래 풍기 사시던 분인데 풍기의 광산이 문을 닫자 금광이 있는 봉화 춘양으로 옮겨 금은방을 하고 있었다.

장도를 잘 만드는 스승과 함께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장도 만들기를 배우게 된 것.

스승은 1990년 경북 무형문화재 15호 장도장으로 지정됐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으려면 기술을 전수해 줄 후계자가 필요한데 김일갑 선생의 아들과 이면규, 고준정 세 명이 전수장학생이 되어 같이 배웠다.

스승의 아들은 배우던 중 그만뒀는데 이면규 선생은 풍기은장도를, 고준정 선생은 영주은장도를 세워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장도를 배워야겠다고 미리 계획한 것도 아니요, 장도가 미칠 듯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으나 마치 하늘이 정해준 것처럼 스승을 만나, 평생 장도장의 길을 걷고 있으니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면규 선생은 아직 한창 일할 나이지만 슬슬 기능 전수를 고민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아들이 보석 관련 일을 하고 있어서 장도와 연관성은 있으나 선생이 나서서 “뒤를 이어 장도를 만들어라”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기술을 모두 배우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는데 반해 찾는 이는 없고 무엇보다 장도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먼저 필요하다.

재료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을 지니는 장도. 사진=김숙현 작가
재료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을 지니는 장도. 사진=김숙현 작가

섬세하고 까다로운 작업으로 세계적인 작품 완성
장도는 원래 철을 다뤄 칼날을 만드는 사람, 칼집과 칼자루를 만드는 사람, 칼날을 고정시키는 동시에 장도를 예쁘게 꾸미는 장석을 만드는 사람 등 세 부분으로 나눠 분업을 했다.

점차 장도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장인이 적어지면서 지금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장인 한 사람의 손에서 완성된다.

장도를 만드는 과정은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모든 순간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원하는 길이에 맞춰 칼날을 다듬고, 은을 얇게 펴서 무늬를 새겨 넣은 다음 원통형으로 구부려 칼집과 칼자루를 만들고, 그 사이에 장석을 끼워 연결해 준다.

전 과정을 되짚어 봐도 기계를 사용하는 순간은 전혀 없다.

줄이나 망치, 끌, 정, 실톱 등 공구도 자그마한 것들이다.

수없이 두드리고, 켜고, 깎아야 하는 섬세한 작업의 무한 반복이다.

그렇게 까다롭게 작업을 한 덕분에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장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전통 공예인 장도를 만들고 있지만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미해 보기도 한다.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장인의 웃음이 소년처럼 천진하다. 사진=김숙현 작가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장인의 웃음이 소년처럼 천진하다. 사진=김숙현 작가

장도 고리에 달 장식으로 남자(양), 여자(음)를 새겨 두 조각을 붙이면 사람 얼굴이 되고, 따로 떼어 보면 태아처럼 보이는 것을 만들기도 했다.

연잎에서 모티브를 얻어 펜던트를 디자인하거나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꿈’을 계단처럼 형상화 한 것도 있다.

한반도를 거북이로, 울릉도와 독도를 태극무늬로 만든 디자인은 그의 전시장 벽면에 걸려있다.

경제적으로는 쪼들려도 마음으로는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는 이면규 장도장. 선비촌 마당에서 주말이면 동료들과 풍물 공연을 펼치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경기민요 한가락을 멋지게 불러 보기도 한다.

한 길만 걷는 우직함과 흥이 넘쳐나는 유쾌한 심성이 오늘의 선생을 있게 했을 터.

공예대전 등지에서 숱하게 수상을 했음에도 아직 부족함이 있다고, 항상 배우는 ‘학생’이고 싶다고 말하는 이면규 장도장은 오늘도 장도의 칼날을 벼린다.

 

[풍기은장도 이면규]
1990년 경북 무형문화재 15호 장도장 기능보유자 지정
1992년 22회 경북 공예품경진대회 입선
1993년 23회 전국공예품경진대회 입선
1997년 2회 경북 관광기념품 경진대회 특선
2001년 26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입선
2002년 6회 경북 관광기념품 경진대회 특선
2003년 28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2006년 전통산업사업자 지정
2009년 경북무형문화재보존회 이사 역임
2016년 46회 경북공예품대전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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