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뉴스=최정은 기자] 예부터 유기는 임금님 수라상이나 고관들의 집안에서 사용했던 그릇이며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유기 중에 최고로 치는 ‘김천방짜유기’는 가볍고 견고해 수저로 치면 종소리처럼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그릇이다.
김천방짜유기의 고유한 전통을 잇기 위해 오롯이 유기 인생을 살아온 김천방짜유기의 이운형 장인을 만났다.
김천방짜유기의 전통과 명맥을 잇다, 김천방짜유기의 현재
김천방짜유기는 유기의 종류 중 가장 질 좋은 유기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78%의 구리와 22%의 주석이 정확한 비율로 합금된 재료를 이용해 전통 기법을 고수하며 제작하는 모든 제품은 수공예로 만들어진다.
제작 과정이 까다롭고 장인의 숙련된 기술을 요구해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지만, 방짜유기의 자부심으로 명맥을 지켜가고 있다.
이운형 유기 장인은 방짜라는 용어에 우리 고유의 과학 기술이 숨어있다고 말한다.
대개 두드려 만드는 것을 방짜라고 알고 있지만, 과학적으로는 구리 78%에 주석 22%를 정확히 합금해 만든 것이 방짜라는 것.
방짜는 가장 질 좋은 합금을 일컫는 합금 기술 용어이며 잡금속을 넣어 질이 떨어지는 합금은 퉁짜(쇠)라고 불렀다.
“가짜는 합금 비율이 다릅니다. 비율을 정확히 했을 때 전통 방식으로 만들지 않으면 제대로 유기를 재현해 낼 수 없거든요. 방짜유기는 유리의 성분과 같습니다. 쉽게 깨어질 수 있는 제품인데, 장인의 연마를 통해 단단해지는 겁니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유기의 효능을 알리다, 김천방짜유기의 미래
이운형 유기 장인이 전해주는 방짜유기에 얽힌 가족사는 한 편의 소설이다.
그는 철이 들기도 전, 어린 시절부터 유기 기술을 배워야 했다.
유기장이었던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전수하지 못한 기술을 손자 4형제 중에 가장 근성 있던 손자에게 전수하기로 마음먹은 것.
9살 되던 해부터 학교만 다녀오면 공방의 어른들 틈에서 기술을 배워야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 친구들과 놀고 싶어 공방에 안 갔다가 할아버지에게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맞았다.
그때는 할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방짜유기의 전통을 잇게 하고 싶었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어렵게 유기 기술을 익혔지만, 생계유지가 힘들 때는 유기를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중단하면 김천방짜유기의 맥이 끊긴다는 생각에 그만둘 수 없었어요. 할아버지의 엄격했지만, 정확한 가르침과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배운 기억 때문에 오히려 유기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짜유기에도 위기는 있었다. 50년대 후반 스테인리스 제품이 유행하면서 할아버지 공방에도 큰 위기가 닥쳤다.
“함께 일하는 공방 직원만 20여 명이 있었는데, 다 떠나고 한 분만 남았어요. 저를 포함해 세 사람이 일했는데, 그래도 만든 제품이 팔리지 않았죠. 그 후에도 법랑 제품과 생활도자기 등이 나오면서 유기 판로가 막히는 바람에 계속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그릇을 지키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김천방짜유기공방 한쪽 작업실에는 할아버지 때부터 쓰던 100년 된 도구들이 오랜 세월,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지금도 할아버지의 손때 묻은 도구를 하나둘 꺼내어 보며 잠시 추억에 젖는다.
요즘은 웰빙족이 늘어나면서 한정식 식당이나 전통 비빔밥, 냉면 등의 식당에서 방짜유기를 선호하고 있다.
유기는 뜨거운 기운은 따뜻하게 찬 기운은 시원하게 보관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특히 설렁탕이나 냉면 전문 식당에서의 주문이 늘어나는 추세다.
또한 아름답고 실용적인 디자인 덕분에 혼수 예단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운형 씨에게는 장성한 딸만 둘이라 전수자를 고민하던 중, 큰 사위가 대를 이어 유기 공방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그 옛날 전수자를 고민했던 할아버지의 마음으로 고된 삶을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고민하던 중이었다.
전공을 이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려운 선택을 해준 사위에게 지금은 고마운 마음뿐이다.
그의 절절한 이야기 끝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이운형 유기 장인은 김천시 지좌동 호동 입구 삼거리에 김천방짜유기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김천시 황금동 황금 시장에는 김천유기전시판매장이 있다. 2018년에는 숙원이었던 유기박물관을 설립할 계획이다.
직지사 앞에 자리를 잡고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그동안 그가 땀 흘려 만든 유기 작품과 유산처럼 소중히 간직해온 할아버지의 유품들을 진열해서 많은 사람에게 김천유기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천방짜유기공방 이운형]
제2회 대한민국공예공모전 대상
제3회 마닐라 국제초대전 은상
2011년 프랑스파리 초대전 입선
미국디지털아트페어 전시
한국 10대작가 초대전 올해의 작가상
2012년 우수 명품상
2013년 경북 공예 공모전 입선
필리핀 이리스트대학 겸임교수 임명
대한민국 방짜유기명장 명품증서 수여
이태리 베니스모던비엔날래 초대작가
관련기사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6.김천 징의 부활을 꿈꾸다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5.자연에서 금속공예의 미래를 찾다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4.국악 세계화의 초석, 국악기 유림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3.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평생을 걸다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2.전통과 생명의 놋그릇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흙과 불이 빚은 황금빛 유기 인생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8.4대를 잇는 유기장의 힘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9.나무를 통해 나를 찾아가는 길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0.민족의 흥, 장승에 새기다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1.금속의 무한한 변화, 철학을 만나다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2.유물 재현과 복제의 아름다움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3.섬세한 손놀림으로 시대사상을 새기다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4.첫사랑처럼 설레는 은장도의 매력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5.영혼을 깨우는 목탁 소리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6.예술의 나무숲에서 외길 인생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7.마음의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다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8.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공예가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19.나무에서 마음의 소리를 찾다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20.궁금하면 찾아내는 세상에 대한 애정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21.소나무 같이 편안하고 은은한 향기를 지닌 장인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22.일곱 가지 색채와 불의 예술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23.한 뼘 길이에 구현한 완벽한 세계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24.마음을 울리는 북소리
- [기획-쇠와 나무를 깨우는 사람들] 25(끝).오늘보다 내일 더, 원형 하회탈을 향한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