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에 담긴 아름다운 계곡 ‘무흘구곡’

[블로그뉴스=이효영 기자] 대자연의 평화로운 모습은 일상의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게 만드는 힘이 있다. 대자연을 보고 감탄하는 순간, 때로는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미소 짓기도 한다. 삶의 쉼표 역할을 하는 자연을 벗 삼아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만끽하고 싶다면 망설일 것이 없다. 경북 성주군 ‘무흘구곡’이 답이다. 아직은 발길이 뜸해 걷는 여행지로 더 안성맞춤이다.

무흘구곡은 성주군 수륜면에서 김천 증산면 수도리까지 약 35㎞에 이르는 대가천과 계곡에 걸쳐 있다. 대가천은 수도산에서 발원해 가야산 북사면을 따라 내려오다 성주, 고령 땅을 적신 뒤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다. 옛 가야 땅을 흐른다 해서 이름도 대가천(大伽川)이다. 

이는 조선 중기의 학자인 한강(寒岡) 정구(1543~1620) 선생이 칠언 절구의 시로 담았다. 성리학을 이룬 대학자인 중국 송나라 주자(朱子·1130~1200)가 지은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만든 시로 제1곡인 봉비암에서 거슬러 올라가는데 제9곡인 수도리의 용소까지 그 아름다움이 한 편의 시에 담겨 있다. 성주에 1~5곡, 김천에 6~9곡이 있다. 

1곡인 봉비암 모습.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대가천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고 있다. 성주군 제공.
1곡인 봉비암 모습.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대가천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고 있다. 성주군 제공.

1곡은 회연서원 뒤편에 있는 봉비암(鳳飛巖)이다. 

바위 위엔 한강이 후학들을 양성했다는 회연서원이 터를 잡고 있고,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대가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회연서원은 인조 5년(1627)에 문인과 유학자들이 한강 선생의 뜻과 학덕을 추모하고자 초당을 헐고 건립한 서원으로 숙종 16년(1690)에 사액 받았다. 

회연서원에는 3곳의 긴 담장이 있는데 강당과 사당을 둘러싼 담장과, 강당과 사당을 경계 짓는 담장, 그리고 백매원 정원과 숭모각, 향현사, 신도비를 현도루 안쪽으로 둘러싼 담장이 낮고 길게 펼쳐져 있다.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꽃이 담장을 에워싸고 있다.

푸른 솔숲과 어우러진 2곡 한강대(寒岡臺) 모습을 바라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성주군 제공.
푸른 솔숲과 어우러진 2곡 한강대(寒岡臺) 모습을 바라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성주군 제공.

2곡은 한강대(寒岡臺)로 수륜면 갖말마을 뒷산 정상에 있으며 정상바위에 후대사람이 한강대라 크게 새겨 놓았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푸른 솔숲과 울긋불긋한 단풍이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그 아래를 내려다보면 탁 트인 전경이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듯하며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내는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1곡인 봉비암과 직선거리로 1㎞ 남짓 떨어져 있다. 

3곡인 무학정(舞鶴亭)이 바위 위에 갇힌 듯 고즈넉함을 더하고 있다. 성주군 제공.
3곡인 무학정(舞鶴亭)이 바위 위에 갇힌 듯 고즈넉함을 더하고 있다. 성주군 제공.

3곡은 무학정(舞鶴亭)으로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에 있다. 

바위의 형상이 배와 같아 선암(船巖·배바위) 혹은 주암(舟巖)이라고도 한다. 

그 바위 봉우리에 축대가 있어 이를 무학정이라 부른다. 한강은 ‘임진왜란으로 민생이 어지러운데 어떻게 홀로 은둔의 삶을 살 수 있겠느냐’며 성주의 3곡 무학정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무흘구곡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4곡 선바위(입암)가 푸른 하늘과 함께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성주군 제공.
무흘구곡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4곡 선바위(입암)가 푸른 하늘과 함께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성주군 제공.

4곡은 입암(立巖)으로 무흘구곡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굽이쳐 흐르는 물 옆에 우뚝 솟은 바위가 있는데 이를 선바위(입암)라고 한다. 

‘백 척 바위에 구름 걷히고/
바위 위 꽃과 풀은 바람에 나부끼네/ 그중에 그 누가 이런 맑음 알겠는가?/ 천심에 개인 달빛 못에 비치는 것을’ 꼿꼿이 선 선비의 기개를 닮은 선바위의 모습에서 한강은 세파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시로 노래한 듯하다.

5곡은 금수면 영천리에 자리한 사인암(舍人岩)이다. 

티끌 한 점 없는 푸른 삼봉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대가천의 맑은 물이 흐르는 이곳은 옛날 아신 벼슬을 지낸 스님이 이곳의 아름다운 수석을 사랑하여 바위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해서 사인암이다. 

이곳에 온 사람마다 영원한 인연을 맺고자 한다 해서 사신암이라고도 한다.

주변 볼거리로는 한강 선생을 배향한 회연서원이 있다. 한강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해 그의 사후인 1627년(인조 5)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1583년(선조 16)에 한강이 회연초당(檜淵草當)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1690년(숙종 16)에 현판, 서적,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국가로부터 서원으로서 권위를 인정받은 사액서원이 됐다.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됐다가 1970년대에 복원했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또 경북도지정 민속문화재 자료 제614호인 한강종택이 있다. 퇴계 학맥의 하나인 근기학파에 큰 영향을 주는 등 역사적 보존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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