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뉴스=정세인 기자] 국악을 들으면 언제나 가슴이 떨린다.

신명이 나 어깨를 들썩이다가 한스러움에 목이 메기도 하는 우리의 소리, 국악이다.

전문 지식이 없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국악은 곧 우리네 정서다.

국악에 필요한 모든 분야가 중요하지만 소리의 힘을 이끄는 중심에는 국악기가 있다.

세계에 울려 퍼져 다시 현대의 우리에게 울림이 되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국악기 제작에 평생을 바치는 국악기유림공예의 대표 백은종 장인을 만나본다.

국악기유림의 백은종 대표가 완성된 국악기를 설명하고 있다.
국악기유림의 백은종 대표가 완성된 국악기를 설명하고 있다.

전통의 맥을 잇는 가내 수공 국악기
국악기유림의 역사는 1983년부터 시작한다. 경남 거창 출신인 백은종 대표는 친척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지금의 유림을 이어가고 있다.

시작은 가내수공업으로 만드는 장고(장구)였다. 원자재를 들여와 완성품을 완성하는 모든 과정을 직접 해왔다.

공장의 규모는 커지고 제작에 필요한 기계도 늘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수공작업으로 하는 것은 여전하다.

나무향이 폴폴 나는 공장 안에는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국악기들이 완성을 기다리며 쌓여있다.

수종에 따라 다른 빛깔을 내고 칠에 따라 또 다른 분위기를 내는 국악기지만 그 소리만큼은 한결같이 묵직한 울림을 주는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국악이 우리네 정서를 담은 소리인 만큼 그 소리를 뒷받침해주는 국악기도 전통의 맛을 고스란히 담아야 한다.

건조 작업 중인 가죽 자재들.
건조 작업 중인 가죽 자재들.

이곳의 국악기들이 세계에 퍼져 있는 이주민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백은종 대표가 자부하는 고집스런 전통 제작 방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기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 십 가지의 과정을 거치죠. 오로지 제가 해야 하는 과정은 나무의 속을 파내는 작업이에요. 기계의 힘을 빌리긴 하지만 정확한 각도에 맞게 칼을 사용해야 하는 과정이라서 다소 위험하죠. 잘못된 각으로 팔 경우 그 소리와 울림도 어긋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하고요.”

국악기는 나무와 가죽이 주재료다. 이 둘 모두 국내산 재료 사용을 원칙으로 하니 그 수요가 많지 않아 늘 고심한다.

그럼에도 전통 소리를 위한 국산 제작은 지켜내야만 한다는 것이 대표의 지론이다.

“나무는 나이 많은 나무, 가죽은 방목해 키운 소의 가죽을 주로 사용해요. 나이가 많은 나무는 나뭇결이 잘 살아나 보다 아름다운 외형을 갖고, 방목한 소의 가죽은 숙성도 잘 되고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죠. 오랜 세월 유지해온 거래처에서 목재와 가죽을 원자재로 들여 오면 그 후에 모든 과정은 이곳에서 이뤄져요. 나무는 속을 파내 건조시키고 가죽은 잘 펴서 말리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리죠. 그렇게 악기 모양을 갖춘 나무통에 가죽을 덧대 형태를 완성하고 그 위에 옻칠을 하거나 단청을 그려 넣으면 완성이죠.”

창고 안에 보관되어 주인을 기다리는 악기들을 바라보는 장인의 눈은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는 아비의 눈빛을 닮았다.

전문 미술가가 단청을 다듬고 있다.
전문 미술가들이 단청을 다듬고 있다.

시대에 따른 국악기의 다양한 변화
100% 주문 제작하는 유림의 국악기들은 악기를 다루는 이의 선택에 의해 겉모양이 꾸며진다.

소비자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구상을 대표에게 얘기하고 가능 여부를 상의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국악기 활용 공연의 형태도 변했다. ‘난타’의 바람이 불 때는 원자재 자체의 변화도 있었다.

기존 모양이 아닌 드럼통 형태의 북을 원하기도 하고 나무가 아닌 다른 재료를 요하기도 했다.

악기 겉면에 그려지던 문양도 마찬가지다. 현대적인 디자인이 주를 이루기도 했다.

사무실에 전시 중인 장식용 국악기들과 상장.
사무실에 전시 중인 장식용 국악기들과 상장.

그때마다 대표는 더 나은 방향, 가능한 제조법을 도입해 주문하는 사람이 원하는 형태의 국악기를 만들어냈다.

전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이곳의 국악기를 주문하는 이유다.

근래에는 국악을 학교 내 예술수업에 접목시키는 사례가 늘었다.

대표는 좋은 뜻으로 마련된 프로그램에 국악기를 기증하기도 한다.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북과 장고 등 국악기를 치게 하니 마음에 안정을 얻고 본연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학습 프로그램은 효과를 인정받아 전국적으로 시행되어 이제는 더욱 다양한 형태의 예술 치유프로그램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악기 유림의 악기 기증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할 성과이기도 하다. 백은종 장인이 바라보는 국악의 힘이고 현대에 필요한 국악의 효과이다.

주문 제작이 주를 이루는 국악기 공장.
주문 제작이 주를 이루는 국악기 공장.

국악의 세계화, 작품 세계를 향한 바람
어쩔 수 없이 또는 선택적으로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이 있다.

그들이 때로 만나는 국악 무대는 더없이 감사한 위로가 될 터다. 우리 민족에게만 울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악은 이미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소리다. 아이러니 하게도 국내에서의 명성이 줄어드는 추세다.

학교 예술수업에도 활용되고 방송을 포함한 다양한 무대에 선보여지고 있지만 국악이 더욱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날은 조금 더뎌 보인다.

백은종 장인은 국악의 감흥이 좀 더 보편적으로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을 품는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국악은 우리 소리잖아요. 좋은 국악기를 계속 만들고 국내는 물론 세계에 국악소리가 울려 퍼지면 바랄게 없죠.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국악기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거죠. 지금도 여러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해요. 참 좋은 나무를 보면 작품이 떠올라 작업대 앞에 서게 되죠. 업무시간이 끝나면 혼자 작업대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어보고는 해요. 기능인이 아닌 예술인으로서 오롯이 작품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날을 늘 바라고 있어요. 가끔 완성되는 작품들은 지인들이 찾아와 달라고 졸라요. 그러면 또 드리고 하다 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작품은 별로 없네요.”

많은 이들이 우리의 전통, 현대와 만난 우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애정을 쏟는 날이 오면 백은종 장인의 특별한 국악기 작품도 더 많이 세상에 나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


[국악기유림공예 백은종]
1984년 전국공예품대회 입선
1994년 경상북도 농촌 특산단지 지정업체 선정
1999년 칠곡군 아카시아벌꿀축제 전시
2004년 으뜸경북농업을 위한 복지농촌건설 기여공헌 도지사표창장
2005년 칠곡군 지역발전 칠곡군수상 수상
2007년 대한민국 전승공예 문화재 청장상
2009년 중요문화재10인 추천 표창장
2013년 사)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명인 지정
2017년 국회기획재정위원회 표창장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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